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기틀 마련한 '마천목' 아들 4형제 모두 현달해 4파 이뤄
조선 왕조 기틀 마련한 '마천목' 아들 4형제 모두 현달해 4파 이뤄
  • 정복규 수석 논설위원
  • 승인 2014.03.04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복규의 성씨순례](62) 장흥마씨(長興馬氏)
시조 마려(馬黎)는 백제 건국의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좌보(左輔)의 벼슬을 역임했다. 그러나 문헌이 전하지 않아 윗대의 계보를 고증할 수 없으므로 마육침(馬陸沈)을 1세조로 하고 있다. 마육침은 서기 660년(백제 의자 왕 20, 신라 무열왕 7) 당나라 소정방과 신라 김인문(金仁問)이 이끄는 13만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군사를 일으켜 옛 목지국(目支國)의 성거산(聖居山,충남 직산)을 근거지로 백제 부흥전을 도모했던 장군이다. 마육침의 10세손 마점중(馬占中)은 고려 문종 때 이부상서를 지내고 목성군에 봉해졌다. 그 후 마점중(馬占中)의 맏아들 마현(馬鉉)은 목천마씨, 둘째 마혁인(馬爀仁)은 장흥마씨로 각각 나눠졌다.

마혁인의 손자 마의유(馬義裕)는 고려 의종 때 홍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그의 아들 마희원(馬熙願)은 희종 때 평장사를 역임했다. 마희원의 아들 마중기(馬仲奇)는 희종 때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한림학사 승지(承旨)를지냈다. 그러나 최충헌의 도방(都房) 정치에 반대해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마중기의 손자 마지백(馬智伯)은 호부상서, 국자감 제학을 역임했다. 마지백의 증손 마수손(馬壽孫)은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랐으나 조정 간신들의 질투와 간계를 개탄해 벼슬을 던졌다. 그 뒤 장흥 예양강에 내려와 후학으로 여생을 보냈다.

장흥마씨의 중시조인 마천목(馬天牧)은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조선 초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조선 왕조의 기틀을 잡는데 공헌했으며 장흥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해 마승(馬勝)의 문간공파, 마전(馬?)의 조은공파, 마반(馬?)의 현감공파, 마춘(馬椿)의 참판공파의 4파를 이뤘다. 연산군의 패륜에 항거했던 마윤, 마응훈, 마운종, 마온종, 마창종 등 5형제는 모두 의병장으로 진주의 남강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조은공파의 마하수(馬河秀)는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현감공파의 마응방(馬應房)은 정유재란 때 남원싸움에서 용맹을 떨쳤다. 아동문학가이자 수필가인 마해송(1905-1966)은 장흥마씨의 후손이다. 그는 색동회의 동인으로 많은 동화를 발표하면서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장흥마씨는 조선시대에 마계변(馬繼卞, 1574 甲戌生) : 문과(文科) 인조11년(1633) 식년시 병과(丙科), 마응두(馬應斗, 1562 壬戌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마사룡(馬士龍, 1667 丁未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마후원(馬後援, 1623 癸亥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식년시 병과(丙科), 마무경(馬武慶, 1618 戊午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마후량(馬後良, 1618 戊午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을과(乙科), 마응기(馬應箕, 1558 戊午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마의정(馬儀正, 1590 庚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마응허(馬應虛, 1539 己亥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마계변(馬繼卞, 15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인조2년(1624)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문과 1명, 무과 8명, 사마시 3명, 역과 1명이다.



