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구하소서, 세계최고의 미륵도량
이 땅을 구하소서, 세계최고의 미륵도량
  • 김판용 시인·금구초중 교장
  • 승인 2015.02.05 1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엔-이야기가 있는 전북의 사찰]금산사 모악산<중1>
▲ 미륵 부처님이 계신 미륵전과 송대



사람이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니까 불행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불행을 떨쳐야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속세에는 근본적인 고통이 있다. 이를 사고(四苦), 또는 팔고(八苦)라고 한다. 잘났든 못났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를 극복한 사람은 없다. 네 가지 고통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이다.

단지 네 가지의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구하려고 하나 구할 수 없는 구득불고(求得不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이고(愛別離苦), 싫어하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그리고 인간 행위의 근원인 색, 수, 상, 행, 식이 불 같이 일어났다가 사라져서 오는 오음성고(五陰盛苦)까지 합해서 팔고가 되는 것이다.

기원전 624년 고타마 싯타르타는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당시 여인들이 출산을 하려면 친정으로 갔던 모양이다. 어머니 마야부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 무우수 나무 아래서 아들을 낳았다. 태몽부터가 특이했다. 6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온 것이다. 석가모니는 그렇게 탄생했다. 석가모니라는 말은 석가족의 위대한 성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태어나자마자 일주일만에 어머니가 죽고, 이모인 마하파자피티의 손에서 자랐다. 왕자였지만 그는 늘 고민에 싸여 있었다. 그런 그를 이시타 선인은 처님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러나 아버지 정반왕은 성자가 되는 것에 완강히 반대하며 성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출가를 결심한 이유가 사문육안이다. 사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동문에는 노인들이, 남문에는 병자들이, 서문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마지막 북문에는 수행자들이 있었다. 고민하던 그는 아내인 아소다로가 이들 라훌라는 낳던 밤에 북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간다. 출가를 한 것이다.

현자들을 만났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자 고행에 들어갔다. 극단의 고행인 설산 수행이다. 6년 동인의 고행으로도 깨달음을 주지는 못했다. 고행으로 죽음에 이를 지경이 되자 우루밸라의 소녀 수자타가 유미죽을 먹인다. 이 죽을 먹고 기운을 차렸으나, 그를 따르던 다섯 비구들은 그가 변심했다며 곁을 떠나버린다. 그는 붓다가야 보리수나무 아래 금강보좌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녹야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를 떠났던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모아놓고 설법을 한다. 그게 최초의 설법 초전법륜이다. 이것으로 삼보가 완성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인 불(佛), 사성제와 팔정도를 논한 진리인 법(法), 이 뜻을 전하는 비구인 승(僧)이 삼보(三寶)인 것이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에도 사성계급의 틀은 완고했다. 최상위 바라문계급에서부터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계단은 넘나들 수없는 견고한 벽이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그 벽을 허물고 모두를 받아들였다. 평등의 세상을 추구한 것이다. 여기에 여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비구만아 아니라 비구니도 승가에 들게 했다.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설법을 할 때 대장장이 춘다가 음식 보시를 했다. 상한 돼지고기였다. 결국 식중독으로 열반에 들었다. 사라쌍수 아래서 그를 시봉하는 아난다에게 자신을 눕히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 법문을 한다. 당신의 가르침으로 다투지 말고 자기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게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 법고를 치시는 스님


자신을 믿지 말라면 누가 부처를 따르겠는가? 불교는 구원자가 없다. 스스로 깨우쳐 성불해야 한다. 아는 것은 쉬운데 그걸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불교의 교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수행만 한다면 대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서원을 세웠다. 아미타여래의 48서원이 그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 귀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세가 그들이 꿈꾸는 낙원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그 용화세상을 이룩할 메시아가 바로 미륵보살이다. 역대 변혁가들이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자칭한 이유이다. 근대의 동학농민들까지 선운사 마애불 배꼽에서 비기(秘記))를 빼내려 했고, 그 소문으로 농민군 대세가 이어진 것은 미륵의 힘이 얼마나 컸던가를 보여준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진표율사로 돌려보자. 나라를 잃은 백제 사람들에게 진표율사는 살아있는 메시아였다. 진표에 의해 미륵사상은 이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그 중 제일 미륵도량이 금산사이고, 제이 도량은 속리산 법주사, 제삼 도량이 금강산 발연사이다. 그러니까 금산사가 세계 미륵도량의 중심인 것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미륵부처님은 도솔천에 계시며 이 땅으로 내려오시려면 무려 56억 7000만년이나 있어야 한다. 언제 이런 세월이 오겠는가? 그러나 인간이 열 가지의 선한 일을 행하면 앞당길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염원으로 십선업을 닦은 백제인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금산사 미륵부처님께 찾아가 빌고 빌었다. 이렇듯 금산사는 백제의 유민들의 염원을 담아 성장한 것이다. 아니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 따사로운 손길이었고,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아준 포근한 가슴팍이었다. <송고승전(宋高僧傳)>은 중국 송나라 당시 도력이 높은 고승을 다룬 책이다. 여기에 ‘금산사(金山寺) 진표(眞表’의 전(傳)‘이 실려 있다. 해동의 작은 나라, 그것도 이미 신라에 의해 망한 백제의 승려를 다룬다는 것은 보통의 위력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그 내용을 보면 진표율사가 얼마나 대중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진표가 산을 내려올 때 남녀가 머리를 풀어서 진흙을 덮고, 옷을 벗어서 길을 깔고, 방석 담요를 퍼놓고 발을 밟게 하고, 화려한 자리와 아름다운 요로 구덩이를 메우기도 하였다. 진표는 정성스럽게 인정에 쫓아서 일일이 밟고 갔다.”



마치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산화공덕(散華功德)을 연상케 하는 이 부분에서 우리는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도력보다는 ‘남녀’로 표현된 이 땅 민중들의 염원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들의 미륵은 요원했고, 간절했지만 또 절망했다. 결국 자등명 법등명, 스스로가 미륵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미륵이여, 이 땅을 구하소서! 그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걸어야 할 주문이 아니던가?

김 판 용(시인·금구초중 교장)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