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 162] 산사나무 아래(감독 장이모우·2010)
[시네마 산책 162] 산사나무 아래(감독 장이모우·2010)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 승인 2011.09.29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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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노스텔지어, 순수한 사랑 이야기

〈162〉산사나무 아래 Hawthorne Tree Forever(감독 장이모우·2010)
영원한 노스텔지어, 순수한 사랑 이야기

<산사나무 아래>는 항일전쟁에서 학살당한 선열의 붉은 피 때문에 흰꽃이 붉게 핀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장이모우 감독은 혁명정신을 촉구하는 문화혁명 당시를 배경으로 거대담론에 묻혀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섬세하게 복원했다.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산사나무를 매개로 한 순수한 사랑은 한편의 동화와 같다. 다정하고 친절한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에 애잔함을 꽃피운다. 혁명의 의지가 붉은 꽃 전설의 기원이라면,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다시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돌아가서 흰꽃을 피운다. 사회적 제약 안에서 이별을 알고 가는 사랑은 헌신적일 수밖에 없다. 장이모우는 문화혁명을 밑그림으로 사용하면서도 정치적 논쟁을 비켜감으로써 온전히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한다. 문화대혁명, 계급, 농촌, 빈부 갈등이 배경이지만, 영화는 느린 속도로 조용히 제 길만을 향하여 간다.


▲ 산사나무 아래 Hawthorne Tree Forever(감독 장이모우·2010)
이야기는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로 이어지는 단순한 플롯이다. 이 단조로운 이야기를 안받침하고 있는 토대는 ‘진정성’이다. 주동우(징치우 역), 두효(라오산 역) 두 신인 배우가 엮어내는 담백하고 자연스런 연기를 통해서 진정성을 형상화한다. 그간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가 주윤발, 유덕화, 장쯔이, 공리 등 이름난 스타들과 함께 빛이 났다면, 이 영화는 신예를 기용하여 순수함을 부각시킨다. 장이모우 감독은 초기에 <산사나무 아래>와 같이 역사 주변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많이 다루기도 했다. 다시 보통 사람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댔다는 점에서 장이모우 감독에게 이 영화는 십년만의 귀향과도 같다.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거장이 만들었던 <책상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등과 같은 초기작을 돌아보게 한다. 대작에서 소박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온 장이모우 감독의 행보는, 감독으로서의 자기 자신 역시 초창기의 순수한 작가정신을 잃지 않았음을 항변하는 듯하다.

실화에 토대를 둔 <산사나무 아래>는 실제 인물인 여주인공 징치우가 썼던 회고록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장치우의 친구 아미(艾米)의 원작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문화대혁명 기, 교재편찬을 위해 항일 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시골 마을로 내려간 징치우는 그곳에서 지질탐사대원 라오산을 만난다. 라오산은 당 간부의 아들이지만, 징치우는 사상이 더 무장되어야 할 학생 신분으로 자신의 당성(黨性)을 보여주어야 할 과업을 안고 살아간다. 징치우의 집은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고, 가세가 몰락한 상황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라오산의 사랑은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징치우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간다. 그들의 사랑은 세월의 무게나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본연의 모습을 지켜나간다. 그 '순수함'은 남성 감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고 정감 어린 연출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온전히 순수한 사랑에 집중한다는 점은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단조로운 스토리는 제작 당시부터 감독의 염려를 낳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부한 사랑 이야기로 읽혀질 수도 있고, 지나치게 상투적인 표현이 거슬리기도 한다.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배경의 아픔이 더해진 순수한 남녀의 사랑은 과장 없는 연출로 빛이 난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연출뿐 아니라 제작을 맡은 장이모우 감독의 자신감으로 재탄생했다. 장이모우는 <영웅>, <연인> 등 스케일이 큰 영화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정형화된 리얼리즘에 충실했던 중국 5세대 감독이기도 하다. <산사나무 아래>는 그러한 방식을 뒤집어서 아픔과 상처를 형상화한다. 두 주인공이 역사적 굴레인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세상의 변화를 꿈꾸기 때문이다.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블록버스터에서 베이징 올림픽 공연까지 스펙터클한 연출로 정평이 나 있는 장이모우 감독은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잔잔하면서도 소박한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문화혁명기를 나도 겪었고 그 안에 순수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연출계기를 밝혔다. <산사나무 아래>의 안개 속을 유영하는 듯한 낮은 톤의 색감과 음악은 희미한 첫사랑의 기억과 만나게 한다. 과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인 그리움과 만날 수 있는 한편의 서정시와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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