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주위에 방범 자갈을 깔아 전자시스템이 아닌 자연적인 소리로 침입자를 인지할 수 있다.
도둑이 든 적이 있다.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현관문은 뜯겨 있고 온 집안이 난장판이다. “가져갈 것이 뭐가 있어서”라며 평소 도둑이 들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우리 집 현관은 4층 건물 가운데 2층 계단실에 직접 면하고 있어 사람통행도 빈번한 곳이다. 부자가 아닌 나와는 무관하다고 느꼈던 도둑은 노트북을 비롯해 귀걸이, 화장품 등 자잘한 일상의 물건들까지 집어갔다.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다시 또 그런 일을 당할까봐 결국 이사를 해야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할 것 같은 ‘우리 집’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곳은 아니다. 경찰청 통계만 봐도 절도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은 노상(4만 여건)을 제외하면 아파트, 연립다세대, 단독주택 등 주거 공간(3만5천여건)이다. 이는 백화점 절도의 23배에 달하며, 숙박업소와 목욕탕에 비해서도 3.4배에 이르는 아주 높은 수치이다. 즉 도둑들에게 ‘우리 집’은 이미 표적이 되고 있다는 말과 같다.
▲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주택.
보통 도둑들은 어떤 방법으로 집에 침입할까? 대부분이 창과 문을 통해 들어온다. 침입수법 중 가장 높게 드러난 항목은 황당하게도 ‘무시정(無施錠)’이다. 집에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는 도둑이 들것이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10건 가운데 2건이 넘는 절도사건이 열려있는 창문이나 현관문을 통해 발생한다. 사소하게는 화장실 환기를 위해 열어두거나, 쓰레기라도 버리려 현관문을 잠깐 나서는 사이 도둑이 들어온다. 그 다음이 시정장치를 부수거나 교묘하게 여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유리창과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도 한다.
침입 절도범의 35% 가량은 비어있는 집을 턴다. 이들은 가족 구성이나 외출시간, 귀가시간 등을 미리 확인하고 몇 분의 틈을 노린다. 도둑이 집에 든다는 것은 경제적 손실을 넘어 가족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도둑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도둑이 또 올 것 같다”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또 불행하게도 도둑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 도둑이 강도로 돌변하며 재산 뿐 아니라 가족의 생명까지도 위험에 노출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실정이니 한번이라도 피해를 당하면 평온한 일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 집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전주 동서학동 주택가 골목, 절도범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담장에 쇠창살을 설치했다.
보통의 도둑들은 집안을 침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분을 넘어가게 되면 대부분 범행을 포기한다고 한다. 주요 침입경로인 창호의 성능개선이 필요한 이유이다. 보통 방범창호라 하면 과도한 창살 때문에 흉물스러워 설치를 꺼리지만 최근에는 창살이 없는 디자인 등 다양한 방범창호가 출시되고 있다. 또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기존의 창호를 이용하여 방범 필름을 부착하거나 스마트 락 등을 설치해 방범 성능을 개선한다.
더불어 침입자를 드러내서 범행을 포기하도록 하는 범죄예방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손쉽게는 단독주택이나 1층의 경우 건물주위에 방범자갈을 깔아두면 침입자의 발자국 소리를 인지하게 된다. 센서 등을 후미진 곳이나 창호위에 설치하면 침입자가 다가올 시 주위가 밝아져 침입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경보기를 함께 설치한다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침입자를 위협할 수 있다.
방범 대책에서 유효한 것 중 하나가 방범 카메라의 설치다. 침입자의 눈에 띄도록 설치해서 범죄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도 있고, 눈에 띄지 않게 설치하여 안정적으로 녹화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휴대폰에도 연동이 되며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웃들이 함께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범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주민들이 말을 걸어오는 일이다. 일본의 안전마을 만들기에서는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역 모두에서 ‘인사, 말을 걸어’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또 지자체에서는 범죄예방 전문 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집의 구조 및 집 주변이나 문, 창 등에 대한 방범시설에 대해 진단도 해주고 조언을 제공하기도 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문단속이 더욱 헤이해지기 쉽다. 사건이 일어난 후 후회하지 않도록 방범에 조금의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안전 앞에서 불필요한 예방이란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 대표)
참고: 2012 경찰청 범죄통계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 사례## 서울 양재시민의 숲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은 울창한 숲의 특성상 밤에는 너무 어두워서 야간에 공원 전체를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서울시는 ‘잠들지 않는 지식의 숲’을 모토로 조용하고 한적한 장점은 살리면서도 야간에도 시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설문조사, CPTED 전문가 자문, 이해관계자 인터뷰 등을 거쳤다.
이용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서울시에서 보기 힘든 울창한 숲으로 인해 휴식, 산책의 목적을 가지고 자주 이용하는 시민이 있는 방면, 어두운 야간환경, 야간 이용 시 신속대응방법 부재 등으로 인해 야간 이용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 결과 ?안전등대 시스템 ?지식카페 ?지식서재 ?산책로 조성 ?기본 CPTED 항목 개선 등의 솔루션이 도출됐다.
우선, 안전등대 시스템은 CCTV와 비상벨, 비상등, 사이렌, 출입구 안내표시 등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비상 시 비상벨을 눌렀을 때 소리와 조명 등을 통해 내부에 위험을 알림으로써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위험을 인지한 구 관제센터에서는 24시간 지구대와 연결해 출동이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또, 비상벨 가까이 출입구 위치를 표시하여 안내함으로써 급한 상황에서도 헤매지 않고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지식카페(공간 및 음료 자판기 제공, 조도강화), 야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지식서재(서재디자인, 조명추가) 등을 조성, 인근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시민의 숲’을 방문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이용이 적은 제1구역 등을 활용한 산책코스 조성 ?영역성 구분 및 정확한 길안내를 위한 안내사인 정비 ?화장실 개선(사인, 우범공간 정비 등) ?CCTV설치 ?조도개선 ?CCTV·공원등·시야 등을 가리고 있던 관목정리 ?벤치 위치 조정 등 안전한 공원을 만들기 위한 기본항목들도 개선해 자연감시기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