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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냅스 회로 | ||
*나는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못 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하면 전문가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매체가 인간에게 과거와 다른 풍요로움을 보장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매체 자체가 인간의 사고를 바꿔버린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은 이렇다. “현대 과학의 산물은 그 자체로는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기기의 가치는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신매체를 통해 어떤 콘텐츠를 전달하는가, 그 기기를 언제,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가의 문제이지 신기술 자체는 좋고 나쁨을 평가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럴까?
이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모습을 보자. “내가 생각하는 방식은 이전 같지 않다...나는 책이나 긴 기사를 쉽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사고력은 일부러 꼬아놓은 서사 구조나 논거의 변화 등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수 시간동안 긴 산문 속을 헤매고 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좀처럼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두 쪽만 읽어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서 안절부절못하고 문맥을 놓쳐버린다. 그러다 곧 다른 할 일을 찾아 나선다. 나는 다루기 어려운 뇌를 잡아끌어 다시 글에 집중시키려 애쓴다. 예전처럼 독서에 집중하던 행위는 어느새 투쟁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IT분야의 세계적인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그도 한때 인터넷의 정보바다에 빠져 환호성을 치던 사람이다. 이렇게 대단한 걸 왜 이제 알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예전 같으면 자료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이젠 검색어 몇 개로 세상에 널린 정보들을 순식간에 찾을 수 있다. 하지만 2007년 어느 날, 저자는 자신의 글 읽기 모습이 바뀐 것을 깨달았다. 웹을 많이 이용할수록 긴 글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웠고,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저자는 당시 느낌을 이렇게 말한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구글에서 무언가 검색하고 싶어 했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이런 상황은 저자만이 아니었다. 잡지사 출신으로 온라인미디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스콧 카프는 책읽기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게걸스럽다 할 정도로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그는 대부분의 읽는 행위를 웹에서만 하게 되었는데, 읽는 방식이 바뀐 것은 당연하고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웹에 따라 변했다고 한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평소 인터넷정보검색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와 유사한 상황을 고백한다. 브루스 프리드먼(의료분야 전문블로거)는 “나는 종이매체 또는 인터넷에서조차 장문의 기사를 읽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사고가 예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정보에서 핵심만 흝는 방식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저는 더 이상 [전쟁과 평화]와 같은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그럴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서너 단락이 넘는 블로그 글조차도 집중하기 어려워요. 그냥 쓱 보고 말죠.”
이들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오래전부터 많은 책을 열독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글 읽는 방식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물론 이런 상태를 모두 비관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과거 조용히 앉아 긴 문장의 책이나 잡지를 보며 사색하던 기능을 읽어버렸지만, 대신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양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 강력한 검색기능, 소수지만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과의 대화가능성으로 손실을 만회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미디어는 인간의 뇌 구조를 바꿔버린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20대 초반 프러시아군대에서 기병생활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낙마 때문에 다친 상처로 오랜 시간 고생을 했다. 1879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바젤대학교 교수자리에서 강제로 사임되었고, 그 후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유럽을 여행했다. 당시 그는 시력이 점점 나빠져 책장에 시선을 고정하기가 어려웠고,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과 구토증상 때문에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이제 글쓰기를 중단해야 하나보다 고민하고 있을 때 덴마크의 몰링 한센이 만든 타자기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를 주문하여 타자법을 배웠고, 타이핑 기술을 익힌 후부터는 종이에 시선을 맞추고 글자 하나하나를 적어나갈 필요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었다. 근데 사람들은 타자기를 사용해 쓴 니체의 글을 보며 문체가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글이 보다 축약되고 간결해졌다. 당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기계의 힘이 종이에 찍히는 단어로 이전된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 몫을 하지.”
* 뇌구조는 쉽게 변한다.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뇌의 기능을 뜨거워진 혈액을 식이는 냉각기라고 봤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며 뇌의 모습이 하나씩 베일을 벗게 되었고, 이제 뇌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의식, 감정을 통제하는 인간다움을 만들어주는 핵심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론(뇌세포)와 시냅스(뇌세포와 세포사이에 있는 물질로 신경전달물질을 전하는 공간)가 주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상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라마찬드란 소장이 진행한 실험결과와 같은 것이다. 교통사고로 인해 왼팔을 잃은 10대 소년을 대상으로 소년의 눈을 감게 한 후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소년에게 물었다. “어디를 건드렸다고 생각하니?” 소년은 “왼쪽 손가락이요. 간지러워요.”라고 답했다.
