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 사랑이 머무는 풍경(At First Sight, 1999)
[시네마 산책] 사랑이 머무는 풍경(At First Sight, 1999)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백제예술대 교수 전북비평포럼
  • 승인 2011.08.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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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어윈 윙클러, 출연 발 킬머, 미라 소르비노, 네이던 레인, 켈리 맥길리스, 스티븐 웨버

<뮤직 박스>의 감독이며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등을 제작한 어윈 윙클러가 제작과 감독을 맡은 <At First Sight>의 <사랑이 머무는 풍경>이라는 우리말 타이틀은 일상의 시선에는 ‘단번에(at first sight)' 서정적으로 와 닿는 그 뭔가가 있다. 셜과 바바라 제닝스의 실제 경험담인 시력 찾기 과정과 시각장애인 심리묘사를 그린 담채화풍의 산뜻한 터치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우디 앨런감독의 <마이티 아프로디테>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하버드 생 출신 여우, 미라 소르비노의 상큼한 매력과도 조우하는 즐거움을 갖을 수 있다.

한 번의 결혼과 또 한 번의 이혼을 경험한, 여류 건축디자이너인 바쁜 뉴요커, 에이미 베닉(미라 소르비노 분), 일상을 잠시 벗어난 스파 휴양지에서 우연히 안마사 버질 애덤슨(발 킬머 분)을 고객 신분으로 만난다. 뭉친 근육은 물론 지친 마음까지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그 안마사의 손길에 흠뻑 심취한 에이미, 버질에게 자연히 이성적 관심을 갖게 되며,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도 알아갈 무렵,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러브스토리는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에이미가 묘사해준 수평선과 솜사탕에 대한 유년시절 감각의 기억과 구름과, 그 밖의 일상적인 예쁜 장면들과, 비오는 날의 이미지들을 비롯한 사소한 아름다움들을 육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눈 먼 자신을 버리고 가출한 아버지를 찾아가 그 연유를 직접 묻고 싶은 마음에, 에이미의 주선과 권유를 받은 버질은 고민 끝에 개안수술을 받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되찾은 시력의 기쁨도 잠시, 버질은 난관에 봉착하는데, 너무 오래 시력을 잃어서 대뇌피질의 시신경 미발달로 인한 공간지각능력과 시각적 해석 능력의 부재 증상이 신체적으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버질은 보이는 시각적 정보를 그대로 뇌리의 기억장치에 입력 보유하는 기능도 없고, 또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으로 인지된 사물과 시각적 코드가 매칭이 되지 못하여 원근감과 같은 아주 당연한 감각조차 수용할 능력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망막의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되찾은 시력마저 점차 약해져서 다시 예전처럼 실명할 것이라는 의사 소견에 버질은 망연히 에이미를 찾아가지만, 이를 모르는 에이미, 버질을 붙잡고 이번 프로젝트만 마무리 되면 함께 피라미드 구경 가자고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그런 에이미와 함께 버질은 해묵은 숙원인 하키 경기 관람을 하러 간다. 하키 경기가 끝나갈 무렵 자신이 어릴 때 만져보았다고 여겼던 구름은 이제 보니 솜사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버질, 그때 솜사탕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버질의 행동에서 뭔가 버질의 시력 장애를 직감하게 되는 에이미, 둘은 말이 없다. 집에 돌아와 짐을 꾸리며 왜 자신을 시각장애인 그 자체로 사랑해줄 수 없으며, 뉴욕에 와서 수술을 받기로 했을 때, 왜 수술이 실패할 수 있는 남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못했냐고 다그치는 버질에게 에이미, 단지 버질이 자기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기를, 버질이 진보된 의술로 개명천지의 기적을 직접 경험해보기를 바랐을 뿐이라며 해명한다. 이제는 더 이상 에이미와 누나의 부담스런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버질, 다시 바쁜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겨 시력이 있는 마지막 날까지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눈에 담아 두기로 결심한다. 그 후, 안과 의사들 세미나 등에서 적극적인 사례 발표자로 나선 버질, 잠깐이지만 세상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으며,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인간의 내면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눈이며 그런 진정한 개안 수술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말한다.

신체적 장애와 물질적 외피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숱한 연인들의 탄식이 구름처럼 도심지 뒷골목을 몰려다니는 세상에서, 우리들 모두도 언젠가는 한 때의 왕성한 감각기관의 기능을 기억하면서, 노화와 더불어 신체적 장애를 껴안고 저마다 홀로 마지막 날까지 소멸해간다. “딱 3일만 눈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에세이에서 헬렌 켈러는 귀여운 꼬마의 잠자는 모습과, 셰익스피어 명작공연과, 눈먼 자신의 아침저녁 산책길을 지켜주는 안내견의 눈동자를 정말 육안으로 직접 한 번 보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하면서, 흔히 간과하는 주변의 일상적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한 때 되찾았던 시력으로 에이미와 더불어 공유했던 아름다운 세상은 다시 앞 못 보는 버질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순간들로 머물 것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어린 시절 미몽의 시력으로부터 젊은 날 개명 백주를 즐기다가 늙어지면 어두침침한 눈뜬장님으로 스러져간다는 것은 이미 저 오래 낯익은 스핑크스 수수께끼의 한 버전이다. 하여, 인생나들이에서의 올바른 사랑법이란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보이는 모습'을 마음의 눈에 담기라고 <사랑이 머무는 풍경>은 따뜻한 감동의 숨결로 알려주고 있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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