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고 간절한 서원 서린 도량
경건하고 간절한 서원 서린 도량
  • 김판용 시인.금구초중 교장
  • 승인 2014.11.27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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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이야기가 있는 전북의 사찰] 능가산 내소사<중>
▲ 내소사 경내 삼층석탑



벚나무 길 끝에 천왕문이 보인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천왕문이 안이 포근해 보인다. 일주문, 불이문, 천왕문을 사찰 삼문이라 한다. 시작은 일주문(一柱門)부터이다. 삼회일귀(三會一歸)의 의미가 담긴 일주문은 사찰 구역의 표시이다. 나란히 선 기둥만으로 건축물이 버티는 걸 보면 외국인들이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 다음에 불이문(不二門)이 있다. 불이는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서운 금강역사가 버티는 있는 금강문을 두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천왕문이 우세하다.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사천왕은 불교의 신이 아니다. 인도 힌두교의 신들을 불교가 받아들인 것인데, 밀교의 영향이다. 불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로 크게 나뉜다. 교리 자체가 철학적인 부분이 많아서 신을 두거나 섬기지 않았다. 이런 관념적인 부분을 극복하고 기복적으로 발전하면서 주술과 신앙으로 바뀌게 된 것이 밀교의 영향이다. 그래서 우리 불교는 통불교라고 한다. 대승과 선, 그리고 밀교가 결합된 것이다.

내소사의 사천왕은 최근에 우암 혜안스님께서 신축한 것으로 혜안의 오도송(悟道頌)이 주련으로 걸려 있다. 또 큰 불사를 이루신 혜안스님을 기리는 헌다례가 매년 부도전에서 크게 열리고 있다. 사천왕은 불국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외호신으로 호세사왕(護世四王)이라고도 부른다. 불교의 33개 하늘 중 여섯 번째 하늘을 지배하는 신이기도 하다. 한 분씩 살펴보자.

먼저 동쪽에 위치한 지국천왕은 청색의 얼굴에 지물은 칼을 들었다. 사계절 중 봄을 나타낸다. 인생으로는 청춘이다. 술과 고기를 먹지 않으며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그리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린다고 한다. 남쪽은 증장천왕으로 적색(赤色)으로 손에 용과 여의주를 들었다. 계절로는 여름을, 그리고 인생의 장년기를 상징한다. 사람의 정기를 빼앗는 구반다와 아귀를 지배하는데 만물의 소생을 관장한다. 농사의 신이기도 하다. 서쪽은 광목천왕이다. 백색으로 손에 보탑을 들었다. 계절은 가을이고, 인생의 노년이다. 노여움과 감정을 다스린다. 마지막 북쪽은 다문천왕이다. 흑색으로 손에 비파를 들었다. 계절로는 겨울이고, 인생으로는 죽음이다. 즐거움의 세계를 관장하며 어둠 속 방황하는 중생을 관장한다. 그러니까 사천왕문 안에 사계와 인생, 우리고 우주의 질서가 숨어 있는 것이다. 불국 정토의 수호와 더불어 주술적 의미까지 함께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는 자유로운 길이었다면 천왕문을 넘어서면 매우 정제된 길이다. 예를 들면 구품만다라를 드러내는 아홉 개의 단(段)이라든가, 전각과 전각을 잇는 박석의 어도(御道)는 그냥 허투루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천년 수령의 당산나무가 나오고, 그 나무 왼쪽에 보종각이 있다. 오른쪽에 범종각이 있음에도 따로 보종각을 두고 있음은 이 범종이 그만큼 귀해서다.

▲ 내소사 석탑에 기도하는 신도



이 범종은 보물 제277호로 고려시대의 전형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려 고종 9년(1222년)에 청림사에서 제작했다는 이 종은 높이가 103㎝, 직경 67㎝이고, 무게는 420㎏이다. 1850년 청림리 최씨 문중에서 제각을 지으려 땅을 파다가 출토된 것으로 처음에 아무리 쳐도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리를 내는 사람이 종을 가져가기로 했다. 여러 사람이 달려들었지만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내소사 스님이 치자 울렸고, 결국 내소사로 이운이 된 것이다.


아랫부분과 윗부분에 덩굴무늬 띠를 두르고, 어깨 부분에 꽃무늬 장식을 한 것이 고려시대 종의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아주 걸작으로 꼽힌다 한다. 몸통에는 구름 위의 삼존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런 비천상은 소리가 멀리멀리 날아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사방에 아홉 개의 유두가 골격처럼 드러나 있다. 아홉은 구품만다라의 상징이다. 그런가 하면 종을 치는 당좌는 연꽃무늬로 돼있다. 천상계만다라의 중심임을 표시한 것이다. 불가에서 종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주의 중심 만다라가 온 세상을 아우르려는 것이다. 또 종의 상부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이 있어 소리를 더 곱게 멀리 보내 보낸다. 종을 매다는 종뉴(鐘紐) 역시 다른 사찰의 것처럼 용으로 돼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

봉래루를 지난다. 이 누각은 예전에는 강당의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사찰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쓰는 다목적 공간이다. 중심 전각 앞에 이런 누각을 지은 이유가 있다. 아무리 지체가 높은 사람이라도 부처님을 만나려면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공간으로 말이나 가마를 타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권력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날도 권력자들의 승용차는 항상 건물의 문턱 앞에 세운다.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사람이 부처님을 만나 뭐하겠느냐는 암묵적 지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누각은 권력자들에 의해 불교의 힘이 약해졌을 때 사부대중의 지혜로 탄생한 것이다. 미학적으로 보면 밋밋한 지표 건물 중심의 사찰에 이런 누각이 주는 입체감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날렵해 보이는 자태에 보는 사람의 마음도 날아갈 듯 상쾌해진다.

이 누각을 오르면 대웅전 뜰이다. 오른 쪽은 설선당과 요사, 그리고 왼쪽에 심층석탑이 보인다. 탑은 아주 간결하다. 화강암으로 된 이 탑은 이중기단 위에서 삼층으로 탑신이 섰다. 면석으로 깔린 하층기단 위에 갑석을 얹고, 그 위에 높은 상층기단을 두었다. 1층은 높지만 2층부터는 현저히 낮다. 그러니까 기단부터 1층까지의 비중이 매우 큰 탑이다. 각 탑신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모서리에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 역시 하나의 돌인데 낙수면의 각도가 크다.

▲ 혜안 큰스님 헌다례



낙수면 아래에는 네 개의 옥개받침이 새겨져 있다. 이 옥개받침은 전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석탑에서는 옥개받침이 의미가 없다. 백제탑에서는 옥개받침이 미약한데 신라시대 탑은 분명한 것으로 보아 중국의 영향이 크다. 전탑을 만들려면 안에서 밖으로 벽돌을 쌓아야 하기에 계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와서 돌로 재질이 바꿨지만 중국의 전탑 양식을 본뜬 것이다. 이보다 더 나가 아예 전탑을 모방한 경우도 있다. 여주 신륵사에 있는 모전석탑이 그렇다. 아예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아 만든 탑이다. 이렇게 옥계받침이 있기에 낙수면 모서리를 중심으로 보면 위와 아래의 각도가 거의 비슷하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 내소사 동종


내소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밤에 경내를 거니는데 어떤 보살님이 탑을 향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리 간절하게 염원하는 것일까? 물을 수는 없었으나 그 자체가 경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꺼내 숨죽이며 촬영을 시작했다. 모든 절에는 서원이 깃들어 있다. 그게 사천왕이든 범종이든, 탑이든 간절한 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김판용(시인.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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