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금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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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보러 가자, 벌 나비도 함께 가자
[김판용 시인의 여행기]봄꽃을 찾아서(1)
2012년 03월 22일 (목) 김판용 시인 APSUN@sjbnews.com
   
 
  ▲ 부부처럼 서 있는 변산바람꽃의 자태  
 
봄비가 내렸다. 같은 비지만 봄에 내리는 비에는 생명의 혼이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비에 젖은 나무와 풀들은 새로운 싹을 피워낸다. 어디 그뿐인가? 얼었던 땅을 녹여 흙속에 갇힌 씨앗들을 움트게 한다. 말라붙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푸나무들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비가 비로 봄비이다. 그래서 비록 추적거리기는 하지만 봄비는 내려도 그리 을씨년스럽지가 않다.

고려 때의 문인 정지상(鄭知常)은 <송인(送人)>이라는 시에서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하니,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라’라고 노래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비 갠 긴 둑에 풀빛이 진한데, 남포에 임을 보내는 구슬픈 노래가 흐른다.’라는 것이다. 비가 개면 긴 강둑의 풀빛이 짙어진다는 표현, 그리고 그 풀빛과 더불어 이별하는 자신의 슬픔도 깊다는 이별의 노래이다. 요즘 이별하는 연인들이 과연 이 슬픔을 공유할 수 있을까?

   
  ▲ 봄비에 맺힌 이슬에 들어앉은 내변산 풍경  
 
봄비를 노래한 시 중에 이수복의 시는 그야말로 백미 중에 백미이다. 흔히 봄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처럼 억압의 겨울에서 해방되는 계절로 파악하곤 했다. 그만큼 우리 현대사가 굴곡이 심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는 진정한 봄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수복의 <봄비>는 아주 정감이 간다.



   
  ▲ 붉은노루귀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 잎과 꽃에서 생강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꽃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정지상의 시처럼 비가 갠 후에 풀빛이 짙어 감을 서러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민물의 소생과 함께 오는 봄날의 애상, 그리고 아련한 추억이 잘 버무려진 한편의 수채화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 봄비가 내렸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 짐을 꾸렸다. 이른 봄비의 훈김에 성질 급한 꽃들이 피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그리고 복수초이다. 이 꽃들은 힘이 약하다. 그래서 풀이나 나뭇잎이 자라면 햇볕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일찍 꽃을 피운다. 다른 식물과 싸우지 않으려는 약한 꽃들의 지혜라고 할 것이다. 먼저 변산 바람꽃을 찾기로 했다.



   
  ▲ 흰노루귀  
 
▶봄비 속에 꽃들을 만나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바람꽃이 10여 종 정도 되는데 그중 선병륜 교수에 의해 변산반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바람꽃을 ‘변산바람꽃’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꼭 변산에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개체수가 많지는 않지만 전국에서 자생하는 꽃이다. 주로 추운 곳에서 꽃을 피우는 바람꽃을 서양에서는 아네모네라고 한다. 이 말은 그리스어의 아네모스(Anemos)에서 왔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꽃의 신 플로라에게는 아네모네라는 미모의 시녀가 있었다. 그런데 플로라의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아네모네를 사랑했다. 이 사실을 안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멀리 쫓아버렸다. 제피로스는 바람을 타고 아네모네를 찾아가 사랑을 나눈다. 이들을 의심하던 플로라가 새로 변해 그 광경을 보았다. 그녀는 질투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슬픔에 젖은 제피로스는 언제까지나 아네모네를 잊지 못하고 매년 봄이 오면 늘 따뜻한 바람을 보내어 아네모네를 아름답게 꽃 피운다고 한다.

변산바람꽃은 낙엽이 쌓여있는 습지에서 자란다. 내변산에 접어들자 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낙엽 사이에서 그리고 바위틈에서 꽃들이 얼굴을 내민다. 비가 내려서인지 세수하고 단장한 새색시 같다. 그때 한줄기 바람이 지나갔다. 언젠가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에서 뮤지컬배우 소냐가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소리 없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그 소리에 전율을 느꼈었다. 바람꽃잎이 파르르 떨었다. 바람꽃이 바람꽃다워지는 순간이다. 소리 없이 흐르는 바람이 저리 봄을 부르고 세상의 꽃을 피워낸 것이 아니겠는가?

자세히 보니 변산바람꽃뿐 만이 아니다. 흰노루귀와 분홍노루귀도 한창이다. 노루귀는 변산바람꽃보다 꽃잎이 작은데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잎이 난다. 사실은 꽃잎은 퇴화하고 꽃받침이 남은 것이라 하는데도 참 예쁘다. 이름도 재미있다. 잎의 모양이 꼭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른 봄 노루귀를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그만큼 다른 꽃들보다 일찍 핀다. 그래서 눈을 뚫고 꽃이 핀다 하여 파설초(破雪草)라는 별명도 갖고 있기도 하다.

