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 <150>단신남녀
[시네마 산책] <150>단신남녀
  • 김성희
  • 승인 2011.06.16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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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남녀(單身男女): Don’t Go Breaking My Heart, 2011>

감독 : 두기봉, 위가휘 | 출연 : 고천락, 고원원, 오언조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2011)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부문 초청작, <단신남녀>는 홍콩 도심지 고층건물들을 배경으로 한 단신남녀(單身男女)의 '싱글' 청춘남녀가 고층빌딩 사이에서 피우는 사랑의 커뮤니케이션과 애환의 풍속도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위가휘와 더불어 황금의 명콤비를 이루는 두기봉 감독은 1980년《벽수한산탈명금》으로 영화 데뷔한 가장 홍콩적인 감독으로, 한 화면 안에 가능한 최대의 정보와 디테일을 숨겨두는 미장센으로 캐릭터 내면의 숨겨둔 이야기에 주목한다.

홍콩의 '월스트리트', 때는 2007년 어느 아침, 늦잠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길을 서두르는 미혼의 애널리스트인 오피스레이디, 옌(고원원 분), 만원버스에 뛰어 올라 간신히 자리를 잡은 그 아가씨 앞으로 우연히 다가서는 임산부, 바로 그 뒤를 이어 차에 올라오는 한 남자가 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이 아가씨의 '배신남'이다. 만삭의 아내 앞에서 이 '배신남', 뱃심 좋게도 임신한 자기 아내를 위하여 버스에서 좀 제발 내려가 달라고 자기가 발로 차버린 이 아가씨에게 이제와 애걸복걸이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아가씨, 아직 내릴 정류장이 아니라며 버텨보기도 하지만, '한 때 사랑한 한 때 미워한' 그 정 때문에, 자기 아내가 유산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냐고 다그치는 그 남자의 마른 정강이를 구둣발로 걷어차며 급기야 차에서 뛰어내려준다. 그러나 인생 의미는 '반전'에 있다고, 이 '홍콩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심 속 진줏빛 사랑의 '레알' 현실인 것을 그 '배신남'은 알까? 설사 안다한들 그게 무슨 의미랴만은.

이렇게 '사랑의 환상'에서 '사랑의 환멸'로 처참하게 내몰린 고원원, 황망히 걸음만 재촉하다 손에 들고 있던 소지품과 서류들을 도로 위에 떨어뜨리고 마는데, 그 때 어디선지 나타나 그녀를 도와주는, 덥수룩한 수염과 초라한 행색의 '황야의 무법자', 고원원에게 '필이 꽂히고 만다'. 이 남자, 케빈(오언조 분)와 더불어, 톡톡 튀는 이 아가씨를 그동안 연일 호시탐탐 노리던 고급 승용차를 가진 '있어 보이는' '차도남'(고천락 분)이 고원원을 중심에 놓고 바야흐로 한 판 승부의 좌충우돌 로맨틱코미디를 시작한다.

'사랑'이란 남녀노소 동서고금의 인륜지대사이며, 보편적 통과의례라지만 그 스타일은 시공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고원원과 고천락, 서로 창문을 마주보고 있어 상대방 사무실을 볼 수 있는 증권회사와 사무실에서 창문에 종이나 포스트잇을 이용한 꽃 모양 등을 표현하여 서로 소통하며 감정을 키워가더니, 차츰 사무실을 벗어나와 커피샵 등에서 만나 함께 젊음을 구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호사다마'인지, 아니면 더 나은 사랑을 위한 벼리의 연습과정인지, 고천락이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는 고원원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던 한 백인 여성에게도 사랑의 중복 메시지로 전달되어 이들의 사랑은 미망에 빠진다.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일 것 같던 고천락과 고원원의 사랑 역시 진정한 '레알'을 위한 '연습 게임'으로 전락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 즈음,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명언은 우연처럼 또 다시 나타나는 필연의 오언조, 알고 보니 전도유망한 건축가를 고원원에게 준비해 준다. 한 남자가 만드는 사랑의 트라이앵글 안에서 울고 웃던 고원원, '환상'에서 '환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벼리과정을 겪자, 이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속내를 거리에서 만난 오언조에게 그냥 다 드러내 보인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은 채, 그저 일주일 후 '이 곳에서' 만나자는 고원원의 '허튼맹세'는 오언조에겐 일생일대 삶의 최대 전환점이 된다.

그로부터 한 3년이 지나고, 고원원의 회사 CEO로 부임을 한 고천락과 옆 사무실에 새로운 입주한 오언조가 고원원을 축으로 다시 경쟁적 구애를 벌이는 동안, 이 대조적인 두 유형의 남자들, 즉 '레알' 수컷 동물 유형인 고천락과 '아이디얼' 수컷 드림 유형인 오언조가 벌이는 결투 같은 이벤트를 통하여 생이 주는 '젊음의 한때'가 우리 앞에서 가볍게 지나간다. 당연히(?) 고원원은 '드리미'한 오언조를 '레알' 흑기사로 맞이하는 무지개를 잡는다.

▲ 김성희
고도로 발전한 물질문명의 대도시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익명성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미장센으로 두기봉 감독이 디자인하는 이색적인 홍콩 풍경과 고층빌딩 사이의 현대 젊은이들의 참신한 소통 방법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온 영화다. 모두가 타인인 도시문명의 익명성과 복잡성과 복제성에도 굴하지 않고, 사면이 어두운 밤 건물 전체 외등과 야간조명 등에 속내를 다 드러낼 수 있는 젊음의 용기와, 순발력 있게 그런 도시문명의 '게임의 법칙'을 터득한 현명하고 '쿨'하고 '시크'한 이 시대 주역들에게 부러움의 갈채를 보낸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학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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