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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역할 다하며 조화롭게 현재의 우리에게 훌륭한 가르침 전해
2013년 05월 09일 (목) 이종근 기자 jk7409@hanmail.net
   
 
   
 
<기획>한국의 꽃담기행(The Beauty of Korea's Traditional Walls)

<2부> 한국의 꽃담기행 <25> 논산 돈암서원





사적 제383호 논산 돈암서원(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외 5필지)은 사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인조 12년(1634)에 건립한 서원이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은 예학의 대가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 특히 김장생은 예의 본질에는 변치 않는 덕목이 있는 반면 예의 형식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상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 예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데 있으며,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있다고 했다.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예학의 근본정신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 17세기 예학과 김장생의 사상은 한국의 지성사적 차원에서 전통예제의 근간을 이룩했다는 학문적 평가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 예학의 근본정신에 입각한 창조성을 발휘하라는 훌륭한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힘쓰고 이후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양성을 했다. 후세에 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우고 김장생을 추모하여 후학에 힘쓴 가운데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추가로 모시었다.

이 서원에는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사우(祠宇), 응도당, 장판각 등의 건물들과 하마비, 송덕비가 남아 있으며,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있는 곳이다.

사우인 숭례사(崇禮詞) 들어가는 입구의 좌,우의 담장은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의 예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물 꽃담으로, 붉은 햇살과 함께 가문의 영예가 눈이 부실 정도다. 꽃담으로 둘려진 배향 영역 사당은 말 그대로 꽃밭이다.

길상 무늬 대신에 글자를 사용하되, 붉은 색으로 큼지막하게 배열해 그 중요성을 강조한 듯 하다. 동산이 담을 넘어와 후원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나가면 산이 되듯이 말이다.

어느 장인이 이렇게 고급스러운 멋이 서려 있는 꽃담을 지을 수 있었을까. 꽃담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비로소 깊이 깨달았다. 더욱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마음의 안정감과 경외감은 단시간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세월이 묻어있다고 느껴졌을 때는.

김장생의 사상은 꽃담에 새겨진 열두 자의 글씨를 통해 생생히 밝혀진다. 글귀는 ‘서일화풍(瑞日和風)’, ‘지부해함(地負海涵)’, ‘박문약례(博文約禮)’이 바로 그것이다.

‘서일화풍’은 ‘서일상운(瑞日祥雲) 화풍감운(和風甘雲)’의 약자이니 ‘좋은 날씨 상서러운 구름, 부드러운 바람과 단비’의 뜻이다.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웃는 얼굴로 대하라는 메시지인 만큼 현대인들이 이같은 마음을 갖고 산다면 이 세상은 상생이 깃들련만.

‘지부해함(地負海涵)’은 땅이 온갖 것을 다 실어주고, 바다가 모든 물을 다 받아주듯 모든 것은 포용하라는 의미니, 김장생의 인품이 확연히 드러나는 글귀다.

‘박문약례(博文約禮)’는 지식은 넓게 가지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는 의미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군자는 글을 널리 배우되 예로써 그것을 조이고 단속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君子는 博學於文이오 約之以禮면 亦可以弗畔矣夫인저)’고 말했다.

지식은 넓을수록 좋지만 그것이 단지 지식으로만 그치고 행위와는 무관하게 되지 않기를 경계한 것이다. 이때의 예는 도덕적 행위 규범을 말한다. 즉, 학문과 지식을 폭넓게 습득하되, 일관된 도리로 통괄하고 동시에 예의범절에 맞게 행동해야, 그 학식이 국가에 유익하게 쓰인다는 것이니, 현대를 관통하는 훌륭한 행동 양식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김장생은 살아 있던 그 당시나 지금이나 살아있는 꽃담같은 존재다. 김장생이 3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김계휘가 세상을 떠나자 상례와 제례를 한결같이 ‘가례’대로 했으며, 다음해 ‘상례비요(喪禮備要)’를 완성했다. 꽃담의 붉은 글씨가 봄빛을 가득 머금어서 인가, 오늘따라 더 붉그스레 하게 보이고, 더 환하게 이내 가슴을 파고든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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