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가족, 혈연 중심의 관습적‘가족 이기주의’서 벗어나는 곳
진정한 가족, 혈연 중심의 관습적‘가족 이기주의’서 벗어나는 곳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2.05.03 2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산책]〈187〉심플라이프 (감독 허안화·2011)
제 1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심플 라이프>는 1980년대 홍콩뉴웨이브 대표적인 여성감독 허안화의 뛰어난 연출력과 절제된 카메라워크와 단정한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저명한 홍콩 프로듀서 로저 리의 실제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표현적인 과장 없이도 다양하게 섬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사실적인 연기로 타오지에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중견 여배우 엽덕한은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량사오 역을 맡은 유덕화는 제48회 타이완 금마장 영화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서극과 홍금보 등 홍콩영화인들이 까메오로 등장하여 재미를 더해 주기도 한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같은 집에서 가정부로 일해 온 타오지에와 그녀의 주인집 아들인 량사오 사이의 이야기다. 타오지에는 각종 해산물 고급요리와 우설 찜 같은 정성이 담긴 요리들을 특별히 잘하고 언제나 알뜰살뜰 주인 집 안살림을 챙기는 돌봄 노동에만 오로지 전념하는 곱상하고 자그마한 유순한 인상의 가정부다. 반면에 얼핏 무심한 듯 약간 건들건들 시건방진 표정의, 영상산업 관련 프로듀서로 일한다는 주인집 아들 량사오는 그런 타오지에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당연히 여기며 놀리는 듯 즐긴다. 량사오의 친한 친구들도 타오지에의 요리솜씨를 인정하면서 젊은 시절의 그녀를 기억하며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이야기하곤 한다. 각별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통념적인 주인과 하녀 관계라기보다는 어딘지 마치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같은 냄새가 풍기는 미스테리한 느낌을 준다. 어느 날 늙고 병들어 더 이상 가사 노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타오지에는 량사오에게 스스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양로시설 입소를 자청한다. 입소 이후 타오지에는 그 시설의 새로운 환경에 차츰 적응해 가면서, 한결같은 량사오의 관심과 배려를 받으며, 새로이 알게 된 그 곳의 사람들과 량사오네 가족이 그녀에게 베푸는 애정과 사심 없는 배려를 받으며 마침내 죽음에 임한다. 항상 여기 저기 외부 출장이 잦고, 약간 무심한 듯 수수한, 같이 지내다보면 점차 마음속 따뜻한 정겨움이 묻어나는 량사오와 그의 친구들에게 일편단심 아들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건강을 챙기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시중을 들어주던 타오지에의 모습은 오늘날 오래 잊고 지낸 '현모양처'라는 아련한 단어의 향이 피어오르는 고대 유물 같다. 세월이 흘러 입장이 바뀌어 이제는 노인 요양병원에 들어가 있는 늙고 병든 타오지에를 수시로 찾아와 예전의 타오지에가 그렇듯이, 마치 사소한 듯 아무렇지 않게 애정 어린 세심한 간호를 아끼지 않는 량사오의 털털한 모습은 훈훈한 그림으로 찡하니 가슴에 남는다. 노인병원에서 잠시 외출 나온 타오지에가 그동안 깊숙이 보관해온 어릴 적 량사오와 함께 찍은 타오지에의 사진들과 량사오의 배냇 옷가지들과 유아용품들을 꺼내 보여줄 때, 량사오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혈육보다도 더 진한 모자 관계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그런 느낌 때문에, 량사오와 타오지에는 단순한 가정부와 주인집 아들을 넘어선, 어딘가에 은밀한 내막의 스토리 낌새가 있을 것만 같아서 은근히 뭔가 '세속적'인 반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심플 라이프>는 크레딧만 올리며, "여보세요! 진정한 '가족'이란 단지 '혈연' 중심인 당신네의 관습적 '가족 이기주의'를 벗어나는 곳에도 많이 있는 거라 구요!" 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았다. /김성희 객원기자(백제예술대학교수, 전북비평포럼),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