[시네마 산책]<148>이센셜 킬링
[시네마 산책]<148>이센셜 킬링
  • 김성희
  • 승인 2011.06.02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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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국제영화제(2010) 볼피컵-남우주연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12회 전주국제영화제(2011) 시네마스케이프 장편 부문 초청작이기도 한,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최신작, <이센셜 킬링>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게 붙잡혀 유럽의 비밀수용소시설로 옮겨지고 있는 모하메드(빈센트 갈로)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범하는 필수적 살인을 실존적 화두로 삼는다.

아프가니스탄의 사막지대, 헬기 한 대가 사막의 협곡 위 상공을 날고 있다. 뭔가 심상치 않게 카메라는 협곡사이를 헤매는 미군 3명과 탈레반 복장의 아랍인을 불안한 시선의 딥포커스 씬으로 포착하며 추적한다. 이어서 거대하고 황량한 사막의 협곡을 배경으로 줌인 줌아웃하는 추적 씨퀀스의 무성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대사가 거의 없는 이 영화에서 미군은 바주카포로 순식간에 미군을 사살한 아랍인 모하메드(빈센트 갈로)를 계곡 위 상공의 헬리콥터 추격으로 생포한다. 그 과정에서 귀 옆에서 터진 포탄 때문에 청력을 손상 당한 데다가 두건까지 뒤집어쓴 채 비밀포로수용소에서 물고문과 구타를 받으며 자동차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산짐승과의 돌연한 자동차 충돌 사고 때문에 동물적 생명력의 탄력을 받은 것처럼 옆 비탈길로 갑자기 튕겨져 나온 모하메드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 후 약 70분가량 도망자의 실존적 상황에 갇혀 모하메드는 무정한 자연과 변방을 배경으로 절대고독의 치열한 사투를 펼친다.

러닝타임 내내 단 한마디도 말도 없이, '시지프스의 후예' 답게 모하메드는 그저 똑같아 보이는 겨울 숲속을 한발 한발 내디디며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해치우며 자신의 생명을 사수한다. 그 압도적인 침묵을 대신하는 건 오로지 화면 가득 모하메드를 찾는 헬리콥터의 육중한 프로펠러 소리와 사나운 개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영하의 폴란드와 노르웨이의 인근 변방 숲을 뛰며 피해 다니는 모하메드가 자신을 추적하는 무리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적 신념과 생명력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는 모습은 단연, 실존적 탈주의 극화다. 추격대에서 벗어나 인근 마을로의 잠입을 끈질기게 시도하는 모하메드의 강인한 집념은 바로 '인간실존'인 것이다. 어딘지 모를 탈출구를 찾아 탈주하는 모하메드는 지금까지 전혀 겪지 못한 추위와 배고픔과 고독과 공포에 항거한다.

실존적 상황에 내던져진 이 아랍인 모하메드가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살인을 저지르며 마음속으로 자위하는 종교적 위안은 사뭇 신의 메시지와도 같다. 국가 간의 갈등, 혹은 문명 간의 갈등이라는 거대 담론에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이는 이 영화, <이센셜 킬링>은 다양한 이념적 정치적 상황의 큰 목소리들을 마치 패러디하기라도 하듯, 동시대의 정치적 메타포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실존의 극한 상황에 놓인 한 개인의 인간실존을 말없이 그릴 뿐이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험난한 '자연'의 상황을 인간의 언어가 아닌 무색무취의 집념으로 쫓기만 한다. 어딘지 먼 곳의 연인과 전화통화를 하던 음악 매니아 젊은이를 서슴없이 죽이고 자동차와 추위를 피할 옷을 얻어내며, 낚시꾼에게서 고기를 빼앗아 먹고, 애기 엄마를 희생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 덮인 숲 사이로 처연하게 메아리치며 끊임없이 항변하듯 우는 아이는 조금도 괘념치 않고 모유마저 강탈하여 빼앗는다. 하지만 모하메드에게 인간은 위협의 대상인 동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타인을 제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각박한 현대 사회의 서바이벌 게임을 은유하고 있는 <이센셜킬링>는 이 척박한 인간조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벙어리 여인의 말없는 도움의 손길로 살아남는 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우리에게 휴머니즘의 실낱같은 희망을 암시한다.

군데군데의 보이스오프는 종교적 가르침과 묵시록적 예언의 메시지로 인간적 삶의 노정에서 불가피하게 범하는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상징하는 다이제스틱 나레이션이다. 모하메드가 성전(聖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붙잡히게 되었고, 또 그래서 이런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해 주는 듯 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존재의 거대한 먹이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치열하게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을 뿐, 그 어느 쪽도 절대적 우위를 점하진 못한다. 이것은 제각각 자기가 처한 집단적 가치에 세뇌되고 익숙해져 그 집단에 함몰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 현대인의
▲ 김성희
자화상이다. 서방 기독교 세계와의 근본적 불화의 골이 깊은 이슬람교도의 치열한 실존적 상황에서 애오라기 귀머거리로만 대응하며 놀랄 만큼 정치적 이념에 대해 침묵하는 이 '살아남기, 마임쇼' 의 투명한 긴장감에 우리도 할 말을 잃는다. "쉬잇!~ 인간의 모습을 한 자들이여! 어느 한 쪽의 이념이나 정의의 잣대로 다른 한 쪽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 그것은 다만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듯, 영화는 인간실존의 고독한 사투가 치닫는 궁극의 길을 말없이 열어 보이며 막을 내린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학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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