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암의 푸른 달빛 바라보며 변산 꽃자리서 '월인천강지곡'
월명암의 푸른 달빛 바라보며 변산 꽃자리서 '월인천강지곡'
  • 김판용 시인.금구초중 교장
  • 승인 2014.12.18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엔-이야기가 있는 전북의 사찰]변산 월명암<하>
▲ 월명암의 달
우리처럼 땅에 애착이 많은 민족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선 나라가 좁아서다. 그러니 땅은 당연히 희소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 농경으로 살아 왔으니 토지는 경제의 터전이었다. 땅의 소유는 곧 안정적 부의 유지와 축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철천지대원수는 자기 땅을 빼앗은 사람이었다. 땅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도 갖고 싶어 했지만 또 좋은 땅을 찾아 헤맸다. 그걸 일컬어 명당이라고 한다. 복을 주는 땅을 갖기 위한 혈투도 벌였다. 변산은 그 명당 중에서도 나라 안에서 열 곳 안에 드는 십승지지이다. 서양의 유토피아처럼 우리 조상들은 십승지지를 이상향으로 여겼다. 정감록(鄭鑑錄)을 비롯해 택리지(擇里志),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등에 십승지지를 논했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중 하나가 변산이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제시한 이상향 율도국 역시 변산을 이른다.

이 십승지지는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난세에 숨어들기 좋은 곳이다. 난세에 숨어들기 좋은 곳은 사람의 발길 닿지 않는 곳이니 도를 닦기에도 더 없이 좋다. 그렇다면 변산의 꽃심은 어디일까? 혹자들은 진표율사가 망신참(亡身懺)을 한 의상봉 옆 불사의방(不思議房)이라고도 하지만, 월명암이 바로 꽃심이다. 그리고 월명암 중에서도 가장 중심부는 사성선원 자리이다. 그렇기에 이 절을 중창하기도 했던 진묵대사 역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능엄삼매에 드셨던 것이다.

과거 폐사에 가까웠을 때도 사성선원 자리에 토굴이 있어 수행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14년 전 주지 천곡 스님이 오시고 나서 활발한 불사가 이뤄졌다. 산굽이를 돌아 마주하는 월명암은 놀랍다. 이 정도 규모의 도량을 갖추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대단한 공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부설전을 내보이시는 천곡스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지 스님과 다탁에 마주 앉았다. 먼저 월명암의 사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산팔경 중 두 가지가 월명암과 연관이 있다. 아침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내변산 계곡의 잔잔한 안개가 제4경 월명무애(月明霧靄)이고, 바로 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일몰이 제5경 서해낙조(西海落照)이다. 이렇듯 아름다운 공간에서 수행하신 분만큼 모든 게 잔잔했다. 표정도, 말씀도, 동작까지도 매우 절제돼 보였다. 또 대불사를 이루신 분 같지 않고 겸손하고 솔직하셨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이 절에서 전해오는 부설전이라는 책이 궁금했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된 귀한 책이다. 몇 번의 화재 속에서도 지금까지 전해온 것 자체가 신기하기까지 하다. 부설전을 보고 싶다고 하자 천곡 스님께서 오동나무 상자에 담긴 책을 가져다 펼치신다. 빛바랜 한지에 정갈한 붓으로 쓴 부설전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이 자체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까? 그뿐인가, 한글로 번역해 발간된 부설전 한 권도 건네주신다.

신석정 시인은 유명한 송도삼절에 비해 부안의 삼절을 이야기했다. 부안은 곧 변산이니 변산삼절일 것이다. 직소폭포와 이매창, 그리고 유희경을 일컬어서다. 이매창은 유희경의 정인이다. 정인(情人)은 애인과는 차원이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믿고 의지하는 사람, 그래서 절대로 마음이 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의 대상을 정인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매창과 유희경은 변산반도를 유람하며 많은 시를 썼고, 그걸 모아 개암사에서 시집으로 편찬했다. 그때도 월명암에 오르는 길은 험난했던 모양이다. 이매창의 <등월명암(登月明庵)>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築蘭若倚半空)

풍경소리 맑게 울려 하늘을 꿰뚫었네.(一聲淸磬徹蒼穹)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나 올라온 듯(客心若登兜率)

황정경을 읽고 나서 적송자를 뵈오리다.(讀罷黃庭禮赤松)



이매창의 시에 젖어 있는데 벌써 해가 이울고 있었다. 눈은 무릎까지 쌓였는데 그래도 변산팔경의 하나인 서해낙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절 뒤편으로 눈길을 헤집고 나섰다. 능선에 올라 낙조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냈다. 하루를 지탱해온 해가 막 짙은 구름 아래도 들기 시작한다. 겨울이라서 해넘이가 바다 쪽이 아닌 앞산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낙조대를 내려와 저녁 공양을 했다. 다른 절은 공양시간을 절의 질서에 맞춰야 한다. 그런데 월명암은 다르다. 내방객의 시간에 맞춰준다. 이 역시 주지스님의 배려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공양주 보살님은 또 힘들 것이다. 산중이라 부식을 가져 나르기에 한계가 있기에 이곳 텃밭에서 키운 야채를 주로 상에 올린다. 넓지 않은 텃밭이지만 먹성이 적으니 그냥저냥 버티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관음봉 쪽에서 둥근 달이 떠오른다. 일부러 보름에 맞춰 찾은 것이기에 환한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월명암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달이 밝은 암자이다. 이처럼 궁합이 잘 맞는 풍경이 또 있을까? 눈이 쌓인 산사에 밝은 달은 온통 푸른빛으로 빛났다. 나는 조용히 대웅전 뒤로 올라갔다. 대웅전 용마루 위에 달을 올려놓고 싶어서다. 또 그 자리는 사성선원으로 이어진다. 달의 정기가 가장 왕성한 변산의 꽃자리에서 나는 월인천강지곡을 부르고 싶었다.

변산반도 수많은 산자락을 비추며 달이 점점 오른다. 설산에 비친 달이 자꾸 가쁜 숨을 내몰아쉰다. 그 빛이 과히 관능적이다. 마치 이효석이 묘사한 메밀꽃 위에 비치는 달빛 같다고나 할까? 나는 주지스님께 월명암의 달빛을 팔아먹고 싶다고 말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 월명암에서 이벤트를 하자는 제안이다. 작은 음악회인 ‘달빛 소나타’, 달빛 아래의 참선인 ‘월인천강지곡’…… 이 정도면 충분히 매력 있지 않은가? 가장 아름다운 것, 그리고 완벽한 것은 모두 자연에 있다. 월명암이 아름다운 것도 바로 변산이라는 자연에 깃들어서다. 달이 밝은 밤이면 월명암은 그 빛에 젖는다. 그 기운이 스민 탓에 대둔산 태고사나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관음성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느지도 모르겠다. 무심히 변산반도를 바라보는 사이 달은 이미 중천에 올라 허허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김판용(시인.금구초중 교장)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