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2.05.17 2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산책]〈189〉건축학개론

날마다 새롭게 웃는 대지'의 어느 봄날, 아주 오래전‘추억의 연인'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카사블랑카>, <밀회>, <추억의 연인>, <위대한 갯츠비>, <겨울 나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클래식>, <러브레터>, <엠> 같은 이름들로 떠오르는, ‘불현듯 찾아온 옛사랑의 기억'이란 소재의, 이런 멜로드라마는 흔하지만 언제나 새롭고 애틋하게 기억속의‘옛사랑'을 건드린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우리 모두가 한번쯤 경험하는, 아릿한 상처로 남은 옛사랑을 화두로, 영화 <건축학 개론>도 그렇게 삶의 우연과 필연을, ‘존재와 시간'을 영상으로 말한다.
간결 명료를 미덕으로 삼는 디지털 시대에 ‘잃어버린 시간'을 아날로그식 정서로 잔잔하게 피드백하는‘진지하고 차분한' 이 영화는 <불신지옥>으로 데뷔한, 건축공학과 출신의 이용주 감독이 10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란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배경으로 이미 15년 전에 어긋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가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는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건축설계사 승민(엄태웅/이제훈)에게 15년 전 대학 새내기 친구 서연(한가인/수지)이 제주도에 있는 자기네 옛 집터에 집을 지어달라며 찾아온다.
대학 새내기 시절 <건축학 개론> 개방과목을 수강하러 오던 음악과생 그녀를 열렬히 좋아했던 승민으로서는 선뜻 그녀를 반기질 못하고 엉거주춤한다. 스무 살 그 시절과 15년이 지난 지금을 오가는 플롯으로, 건축주와 건축사로 다시 만나 집을 지어가는 동안, 이 두 사람은 정겹고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옛사랑의 기억을 반추하며 그 때 몰랐던 것들을 이제야 알게 된다.
재수생 친구 납뜩이(조정석)로부터 싱숭이와의 연애에서 터득한 연애비법을 종종 전수받지만, 순수해서 서툰 승민은 서연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도 못하고 망설이다가 끝내‘건축과 킹카' 재욱 선배의 작업에 걸려든(?) 서연을 '쟁취(?)'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 그랬지~"하며 속수무책으로 애틋한 첫사랑과의 어려운 작별을 하고 만다.
스무 살 서연이 승민에게 건넨 이어폰 한 쪽에서 흘러나오던 전람회의‘기억의 습작'과, 그룹 015B의‘신인류의 사랑'과, 삐삐와, CD플레이어 같은 소품들은 동시대적 공감과 함께 보는 이를 향수에 젖게 하는 90년대 추억의 아이템이다.
또한 정릉 토박이 승민과 고향 제주도를 떠나 정릉 친척집에 잠시 머무는 서연이 우연히 발견한 고풍스런 빈집과, 개포동 반지하방과, 창신동 골목길과, ‘Guess' 브랜드가 유행이던 그 무렵 짝퉁티 물씬 풍기는‘Geuss' 티셔츠만을 멋모르고 아끼며 입던‘눈물겹게(?)' 순수한 승민과 그의 홀어머니와의 삶의 터전을 그려낸 수유동의 시장 골목 등은 당대의 보편적 아날로그 정서가 풍부한 이용주 감독의 공간미학을 보여준다.
“술을 그냥 왕창 먹여. 업어. 집에 와. 침대에 눕혀. 벗겨. 그럼 돼." 라는‘킹카' 마초의 연애 비법이나, ‘남의 집 귀한 아들', 승민의 첫정을 배반한 수지를 가리켜‘썅년'이라 치부해 버리는 만년(?) 재수생, 납뜩이의 위로나, 먼 훗날의 약혼녀에게“내 첫사랑은 썅년이었다"라고 자위(?)하는 승민의 발언이나, ‘마초들의 성적 노리개'의 오브제(?)로 그려지는 서연, 그녀의“니가 내 첫사랑이었으니까."라는 항의(?)조의 나지막한 웅얼거림은 고스란히 모두 사라져버린‘순수 시대'의 몽타주를 이룬다.
지금쯤 첫사랑 추모 선물(?)인, 제주도의 2층 방 앞 테라스 잔디 마당 너머 저 멀리 태평양 끝까지의 모든 바닷물로 허기진 마음을 가득 채우며,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머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을 서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백제예술대학 교수·전북비평포럼)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