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산책]〈170〉율리시즈의 시선
[시네마산책]〈170〉율리시즈의 시선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1.12.15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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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필름과 영혼과 사랑을 찾아서…
<율리시즈의 시선 Ulysses' Gaze, 1995)> 감독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율리시즈의 시선>은 1995년에 유럽영화상과 유럽영화아카데미 비평가상은 물론, 같은 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다. 그리스 영상문학가, 테오 앙겔로폴로스의,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에는 하비 키이텔, 마이아 모건스턴, 올랜드 조셉슨 등이 출연한다. 대하드라마 같은 ‘느림의 미학’으로, <안개 속의 풍경>에서처럼 테오 앙겔로폴로스의 극단적인 롱테잌샷이 유장하고도 심오하게 침묵의 시선을 강요하는 중요한 카메라 작업이 된다.

미국으로 망명한 그리스 출신의 한 영화감독(하비 키이텔 분)이 3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표면상의 방문 이유는 자신의 화제작 시사회 때문이지만 사실은 영화사 초기에 발칸 반도에서 촬영되었다고 구전되는 한 무성영화의 프린트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초창기에 그리스 출신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마나키아 형제가 발칸 반도 지역의 역사와 관습을 담은, 그리고 전쟁에 휩싸여 미처 현상되지도 못한 세 통의 필름을 찾기 위한 것이다. 실존의 공간과 시간을 거스르는 이 여행은 알바니아에서 마케도니아로, 루마니아에서 보스니아로 이어지는 발칸 반도의 영혼 순례로 이어진다. "발칸지역 최초영화인 <그리스, 아베델리 마을의 베 짜는 사람들, 1905년>을, 그 최초의 시선을, 첫 눈에 사라진 순수를", 찾아나서는 이 여정은 내분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상실된 순수시대로의 기억의 여정이다. 그것은 주인공의 시공간적 경계가 사라진 기억과 사유 속의 "총체성의 그리스 미학적" 색채를 띤다.

택시를 기다리던 그는 과거의 연인을 만난다. 그것은 그의 추억 속 환영에 불과할 뿐, 물결처럼 밀려오는 촛불 행렬의 군중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철모 진압군 사이에서 그녀의 모습은 이내 실체 없이 사라진다. 알바니아의 국경을 넘는 도중에서 여권 문제로 길을 가지 못하는 노부인을 그는 태워주기도 하며, 택시 운전사와 눈발 섞인 산모퉁이에서 지금까지 가장 이상적인 국가였다고 전해지는 자신의 모국인 지난 시절의 그리스의 몰락과 상징적인 죽음을 술을 마시며 애도하기도 한다. 기억의 시간으로 가는 이 여행길에서 마나키아 박물관의 여성 신문기자를 만나 그녀로부터 그 필름이 부카레스트의 스코피에 있다는 말을 그는 전해 듣게 된다. 하지만 거기엔 불행히도 그가 찾는 세 통의 필름만 없다. 마나키아 형제의 형인 야나키스는 죽었으며, 동생인 밀토스는 그 필름을 유고 정부에 팔았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그는 다시 부카레스트를 향해 떠난다. 기차역에서의 검문이 있게 되고, 스크린 상의 그의 의식은 과거로 돌아가서, 그 당시 국경을 넘다 수비대에게 체포된 야나키스를 만난다. 야나키스는 무기 은닉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 판결을 받는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가운데 그는 '야나키스의 눈'으로 유배지 앞을 흐르는 강물을 응시한다. 그러는 사이, 그의 의식은 과거로 돌아가 어느 새 자신의 개인사로 빠져든다.

전란에 휩싸인 거리에는 새로운 세계를 주장하는 붉은 깃발의 행렬이 있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린 그는 1945년 당시의 유년 시절의 집으로 들어간다. 한 대의 피아노가 놓인 거실에 서 그의 시선은 평화로운 가족들이 체포당하는 순간들과 또한 다사다난한 역사의 뒤안길을 본다. 가족 체포자들은 어느 순간에는 비밀경찰로서 들이 닥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인민위원회의 이름으로서 가구를 압류하기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이러한 그의 유년시절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정지된 채 응시의 오브제가 될 뿐이다. 동행했던 신문 기자와 헤어져 철거된 레닌 동상과 함께 그는 강을 따라 내려온다. 자기가 탄 배가 시간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것을 저 멀리서 바라보는 강가의 사람들과 함께, 그도 역시 무표정하게 그 풍경을 응시하며, 떠내려가는 이데올로기의 몰락선 뱃머리에 서서 그도 함께 떠내려간다. 레닌은 살아서는 한때 희망이었지만 이제 죽어서는 슬픔의 이름이 되고 있는 순간이다. 그것은 일찍이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저주받은 계급에게 희망을 주었던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최후의 순간에 대한 '율리시즈의 시선'이다.

몰락한 이데올로기의 배를 타고 와 그가 착륙한 베오그라드에서 그 필름 세 통이 사라예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라예보로 가는 길에서 이제 그는 세 번째 여자를 만난다. 망자가 된 남편의 옷을 그에게 입히고 사랑을 나누기 까지 하는, 불가리아 태생의 그 처녀는 전쟁과 죽음으로 얼룩진 조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침내 그는 사라예보에서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이보 레비를 만난다. 자칭, '사라진 시선의 수집가'인 이보 레비는 수많은 옛날 영화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영화제작자이다. 여기에서 그는 그 시선들, '카메라의 시선'들을 개인의 서가에 가둬둘 권리가 없는 것이라고 이보 레비에게 일갈한다.

이보 레비가 세 통의 필름 현상을 하는 사이, 그는 또 다른 여인, 이보레비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저격수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안개 낀 날은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기도 하니까, 현상된 필름이 마르는 동안, 강변 산책이나 해보라는 이보 레비의 권유대로, 그는 안개 자욱한 강변 댄스 축제에서 춤을 추는 이보 레비의 딸과 흥겨운 리듬에 그는 흥겹게 몸을 맡긴다. 후반부의 이 시퀀스는 특별히 더욱더 <안개 속의 풍경> 시리즈 같은 분위기다. 이어서 일단의 군인들은 축제의 사람들을 무참히 사살하고 "아이들은 안 돼"라는 피살자들의 보이스오프 절규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이보 레비 딸의 시신을 안고 그는 통곡한다. 그곳은 바로 혼돈의 안개 속 아비규환의 발칸반도이며, 동서양의 종교적 문화적 접경지대인, 처참한 '혼돈과 한숨의 땅'이다. 이보 레비의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현상된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가운데 깊은 슬픔의 침묵에 잠긴다. 그토록 오랫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헤맸던 그의 눈에는 어느 덧 이슬이 맺히고 기나긴 여정은 위안과 안식이 아닌, 참혹한 절망으로 마감된다.

잃어버린 필름과 영혼과 사랑을 찾아서, 기억의 강과 길을 거슬러가는 한 영화감독의 조용한 순례 여정은 여전히 되풀이되는 미시적 거시적 생존경쟁과 전쟁과 광기와 죽음의 참혹한 현실로 귀결될 뿐이다. 하여, 그는 '사라진 순수'를 처연하게 바라보며 나직이 되뇐다, "내가 우는 것은 당신(사라진 순수?)을 사랑할 수 없어서요. 자, 부서진 희망을 위하여, 저 무한한 바다를 위하여, 또 다른 시작과 끝을 위하여, 건배!"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백제예술대학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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