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 되거나, 또는 공룡을 만나거나
공룡이 되거나, 또는 공룡을 만나거나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2.04.12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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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디어 한나
<디어 한나>(Tyrannosaur, 2011)
감독 : 패디 커시딘 배우 : 피터 뮬란(조셉), 올리비아 콜맨(한나)

영국은 계급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나라다. 이는 1950년대부터 연구된 문화주의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영국 버밍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는 2차 세계 대전이후 영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문화주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당시 영국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부활, 복지 정책의 수립,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항한 서구 세력의 결집 등으로 새로운 시대를 경험하였다. 계급 쇠퇴는 과거와 단절된 것처럼 보였고, 대중문화가 새로운 미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문화 연구는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재평가하려는 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각 계급 - 특히 노동자의 문화 - 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철광산업의 쇠퇴로 나타난 실직 문제를 다루고 있는 피터 카타네오의 <풀몬티>(The full monty, 1997), 각성하는 건축 노동자 이야기인 켄로치의 <하층민들>(1990), 관계의 사계(四季)를 다루고 있는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2010)과 같은 영화들이 이러한 토양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조셉(피터 뮬란)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남자다. 5년 전 아내가 죽고 난 뒤 광기와 같은 분노에 시달린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불화하며 실패작 인생이 되어버린 조셉은 언제든지 누군가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야수와 같다. 큰 소리로 떠드는 청년들을 때려눕힌 어느 밤, 그들로부터 린치를 당한 조셉은 기독교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활용품 가게로 도피한다. ‘로버트 드니로’ 라고 말하는 조셉에게 가게점원 한나(올리비아 콜먼)는 영혼을 울리는 따뜻한 기도를 선물한다. 그 앞에서 조셉은 눈물을 흘리며 위로 받는다. 다시 가게에 찾아온 조셉은 폭력적인 말로 한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녀는 표면상으로 완벽해보이지만, 끔찍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다. 종교에 의지하며 위태로운 삶을 간신히 유지하던 한나는 조셉을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의 문제적 삶에 직면한다. 단지 기도만이 필요했던 조셉은 필요이상으로 한나에 대하여 알게 되고, 서로의 삶에 개입한다. 세상의 통념으로 이해될 수 없는 만남은 내면 깊이 존재하는 어둠을 간직한 인물들이기에 가능하다.



<디어 한나>는 상처로 가득 찬 영혼들이 만나서 서로를 치유해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멜로의 틀에 구속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한다. 순진한 감성과 낭만적 사랑에 안주하지 않는다. 상처 받은 영혼의 구원을 다루면서도,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조셉의 정신적 고통과 폭발하는 분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단지 노동자 계급 남성이 가지는 폭력성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노동자 계급의 삶을 리얼하게 연출한 패디 커시딘 감독은 켄 로치, 마이크 리의 전통을 이어간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배우로 활동하는 패디 커시딘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를 통해서 작가,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입증했다. <디어 한나>는 영국아카데미, 런던비평가협회, 시카고국제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유수 영화제의 주목과 인정을 받았다.



<디어 한나>두 배우의 연기를 빼놓고 이야기 될 수 없다. 배우들은 각자의 계급에 맞는 에티튜드를 무의식적으로 연기한다. 한나를 연기하는 올리비아 콜맨은 <철의 여인>에서 마가렛 대처의 딸로 기억되는 배우다. 피터 뮬란은 분노, 자책, 외로움, 연민의 표정 연기를 한 테이크 안에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감독은 롱테이크롤 활용하여 배우들이 내면 연기를 최대한 발휘하게 했다. 한 테이크에서도 두 배우의 표정은 변화무쌍하다. 거침과 부드러움, 강함과 연약함의 상반된 성격이 하나의 테이크에 동시에 담긴다. 두 배우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성찰의 내공이 연기로 빛을 발한다.



영화의 원제목은 <타리노소어>(Tyrannosaur)다. 가장 강력한 육식 공룡인 티라노소어는 조셉의 죽은 아내의 별명이지만, 동물적인 본능을 의미한다. 공룡과 인간을 구별 짓는 것은 타인을 공격한 전후에 보여주는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폭력과 연결되는 죄책감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이다. 사소한 잘못에도 크게 분노하는 우리 안의 공룡 또한 언제 뛰쳐나올지 모른다. <디어 한나>처럼 따뜻한 제목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공룡같은 분노와 폭력성, 평온한 일상 안에 은폐되어 있는 거대한 사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원제목이 더 합당할듯하다. <디어 한나>는 연민과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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