변산바람꽃과 노루귀를 벗 삼아 오르다가 직소폭포를 만났다. 2주전에 왔을 때 폭포에 고드름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말끔하게 녹아 내렸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비가 내린 탓에 폭포의 물소리가 더 거세게 들린다. 그렇게 내리는 폭포에 비해 연못의 물은 잔잔하고 맑다. 그야말로 옥빛이다. 어느 물빛이 이보다 더 고울 수가 있을까?



▶ 부안삼절 직소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개성에 삼절이 있다면 부안에도 삼절이 있다. 신석정 시인은 계생 이매창과 그의 연인 촌은 유희경 그리고 직소폭포를 일컬어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 칭했다. 황진이와 서경덕 그리고 박연폭포의 송도삼절과 견줄 만한 부안의 자랑이다. 시와 거문고에 능했던 이매창과 대쪽 같은 선비 유희경의 애절한 사랑, 그 들의 사랑은 서화담과 황진이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희경이 나라의 부름으로 떠나고 난 후에 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엇갈리게 된 것이다. 이매창이 유희경을 기다리면서 썼다는 시조 한편이 떠오른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직소폭포에서 재백이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평탄하기 그지없다. 깊은 산 속에서 어떻게 이런 길을 만날까 싶을 정도다. 그 길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버드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한 털을 세우며 봄볕을 째려고 이리저리 몸을 옮기는 것처럼 바람에 흔들거린다. 입구에서 재백이고개의 고도 차이가 100M 밖에 나지 않는다. 직소폭포의 30M 낙하를 생각하면 기껏 해발 70M 높이로 등산을 한 것이니 길이 얼마나 평탄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 길가에도 꽃들이 피어있다. 나무에 피는 꽃들도 이른 것들은 잎이 피기 전에 나온다. 직소폭포를 지나가는 길에 생강나무 꽃이 움을 틔우고 있었다. 생강나무는 강원도에서는 동박나무라고 부른다. 그 노란 꽃을 일컬어 ‘동박꽃’, 또는 ‘동백꽃’이라고 한다. 정선아리랑에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넘겨주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에서 보듯 이주 흔한 꽃이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백이 아니라, 바로 이 생강나무 꽃이다. 두 주인공이 노랗고 알싸한 동백꽃에 푹 파묻혔다는 것은 바로 생강나무가 한창인 그 봄날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이른 봄 주꾸미가 많이 잡히는 곰소항  
 
▶ 변산바람꽃은 지금 주꾸미와 연애 중

이른 봄 꽃을 찾는 여정은 여기서 접기로 한다. 산골에서 꽃들을 그만큼 보았으니, 이제 드넓은 바다가 보고 싶어기 때문이다. 재백이공개에서 관음봉으로 바로 오르면 바다가 보이겠지만 눈으로만 보는 바다를 어디 바다라고 할 수 있는가? 파도소리도 듣고, 바람에 밀려오는 갯내음도 맡아야 옳게 바다가 아닌가 해서 말이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와 곰소로 향했다. 곰소는 한때 항구가 있었으나 갯벌이 차는 바람에 격포에 항구를 내주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고깃배들이 드나든다. 그리고 예전부터 형성된 젓갈시장과 바다를 곁에 둔 수산시장과 횟집이 있어서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이른 봄 서해바다는 주꾸미의 계절이다. 곰소 역시 외에가 아니어서 변산바람꽃이 필쯤 그야말로 주꾸미 맛이 제대로 바람이 난다. ‘변산바람꽃이 목하 주꾸미와 연애 중’이라고나 할까? 정말 궁합이 잘 맞는다.

꽃을 만나러 산으로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끝없이 유혹하는 꽃들에 마음을 빼앗기다가는 끼니를 놓치기 일쑤이다. 재백이고개까지 꽃을 찾아 헤맨 길이니 오늘도 맟나가지다. 늦은 점심과 더불어 주꾸미를 시켰다. 접시에 오른 주꾸미가 꿈틀거린다. 좀 잔인하지만 어쩌겠는가?

꽃이 아름다워지는 계절이다. 이미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그리고 생강나무와 복수초가 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들판에 나가면 푸른빛의 봄까치꽃도 한창이다. 또 양지바른 곳에서는 산자고도 보라색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니 꽃구경을 가자고 할 수밖에…… 봄은 오는가 싶으면, 또 가버린다. 그렇게 왔다가는 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리라. ‘친구야, 꽃구경 가자, 벌나비 너도 가자.’고 그렇게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황토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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