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검의 진정한 가치,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런 점이다. 그건 무기로써의 도,검이 아니었고 또한 무사 개인의 도,검이 아니었다. 조선의 검은 언제나 정의를 상징하고 백성을 위하는 진정한 무인의 도,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병천작가는 소설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를 통해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썼씁니다.

'소인에게 검을 가르쳐주셨던 구식군의 스승은 조선검, 즉 본국검과 일본도라는 분별을 일러주신 적이 있습니다. 조선 무인은 검을 즐겨 사용하고 왜의 무사들은 도를 즐겨 쓴다는 뜻이었습니다. 검과 도가 주인의 성품에 좌우된다 함은 그를 두고 한 말씀입니다'

소설의 앞부분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이 얘기는 조선 검과 일본도 중에서 훗날 누가 진정한 승자가 될는지를 미리 예고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 무인정신이 사라지면서 도,검을 하사 받은 장군들이 한때는 도,검끝을 백성들에게 돌리기도 했으니 안타까움이 어찌 작으랴.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는 시대의 격변기 속에서도 건강한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민초들의 삶과 한 검객의 초상을 박진감 넘치는 구성과 장려한 서사적 화폭으로 조형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왜 우리의 전통 검법이 사라져야 했으며,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조선의 동학농민혁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활용했는가요?

그리고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녹두장군 전봉준이 곧잘 춤추며 불렀다는 칼춤과 칼노래의 실체와 운명 등등의 과제를 추적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의 제공과 더 넓은 사유의 장을 펼쳐 줍니다.

‘은명기’라는 한 검객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총이라는 신식무기의 등장 앞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어야 했던 조선검과 검술의 운명이 흥미진진한 사건을 통해 그렇게 그려집니다.

주인공 ‘은명기’는 구식군 출신이자 조선의 전통 검법을 전수받은 마지막 검객으로, 지고한 조선검의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의협의 인물입니다.

임오군란을 겪기도 한 그의 개인사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한국근대사의 비틀거림에 실려,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조선 검법의 소명을 걸머진 채 일그러진 한국근대사의 원형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작가의 걸쭉한 입심을 따라가보는 일도 흥미롭거니와 주인공 은명기의 눈부신 칼솜씨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이는 당시의 풍속과 동학에 대한 민초들의 관점을 삼남지방 특유의 방언에 의탁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질감을 한층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소설은 동학농민혁명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줄거리는 조선 검과 검술의 달인인 은명기라는 검객이 동학군 손화중장군의 특명으로 체포된 김개남장군을 구출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보부상 출신인 박시철과 백정 출신인 최대웅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험난한 역사의 격랑 속으로 발걸음을 한 발 한발 옮깁니다.

동학농민전쟁을 배경으로, 총이라는 신식무기의 급속한 등장 속에 조선검의 자존을 지켜가는 한 검객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검과 검술의 운명 및 동학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면서 우리 근대사의 격변기를 배경 삼은 역사적 상상력과 어우러지면서 장쾌하고 매력적인 소설 공간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점차 맥이 끊겨가고 있던 조선검의 운명과 보잘것없는 민초들이 시대의 폭력을 안고 뒹굴며 피흘리는 모습과 그 피흘림이 인간의 운명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동학농민전쟁이라는 사회 역사적 공간 속에 개인사와 민족사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일그러지며 몸부림치는가를, 그리고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완성해가는가를 긴 호흡으로 풀어내고 있는 대하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