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산책] 전쟁으로 고통받는 한 여인의 역사를 그려낸 영화같은 영화
[시네마산책] 전쟁으로 고통받는 한 여인의 역사를 그려낸 영화같은 영화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 승인 2011.09.16 0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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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그을린 사랑(Incendies)(감독 드니빌뇌브·2010)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 감독 : 드니 빌뇌브 주연 : 루브나 아자발(나왈 마르완)

“세상을 등질 수 있게 시신을 엎어 놓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한 여인이 죽었다. 비밀스런 여인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의 평탄치 않았을 삶을 짐작케 하는 유언이다. 영화의 열쇠는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고 싶은 그녀의 서사다. 나왈의 상사이자 공증인인 르벨은 쌍둥이 자녀 잔느(멜리사 드소르모-풀랭)와 시몽(막심 고데트)에게 유언장을 공개한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으라는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잔느와 시몽은 당황한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질 때 무덤에 비석을 세워다오.”라는 말속에서 남매가 만나야 할 가족사가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여권과 흑백 사진 한 장을 단서로 - 캐나다에서 거주하던 - 남매는 중동 출신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낯선 지형을 통과하는 긴 여행에서 어머니의 진실과 직면한다.

<그을린 사랑>은 분노, 진실, 사랑에 관한 영화다. 잔인한 운명은 매순간 강한 두려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분노 혹은 침묵 이면의 어두운 진실과 깊은 상처를 깊게 응시하게 한다. 수학공식처럼 난해하여 해답을 구할 수 없는 이 여정을 지탱하는 사람은 공증인 르벨이다. 그는 죽은 나왈을 대신하여 남매가 여행길에 올라야 하는 당위를 부여한다. 전혀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는 마주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지게 한다. 르벨은 잔느와 시몽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과거로의 회귀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한다. “공증인의 임무 중 하나는 고인의 유지와 그들의 성스러운 비밀을 돌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증인은 마치 스틱스 강을 건너는 배의 사공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르벨은 죽은 나왈과 살아있는 남매를 연결하는 고리다.

퀘벡에서 명성을 쌓아올린 캐나다 출신 드니 빌뇌브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단편 <Next Floor>로, 장편 <폴리테크닉>으로 주목 받았다. <폴리테크닉>은 평화롭기만 한 몬트리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폴리테크닉 학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89년 12월 몬트리올의 에콜 폴리테크닉 공대에서 마크 르팽이라는 기계공학도가 여대생만을 대상으로 무차별 총격전을 벌였고, 결국 14명의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드니 빌뇌브는 아이러니한 흑백의 아름다운 화면을 통해 이 사건을 돌아봤고, 캐나다의 권위 있는 영화상 지니 어워드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비롯해 9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폴리테크닉>에서 살인자로 분한 배우 맥심 고데트는 <그을린 사랑>에서 쌍둥이 중 시몽으로 출연했다. 그에 이어 1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그을린 사랑>은 베니스, 토론토 등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수상하였고, 지난해 부산영화제 화제작이기도 했다. 중동 내전으로 고통 받는 한 여인의 역사를 지극히 영화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깊이 있게 주제를 담아냈다.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필연적으로 비극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전쟁

영화의 원제는 Incendies, 불어로 화재, 큰불, 넓게 퍼진 붉은 광채, 공란, 전란의 뜻을 담고 있다. 전쟁의 참상에 현미경을 들이대어 밀도 있게 보여주지만, 통곡에 젖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을린 사랑’이라고 옮긴 우리식의 표현 또한 적절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명은 지구상에 실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구체적인 지명이나 나라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가상의 지명을 사용했다. 전쟁의 잔인함을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기보다는 필연적으로 비극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전쟁 자체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강한 설득력을 유지한다. 이는 캐나다와 중동의 지역색을 강조하지 않는 감독의 의도에서도 알 수 있다. 캐나다의 회색빛 겨울 풍경과 뜨거운 중동의 갈색 풍경을 매우 중립적인 채도로 설정하였다. 카메라 프레임의 여백은 대사보다는 공간과 인물의 감정이 흘러가는 분위기가 훨씬 더 격렬함을 사유하도록 한다. 폭력은 한결같이 ‘고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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