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지 120년이다. 120주년 두번째 ‘갑(甲)’을 맞아 동학농민혁명을 되짚어보자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정치인들도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앞세우며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아 「봉준이, 온다」는 제목의 전봉준 평전을 펴낸 이광재(52) 작가를 만났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한국 사회가 근대화로 가는 시점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강고한 신분제를 무너뜨림으로써 근대 시민정신이 싹트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3.1운동, 독립운동, 4.19혁명, 5.18광주시민혁명, 그리고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까지 연결되고 한다. 작가는 무엇보다 전주 집장소를 통해 농민군과 지방정부이 공동 자치를 실현한 것을 두고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다며 의미를 부여한다. ‘관민상화(官民相和)’라는 집강소 실험은 오늘날 민과 관이 함께 하는 협치, 즉 거버넌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통과 오만으로 일관하는 새정부도 동학농민혁명에서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아가 “동학농민혁명이 발화한 호남은 우리사회 변혁운동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또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못하게 최후의 보루로 작동해 왔다”면서 호남인의 저항 기질을 설명했다. 24일 봄볕이 쏟아지는 날, 작가와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 2주갑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동학농민혁명은 근대사를 여는 입구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이다. 100주년 이후 관심이 시들해진 측면이 있지만 그것과 관계 없이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있었다. 2주갑이라는 상징적인 해를 맞아 돌이키고 떠올리는 자체로 의미 있다.”

- 동학농민혁명이 우리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동학농민혁명 이전까지 우리사회는 완고한 신분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을 기점으로 신분제는 무너졌다. 농민군은 신분제 폐지, 근대적인 조세제도 혁파에 주력했다. 당시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문제의식을 획득한 백성들은 이후 이를 침해하는 국가주의나 제국주의에 저항했다. 동학농민혁명은 결국 근대의 단초를 열고 근대적 시민의식을 고양시켰다. 또 싸움의 경험들은 의병운동, 3.1운동, 독립운동, 그리고 최근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을 관통하는 기본 사상은 무엇인가.

“동학농민혁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농민들도 정치 참여의 주체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당시 농민들은 합법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기에 항쟁 형식을 빌었다.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없지만 이들이 부수고자 했던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신분제도와 조세제도 혁파를 통해 일정한 근대성은 담보했다.”

- 동학농민혁명은 처음부터 조직화 된 혁명인가.

“농민군 지도자들은 적어도 10년 이상 목적 의식을 가지고 준비해 왔다. 전봉준은 20대 때부터 핵심 지도자들과 교류했다. 당시 동학 교도가 되는 것은 오늘날 교회에 가는 것과 다르다. 유교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을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미 그런데서 조직적인 개혁의 기운은 싹텄다.”

- 동학농민혁명은 민란인가 아니면 혁명인가.

“권력을 장악하고 또 권력을 토대로 실질적인 국가운영을 한 경험은 없기에 혁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그러나 한 사회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 농민군들의 자치 기구인 집강소는 어떤 성격인가.

“동학농민혁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 집강소다. 집강소의 핵심은 ‘관민상화(官民相和)’다. 흔히 집강소를 농민 자치권력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집강소는 특정한 세력을 배척하거나 농민군이 독단적으로 집권한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손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집강소 설치에 앞서 전라감사 김학진과 농민군 대표 전봉준은 합의했다. 굳이 오늘날 용어를 빌리자면 ‘협치(거버넌스)’다. 세계 어떤 혁명도 이런 경우는 없다. 120년 전 우리나라에 이런 정신이 있었다. 자랑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