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 진하고 수명 길어…최대한 자연미 살려 조각"

20대 때부터 관솔나무에 관심 가져
짙은 향 스트레스 해소 등 효능 많아
겉 볼품 없어도 속 단단해야 고품질
관솔공예향-수명 오래 보존 큰 장점
생활에 접목한 실용적인 작품 지향

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로 불려지는 관솔. 관솔의 송진에는 솔기름이 많아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여기에 불을 붙여 촛불이나 등불을 대신했다. 모름지기 40대 이상이면 어릴 적 정월대보름에‘불깡통’의 불쏘시개로 사용해 돌리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솔의 용도는 또 다른 데 있다. 공예의 작품으로 쓰인다. 그건 작은 가지나 옹이가 아니다. 산에서 화재가 난 뒤 기둥과 뿌리가 오랫동안 죽은 채로 남아 있는 큰 관솔이다. 그 관솔이 공예인에게 요긴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수석공예에서 관솔공예로

전주에서 금산사 방향으로 가는 길목의 중인동 삼거리에 위치한 ‘나무사랑 공예촌’.

잘 정돈되지 않아 외형상으로는 어수선하게 보인다.100여 평의 뜰에는 썩은 나무와 뿌리가 모여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쓰레기 더미를 연상케 하지만 그건 작품을 위해 기다리는 관솔 재료들이다.주인장인 김구훈(50) 촌장이 어르신과 함께 관솔들을 다듬고 있다. 60대의 어르신은 20여 년간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촌장의 동료이자 스승이다.

이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공예체험을, 퇴직후 배우려는 어른들에게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김 촌장이 관솔나무에 관심을 기울인 건 20대부터다.

“어릴 적부터 나무에 돌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기에는 돌을 모으는 수석공예에 심취해있었죠. 수석공예를 위해서는 돌의 받침대를 짜고 연출도 해야 되기 때문에 자연히 나무를 접하게 되더군요. 그 때부터 나무, 특히 관솔나무에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김 촌장은 관솔의 특징과 효능에 대한 예찬에주저하지 않는다. 특징으로 “수나무가 죽어 수많은 세월에 변재(邊材)는 풍화되어 사라지고 심재(心材)는 남아 단단하고 무거운 송진덩어리를 이룬 상태의 나무여야 합니다”며 자연향을 뿜는 송진덩어리야말로 솔향을 진하게 풍긴다고 말한다.

또 효능으로는“관솔로 만든 목침이나공예품을 실내에 두면 피톤치트가 풍겨나고 송진의 짙은 향에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며 사람의 장과 심폐기능, 알레르기 등에 유익하다고 확신한다.

△관솔채취의 기준과 노하우
김 촌장은 여느 때처럼 나무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산을 찾았다. 도내의 웬만한 산이란 산은 모두 훑다시피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완주군 동상면에 위치한 산에 올랐다. 거기서 뿌리가 박힌 썩은 나무를 봤는데, 그 나무를 잘라보니 송진이 가득했다. 그 산에는 다른 지역보다 유독 관솔이 많다.“ 어른들로부터 얘기를 들었어요. 6·25 때 그 지역에 빨치산이 제법 진을 치고 있었답니다. 그들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을 질렀다고 해요” 지금도 그가 주로 찾는 산이기도 하다. 최소한 그 산은 그에게‘명산’이다. 그곳에 관솔이 많은 이유를 뒤늦게야 알았다.

김 촌장은 고품질의 관솔을 식별하는 기준이 있다. 관솔의 변재(겉)은 볼품이 없더라도 심재(속)이 단단하게 잘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재의 상태에 따라 작품의 질도 달라지고 때문이다.

또 관솔을 채취하는 나름의 기준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충분한 풍화작용이다. 불에 탄 소나무가 죽어서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을겪어야 한다. 6·25 이후 50년이나 바람과 햇빛을 받은 건 최상품이다. 그런 관솔을 김 촌장은‘전사목(戰死木)’이라고 칭한다. 아울러 화전민이 불을 낸 장소의 관솔도 품질이 좋다. 둘째는산의 정상에서 자란 나무다. 산 중턱에서 자란소나무만 해도 습기가 많은 반면 바람을 덜 받기 때문에 썩기 일쑤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에서는 바람과 햇볕을 많이 받는 특성이 있다. 셋째 동남쪽 방향이다. 정상에서 자랐더라도 정상에서 북쪽 방향의 나무는 습기를 많이 받는 반면, 동남쪽 방향에 있는 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아 품질이 좋다. 넷째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다.일반 흙에서 자란 것보다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가 크기와 모양, 보존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이같은 노하우를 가진 김 촌장에게 산 정상에 숨죽이고 있는 관솔은 이제 그의 작품의 보고이기도 하다.

△솔향이 오래가는 공예 선택
김 촌장은 그러나 처음에 그런 관솔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몰랐다. “송진이 많은 걸 처음확인했습니다. 분명 어딘가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일단 나무를 끌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용할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초기에는 관솔나무 사이사이에 난이나 꽃, 야채 등을 심는 관상용 목부작(木附作)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실험결과 수명이 오래 가지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나무에 물을 줘야 하기때문에 얼마 안 돼 썩어버리고 만 것이다. 관솔향이 오래 가는 방안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관솔공예다. 향과 수명을 오래 보존할 수 있어서다.

워낙 관솔에 열정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산에서 채취한 관솔나무가 너무 무거워 가지고 내려오다 온 몸에 상처를 입어 한 때는 대중목욕탕도 가지 못했다. 또 아끼는 작품을 집에보관하다가 아이들이 놀면서 얼굴에 상처를 입는‘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집에서 부엌칼로 다듬다가 옆집으로부터‘조용히 좀 하라’며 혼나고, 집안의 부엌칼을 몽땅 못 쓰게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한 우물’을 파온 것이다.

△생활에 실용적인 작품에 집중
그런 김 촌장의 작품은 특징이 있다. 첫째 관상용만이 아니라 실용적인 작품을 지향한다. 거북, 학, 잉어, 물개 등 모양의 관상용만이 아니라,옷걸이, 탁자, 화분받침대 등 생활에 접목한 작품을 제작한다. 둘째 가급적이면 자연스러움을훼손하지 않는다.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되 공구로 부분조각을 통해 모형을 연출한다. 이제 입소문이 많이 나서 작품을 구입하려는 주문이 많이들어온다. 주로 비염알러지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또 새집으로 이사한 입주자들도 많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지는 않는다.“자연 그대로가 좋습니다. 작품도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고자 합니다. 그래야 오래 갑니다”

제작노트

① 화재가 있던 산의 정상에 올라 바위틈에서 죽은 소나무의 심재를 채취한다.
② 작업장에서 물과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서늘한 그늘에 1개월간 건조시킨다.
③ 철제 솔과 부드러운 솔을 이용해 흙과 껍질을 털어내는 초벌작업을 한다.
④ 원형의 모양에 맞는 형상을 조각하고 형틀을 잡는다.
⑤ 표면을 거친 사포로 문질러 부드럽게 한다.
⑥ 소나무에서 뺀 송진기름이나 포도씨유를 겉면에 바른다.
⑦ 다시 부드러운 사포로 문질러 광을 낸다.
⑧ 부드러운 헝겊으로 손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