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혹독한 역경-불굴의 의지…우리 민족의 아픈 수난사

하늘닮은 전북 하늘담은 문학<15> 임영춘의 소설에 나타난 새만금

기사 작성: 이종근 기자 - 2014.02.06 15:44

김제출신의 소설가 임영춘은 1972년 소설 ‘맥’을 통하여 문단에 등단, ‘가제’, ‘고향’, ‘메아리’, ‘계절’, ‘갯들’ ,‘대지의 유언’ 등을 창작했습니다.

특히 임영춘은 1981년 ‘갯들’로 시작, 1988년 ‘들판’, 1994년 ‘대지의 유언’ 등 세 작품에 우리의 들판이 일제에 탈취당하고 개펄마저 일본인들의 손에 유린당한 민족의 상흔을 줄기차게 그려냈습니다. 13년에 걸쳐 지속된 작가의 열정으로 간척지의 노예로 살았던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 만큼이나 아픈 민족 수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갯들’을 통해 새만금의 한 자락, 김제 만경의 과거를 되짚어 개인의 기억을 민족의 역사로 형상화한 민족지를 일구어 냈습니다.

특히 ‘갯들’에는 일제의 수탈정책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일제는 갯벌을 메워 농민을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우리나라 땅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이 사실을 잘 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간척지 사업에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무대인 갯들에서 성장한 작가는 본인의 체험과 4년여에 걸친 자료 수집을 통해, 일제강점기 간척지시대의 농지 만경벌에서 농노로 입주한 700세대 집단 촌민의 혹사당하는 삶을 속속들이 밝혀서 그려냅니다.

작품집은 제1장 이민촌, 제2장 조수로 모여든 사람들, 제3장 향수의 방조제, 제4장 섬진강 젖줄, 제5장 지배자의 눈동자, 제6장 춘하추동, 제7장 풍속도, 제8장 반항의 계절, 제9장 상록학원, 제10장 순국의 그림자, 제11장 질식의 나날, 제12장 해방의 메아리 등 전체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23년 완공된 불이농장은 옥구저수지를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조선인이, 북쪽으로는 일본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손바닥 검사’(손에 괭이가 박히도록 일을 많이 한 사람) 등 신체검사를 통해 소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소작인을 모집하였다. 그들에게 제공된 것은 바람도 막을 수 없는 움막이 전부였으며,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먹고, 자고, 일하는 것뿐이었다’

‘갯들’은 주인공 ‘나’가 1931년부터 해방되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부모가 간척지로 이주해서 살았던 시절의 자서전적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호남의 동진강 하류 간척지인 김제 광활면으로, 이곳은 일제가 동진강 하류의 갯벌을 개간, 이민을 받아 조성된 지역이다. 광활면은 일제가 간척을 통해 조선의 지형을 바꾼 소위 식민지 근대화의 산물입니다.

“노예시장에서처럼 쓸만한 놈을 골라 와야 한단 말이야”

“조선은 우리 식민지야.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좋아”

“말채 같은 단단한 채찍을 만들어서 말 안 듣는 놈은 마구 후려치는 거야”

“요놈(불에 달군 집게)으로 말 안 듣는 놈은 살을 푹푹 지지는 거야”

작가는 동진농장(동진농업주식회사가 10km의 제방을 축조하여 농토 조성)으로 불리던 간척지 이민촌, 즉 광활면에서 출생, 1986년 어머니 서귀인이 별세하기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김제 광활 사람으로, 일제하에 한국농민이 겪은 수모와 울분을 어린 시절에 몸소 경험했던 저자는 민초의 혹독한 역경과 불굴의 의지를 그려내어 민족수난사의 한 몫을 담당하고자 했습니다.

‘들판’은 1987~1988년 김제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들판’은 ‘갯들’에 이어 미처 토로하지 못했던 민족의 아픔을 다시 덧붙여 써 놓은 작품으로 작가는 처절했던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일제 침략의 실제 인물들을 등장, 사실적인 내용을 통해서 비소설적인 요소가 소설 구성상의 미학을 압도한 생생하고도 절박한 기록문학으로서의 특징이 강합니다.

‘들판’ 은 상, 하로 분책이 되었고, 594쪽으로 첫 번째 작품 ‘갯들’보다 분량이 늘어났습니다. 일본인 후쿠이 게키는 군의 요직에 있었던 일본의 최우수 두뇌파였고 후일 조선총독과 일본 수상을 역임한 고이소와 동기입니다. 그가 군직을 버리고 간척지 사업에 투신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새만금 사업과 연관지어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에는 당시 농민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처절하게 살았던가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농민들은 노예 노동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농민들은 오직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일을 해야 했다. 오른손으로 모내기를 하다가도 피고름이 쏟아지면 왼손으로 바꿔서 할 만큼 일을 했습니다.

‘밤에는 손이 곪으면서 아리기 시작한다. 밤내 잠을 못 자는 부인네들이 많다. 아침에는 그 곪은 손을 남편이 짜주고 다시 헝겊으로 매고 일터로 나와야 했다. 손이 아파 말랑한 흙이라도 꽂을 수가 없어 모가 둥둥 뜨기 마련이다’

‘대지의 유언’은 1994년 작가가 김제 금만평야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민족 수난사를 기록한 장편소설로, 서해안 간척지 갯들을 중심으로 만경들과 호남벌이 겪은 일제 강점기 민족 수난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지의 유언’은 1899년 5월 1일, 군산항이 개항되면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일제의 수탈사를 그렸습니다. 작가는 고향 김제 광활면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일제의 간척 사업을 추적했습니다.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으로 철저한 고증이 더해지면서 ‘징게맹개(김제만경) 너른 들’은 민족적 고난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만경들과 동진농장 일대의 간척지에 서린 한국인 농노들의 원한과 절규는 제국주의적 가치 속에 은폐된 인간의 비참한 삶에 대한 세계사적 증언이기도 합니다. 일제의 간척사업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을 통해 오늘날의 국토 간척사업에도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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