현대 인물은 마웅호(예비역준장, 녹십자창업자), 마영호(버거코리아대표), 마경석(뉴택인터내셔날회장), 마실언(조선일보부국장), 마삼열(광주MBC사장), 마종기(시인), 마점술(서울대교수), 마진호(경북대교수), 마순일(부산대교수), 마형열(남양건설사장), 마용수(경주시장), 마만주(족보연구가), 마흥규(종친회중앙회장), 마근갑(동일화공사사장), 마종식(송도섬유회장), 마환필(영동산업대표이사), 마학조(금일의한국사 대표), 마창식(CPA한국지사장), 마기영(M.하노버트러스트캄퍼니은행 서울지배인), 마경일(이화여대교수), 마벽초(수덕사주지), 마점구(서울농대교수), 마광수(연세대교수), 마영일(서울농대교수), 마규하(농림부연구관), 마대영(진주농대교수), 마헌일(서진공전교수), 마숙금(국문학자), 마종현(동양화가), 마주락(동양화가), 마숙두(법문학자), 마종승(교통부시설국장), 마숙건(교통부기정), 마달천(국회의원), 마흥재(대한준설공사기획이사), 마상학(한국철강협동조합 전무이사), 마숙명(대한복장 경북지부장), 마대성(향토사업가), 마수석(기업원예가), 마연완(지산농장대표), 마호재(성원건설대표), 마영건(작곡가), 마숙현(가회약국약사), 마여선(대성약국대표), 마양자(시범약국약사), 마명자(금마약국약사), 마광진(삼아약품공업약사), 마혜숙(치과의원장), 마경화(치과의원장), 마의웅(해태그룹비서실장), 마정수(생기약국약사), 마영(건강약국약사), 마진호(은하약국약사), 마상욱(모범약국약사), 마은주(나라약국약사), 마길선(유명약국약사), 마선희(수택약국약사), 마경선(다래약국약사), 마용섭(대지약국약사), 마자경(수경약국약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및 장흥-목천 본관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9世 숙(叔) 하(河), 30世 상(相) 락(樂), 31世 상(相), 32世 황(煌) 열(烈), 33世 전(銓) 용(鎔), 34世 영(永) 홍(洪), 35世 권(權) 근(根), 36世 찬(燦) 병(炳), 37世 규(圭) 교(敎), 38世 용(鎔) 현(鉉), 39世 수(洙) 호(浩), 40世 병(柄) 계(桂), 41世 경(炅) 훈(焄), 42世 효(孝) 재(載), 43世 진(鎭) 은(銀)이다.

본관 장흥(長興)은 전라남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는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오아(烏兒)로 개칭돼 보성군에 속했다. 고려 초에 정안현(定安縣)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현종 때에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됐다. 1265년(원종 6)에 다시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됐다가, 1310년(충선왕 2)에 장흥부로 강등됐다. 1392년(태조 1)에 수령현의 중령산에 성을 쌓고 중심지로 했으며, 1413년(태종 13)에 장흥도호부로 승격됐고 1652년(효종 3) 장흥현으로 강등됐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장흥군이 됐고, 1896년 전라남도로 이관됐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웅치(熊峙)·회천(會泉) 2개면이 보성군에 이관됐으며, 1936년 부동면(府東面)을 장흥면으로 개칭하고, 남상(南上)·남하(南下) 양면을 용산면(蓉山面)으로, 고읍면(古邑面)을 관산면(冠山面)으로 개칭했다. 1942년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했고, 1980년 관산면이 관산읍으로,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했다.



장흥마씨의 주요파는 ▲문간공파 ▲조은공파 ▲현감공파 ▲참판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전남 고흥군 점암면 남열리, 경북 의성군 단촌면 하화동, 전남 장흥군 안량면 학송리, 함북 길주군 웅평면 용천동, 전남 강진군 군동면 삼신리, 함북 학성군 학동면 하천리, 함남 이원군 동송면 선분리, 함남 이원군 남송면 용원리, 함남 북청군 가회면 봉의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장흥마씨는 1985년에는 총 5,758가구 23,803명, 2000년에는 총 8,985가구 28,33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5년 만에 3천여 가구, 5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5,436명, 부산 1,915명, 대구 1,422명, 인천 631명, 경기 2,159명, 강원 1,111명, 충북 595명, 충남 780명, 전북 901명, 전남 5,437명, 경북 1,818명, 경남 1,411명, 제주 187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6,260명, 부산 2,086명, 대구 1,650명, 인천 1,362명, 광주 1,759명, 대전 460명, 울산 481명, 경기 5,175명, 강원 935명, 충북 655명, 충남 533명, 전북 889명, 전남 2,953명, 경북 1,703명, 경남 1,227명, 제주 209명이다. 서울, 경기, 전남, 광주, 부산에 많이 살고 있다. 한편 목천장씨는 2000년 현재 2,982명이 있다.

/수석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