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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동학농민혁명을 메이크업하라


기사 작성:  이광재 작가 - 2014.08.19 19:49

언제나 ‘지금’이 문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곳의 모든 것, 이것이 ‘지금’이다. 사람들은 ‘지금’ 속에서 살며 부대끼고 ‘지금’ 속에서 죽는다. ‘지금’이 문제다.

‘지금’을 규정하는 말은 많다. 자본이 모든 것의 기준이자 척도인 점을 상기할 때 자본주의라는 말은 실로 그럴 듯한 표현이다. 그런가 하면 정보화시대라는 말도 있고, 한반도의 독특한 환경을 꼬집어 분단시대라는 말도 쓰이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의 시선은 여러 표현 중 유독 ‘근대’라는 말에 오래 머문다. 자본주의가 이 세계의 본질을 포착한 말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존재도 아니요, 분단시대 또한 우리 사회에서나 통용될 법한 국지적 규정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발달사를 염두에 둘 때 그나마 ‘근대’가 보편성을 띈 용어로 내게는 보인다.

그러니 치환하자면 ‘근대’가 문제다. 그래서 근대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면 자연스레 근대의 형성과정으로 거슬러가게 된다. 필자가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를 펴낸 이유가 다 그와 관련돼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의 근대는 구한말에 그 젖줄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은 새로운 세계에 대응하는 각 세력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단면인 셈이다.

그 시절 근대의 기수로 자처했던 세력으로는 개화파가 있다. 그들은 앞선 문물을 도입하여 조선을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열강에 합류시킬 꿈을 꾼 세력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들은 근대의 핵심 세력인 시민의 등장에 눈을 감고, 오직 권력을 장악하여 근대적 문물을 도입할 꿈에 부풀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잠재적인 시민인 농민이나 상인과 연대하지 못한 채 오로지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하려 했을 뿐이다.

고종과 왕비는 새로이 대두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하지 못한 채 중국의 외교관이 제시한 책략에 따라 미국과 수교를 맺어 남하하는 러시아와 일본에 맞서고자 했다. 늑대를 끌어와 이리를 몰아내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 한가롭게 남이나 도와줄 만큼 선량한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아니다. 그러자 때로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자신의 안위가 위태로우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왕실을 지키기에 급급하였으니 이를 두고 어찌 근대화를 위한 노력이라 한단 말인가.

동학농민군은 근대적 민족국가를 명시적으로 표방하지 않았지만 서구 열강과의 호혜적 문물교류를 반대하는 ‘꼴통’ 세력도 아니었다. 나아가 그들의 노력에는 근대의 철학적 정수인 ‘자유, 평등, 인류애’의 정신이 구현되어 있다. 그들은 가장 격정적으로 신분제를 거부함으로써 시민의 등장을 촉발하였으며, 전근대적 조세제도와 토지제도에 저항함으로써 내용적인 근대의 진전을 보여주었다. 구한말의 근대에 관한 각축과 해석 가운데 가장 탁월한 지점을 그들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전라북도가 바로 이들 동학농민군의 주요 활동무대임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는 이러한 근대의 시발에 관한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동학농민혁명의 유전자가 가슴에 박혀 민주주의를 견인하는데 선봉에 서고, 그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못하게 방파제 역할을 이곳에서는 수행하고 있거니와 과연 동학농민혁명은 어떻게 선양되고 있는가.

전주 한옥마을에 연 몇 백만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한옥마을을 구경하는 대가로 값비싼 음식과 음료를 사먹어야 한다. 그리고 투덜거리며 돌아간다. 만일 그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제대로 보게 된다면, 그리하여 ‘지금’에 대한 작은 단초라도 얻어가게 된다면 값이 조금 들었다고 그토록 투덜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같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예술적 조형물 하나만 보고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곳 전라북도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확인한다면 이곳을 마냥 ‘좌빨’이 사는 동네로 치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우리는 최초의 ‘주민자치’를 실현했다.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행정력과 주민이 도정과 시정을 함께하는 ‘관민상화’를 경험했다.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해방과 자유, 평등과 일탈의 세상이 가능함을 깨달았다. 어찌하여 이 지역의 지자체는 동학농민혁명을 케케묵은 고문서 속에 처박아두는 것인가. 어찌하여 남의 나라 자본과 대기업을 끌어오는 데는 그토록 열과 성을 다 하면서 위대한 인문 정신을 외면하는가. 그러니 외치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을 재해석하고 메이크업하라! 동학농민혁명은 이곳의 정신이자 밥이다! 올해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기 때문에 하는 말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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