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심장에서 종소리가 난다고 한다. 댕~댕 하며 가슴에서 울려대는 종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운명적인 사랑이 왔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필자도 심장을 울려대던 종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안도다다오(Ando Tadao) 건축에서, 파주 한길사에서 그리고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의 건축에서 저절로 눈물이 고일만큼 강한 종소리를 들었었다. 그리고 古정기용 건축가의 프로젝트에서 마지막 종소리를 들었다. 그 설렘의 시작은 무주 버스정류장이었다.
버스 정류장은 전주에서 무주로 가는 국도변에 있다. 운전하기에 지친 어느 날 이 작은 건물 주위를 서성였다. 덥석 앉기에는 먼지가 많아 망설여졌다. 그러나 여느 정류장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 때문에 살짝 엉덩이를 댔다. 그러다 등을 펴고 어깨를 기대는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건축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가슴 뛰는 설렘이 들었다. 이 작은 구조물이 가슴으로 걸어왔다. 건축을 통해 건조한 일상이 감성적 삶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이 정류장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었다. 어떤 건축가가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자연을, 사람과 시간을 감응하게 하는 것일까.
▲ 기다림은만남을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서정윤이곳 버스 정류장은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인 古정기용 건축가의 무주공공시설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지방도로의 버스정류장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정기용 건축가는 험난한 산자락을 가진 무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버스정류장을 만들기 위해 건축의 총체적 접근을 모색했다. 대지 위에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주변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주변경관에 어떻게든 필연적으로 관계를 하게 된다. 이에 정 건축가는 “생명력을 가지고 자연과 맞설 것인가 아니면 휴지통처럼 내팽개쳐 둘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서 있기는 하나 존재하지 않은 풍경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기록했다.
감응의 건축에 따르면 건축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존재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거대한 자연 풍경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힘, 이 외롭게 홀로 떨어진 존재의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건축가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힘 있게 존재한다. 이를 위해 콘크리트로 두께 25cm의 강력한 벽체를 세웠다. 스스로 벌판에 서 있는 벽체야 말로 공간을 안정시키는 최소한의 힘이 된다. 산들이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힘으로 존재하지만 작은 버스정류장도 ‘너는 산이고 나는 구조물’이라고 각자 존재를 인정하게 한다. 둘째, 건축 프레임을 통해 전체 자연의 일원이 되었다. 개구부는 자연스럽게 풍경을 끌어들이며 자연과 버스정류장은 하나가 된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주목했다. 보통 일렬로 만들어진 정류장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시선의 부딪힘이 없다. 하지만 이곳 정류장에서는 시선의 교차를 통해 우연(偶然)히 같은 공간에 있게 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무주의 작은 버스정류장을 통해 건축이란 무엇이고 건축가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가 다시금 반성이 된다. 현실의 많은 건축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시간적 이유로 최소한의 법적 요건만 갖춰지면 당연하다는 듯이 건축을 기계적으로 양산(量産)하고 있다. 무주의 작은 버스 정류장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건축가의 역할이다.
필자가 이곳에서 받은 감동은 글로 표현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무주를 지나게 되면 이 곳 버스정류장에 한번 앉아 달라는 그런 부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앉으면’ 분명 건축의 감동과 설렘을 느끼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인간이 만든 건축이 자연보다 더 위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 대표>·사진=김우철 참고도서: 감응의 건축(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 후암약수터 정류장
▷ 후암약수터 정류장 : 주동진 <남산의 생태> 후암약수터에 설치된 주동진 조각가의 <남산의 생태> 작품에는 개구리가 등장한다. 이 개구리는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토종개구리가 최근 후암약수터에서 발견된 것을 상징화하고 있으며, 남산의 생태가 복원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
▷ 보성여중고(한남방향) 정류장 : 김재영 <휴식> 보성여중고입구에는 조각가 김재영의 TV를 형상화한 작품 <휴식>이 설치됐다. 자연을 즐기러 나온 관광객과 매일 통학하는 학생들에게 생기 넘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남산을 스치는 시민들에게 한층 즐거운 풍경을 제공하고 있다.
▲ 보성여중고(한남방향) 정류장
▷ 보성여중고(시청방향) 정류장: 이중재 <마뫼부해> 길 건너 맞은 편 정류장에도 회색빛 도시에 삶을 윤택하게 하는 포자를 날리는 균의 형상을 한 이중재 작가의 작품 <마뫼부해>(마뫼는 남산의 옛말, 부해는 사람에게 이로운 균을 의미)가 설치됐다.
▷ 하얏트 호텔 정류장: 스가타고&김현근 <쉼표, 또 다른 여정> 하얏트호텔 <쉼표, 또 다른 여정>의 작가인 스가타 고(일본작가)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이라는 김소월 시구에서 나타는 화자의 고민과 갈등의 마음을 작품에 조형적으로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