또한 과학자들이 영장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간단한 도구일지라도 그것을 사용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지 알 수 있다. 책에는 원숭이에게 갈퀴와 집게를 이용해 손에 닿지 않는 음식물을 집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히 훈련받은 원숭이들은 그렇지 않은 원숭이들보다 도구를 잡는 손을 통제할 수 있는 동작부분과 시각 영역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갈퀴와 집게가 동물들의 손에 대한 뇌지도와 실제로 통합되었다”는 점이다. 즉 이 도구들이 겉에서 볼 때는 원숭이와 분리된 도구이지만, 원숭이의 뇌는 자신의 손이나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인해 변하는 우리 모습
온라인 읽기를 연구해 온 닐슨은 24명을 대상으로 평균 100일 동안 사용자들이 5,000여개의 웹페이지를 보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닐슨은 페이지에 들어 있는 단어개수가 증가할수록 방문자가 페이지를 보는 시간을 증가했지만 아주 미약한 정도라는 것을 발견했다. 100개의 단어가 추가될 때마다 이용자들이 페이지를 보는 데 투자한 시간은 평균 4.4초. 읽기 능력이 탁월한 사람도 4.4초 동안 볼 수 있는 단어 수는 18개 정도다. 결국 이용자들은 페이지에 들어있는 내용이 증가해도 자신이 허용한 시간 외에는 더 이상 글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연구결과도 이와 거의 유사한 결과를 보이는데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웹페이지에 시선을 멈추는 시간은 10초 이내라고 한다. 2분 넘게 시선을 멈추는 페이지는 10개 당 한 페이지에도 못 미쳤고, 이마저도 온전히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옆에 붙어있는 다양한 메뉴와 창들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닐슨은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한다. “읽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재빨리 집중할 곳을 찾고 정보를 분석하는 동시에, 찾은 것을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법을 학습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고 한다...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메리안 울프에 따르면 우리가 온라인에서 무엇을 읽을 때 우리는 깊은 독서를 가능케 하는 기능을 희생시키고, 단순한 정보해독기가 된다. 깊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때 형성되는 풍요로운 정신적 연계능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한가하게 둘러보는 건 없다. 우리는 인터넷에 접속하면 가능한 한 눈과 손가락을 재빨리 움직여 많은 정보를 모으길 원한다. 넘치는 정보창고 속에서 낙오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읽기 시작은 예전과 비해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과거처럼 지식을 추구하고, 이를 연결시키는 존재에서 전자 자료를 모으는 수집가 정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과 전체 내용의 10%도 읽지 않은 채, 다른 것을 찾아 황급히 넘어가버리는 사냥꾼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컴퓨터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즉 우리가 삶의 많은 부분을 모니터 상에서 깜빡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징을 통해 경험하면서 우리 앞에 당면한 큰 위협은 우리가 우리를 기계와 차별화시키는 바로 그 특성들을 희생시키면서 우리의 인간성을 잃어가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와이젠바움은 이 운명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인식 그리고 우리의 정신활동과 지적인 추구, 특히 ‘지혜를 요구하는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는 것을 거부할 용기라고 적었다.“
필요한 지식을 찾기 위해 대충 훑어보고 핵심을 찾아내는 능력은 필요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문제는 과거 필요에 의해 활용하던 건너뛰기 식 읽기가 ‘깊게 읽고,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죽이면서 읽기의 지배적인 형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창의력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창의력을 저해하는 읽기가 지배적인 흐름으로 변하는 세상. 아이러니칼하지 않은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터넷 기준으로만 지능을 판단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능에 대해 보다 광범위하고 전통적인 시각을 들이댄다면, 즉 속도뿐 아니라 사고의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상이한 완전히 더 암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은 즐거움, 지적 만족, 다수의 사람들과의 대화 등 다양한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이는 우리를 사회적 또는 지적 영양분이 담긴 작은 알갱이가 쏟아지도록 명령하는 손잡이를 끊임없이 누르는 실험실의 생쥐로 바꾸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