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 탈출, 후백제 망국의 길로
견훤 탈출, 후백제 망국의 길로
  • 박아론 기자
  • 승인 2012.01.01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정형의 술술술](6)술에 취해 견훤을 놓친 파달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황간 견씨로 44년간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아자개의 아들인 그는 신라 말기 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남해의 방위에 공을 세워 비장이 됐다가 나라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 진성여왕 6년(892년)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해 지금의 광주인 무진주를 점령하고 900년에는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까지 점령한 후 스스로 후백제 왕이라 칭했다. 그는 중국에도 사신을 보내 국교 정상화를 기하면서 궁예의 후고구려와 자주 충돌했으며, 그 뒤 918년에 건국한 고려와도 자주 무력 충돌을 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견훤은 고창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한 후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나이 70을 바라보게 되자 전원을 벗 삼아 살아가리라 마음먹고 그가 가장 귀여워하는 후궁 소생인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계승시킬 구상을 했다. 견훤은 왕위를 금강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유유자적할 생각에서 금산사를 새로 지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울에 남아 있는 큰 아들 신검을 격노케 했고, 신검은 두 동생의 동조를 구해 왕위 쟁탈전을 일으켰다.

재위 43년째 되는 해 봄 견훤이 춘곤증을 이기지 못해 잠시 잠이 들었을 때 궁성 밖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렸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을 때, “대왕은 이미 늙었으니 큰아들 신검 왕자에게 양위하심이 현명하오”라는 강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에 견훤은 금강을 불렀으나 그는 이미 궁내의 수비 장군에게 살해 됐다는 소식과 함께 신검이 벌써 왕위에 올랐다는 전갈이 전해졌다. 결국 그는 첩 고비의 소생 능예와 시녀 셋과 함께 금산사에 유폐됐다.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할 기회를 엿보던 어느 날 첩 고비가 좋은 꾀를 냈다. 파수 보는 파달에게 좋은 술을 대접해 곯아떨어지게 한 뒤 탈출할 것을 계획하고 곧 실행에 옮겼다.

대우가 좋지 않았던 파달은 고비의 교태 젖은 몸짓에 빠져 그가 주는 대로 안주도 없이 술을 마구 받아 마셨다. 그는 뱃솟이 찌릿하다가 얼마 안 있어 절이며 나무가 빙빙돌더니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다. 이틈에 견훤 일행은 배를 타고 나주로 도망가 935년 왕건에게 투항했다. 신망 높던 왕건은 견훤을 친히 마중 나가 공손히 맞이하고, 원로로 대접하며 남궁을 내주고 상부의 칭호도 줬다.

왕건은 다음해 견훤에게 큰 아들 신검의 토벌을 요청해 후백제를 멸망케 했고, 결국 견훤도 그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