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공력으로 완성된 장엄한 장식과 유물
지극한 공력으로 완성된 장엄한 장식과 유물
  •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 승인 2015.02.2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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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이야기가 있는 전북의 사찰] 금산사 모악산(중3)
▲ 대장전과 그 앞의 석등


금산사가 사상으로서만 위대한 사찰이 아니다. 그 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전각과 석조들이 있다. 국보 1점과 보물 7점 등 문화재를 비롯한 불구들은 모두 지극한 공력으로 완성된 것들이다. 그래서 사찰 경내를 돌며 이 유물들을 살피는 것은 미적 감상뿐만 아니라, 금산사의 역사와 사상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미륵전부터 보자. 이 전각은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통층으로 돼 있다. 1층과 2층이 전면 5칸, 층면 4칸으로 돼 있는 이 전각 가운데 어간(御間) 문은 네 짝이지만 협간(夾間)으로 갈수록 두 짝에서 한 짝으로 줄어드는 구조이다. 그만큼 칸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수직으로 보면 1층의 우주 위에 2층의 활주가 서고, 또 2층의 우주 위에 3층의 활주가 서 있어 안정감을 준다. 거기에 다포계의 공포는 화려함까지 더하고 있다. 이런 건물 안에는 엄청난 부처님이 계신다. 미륵전 안을 들여다보면 웅장한 미륵 삼존불상에 깜짝 놀라게 된다.

‘탄앙(嘆仰)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노주장의 인도로 3층 미륵전을 들어섰다. 놀랍게 갸륵하신 세존(世尊)의 어마어마하신 대주상(大鑄像)! 삼세시방을 두루 비출 한량없는 빛이 고대 그 속으로서 뻗쳐 나올 듯한 대성체(大聖體)! 갸륵하다고 아니치 못하겠다.’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발로 우리 땅을 돌며 ‘우리 국토가 그대로의 조선’이라고 파악한 육당(六堂) 최남선이 그의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미륵전 삼존불을 보고 쓴 글이다. 그러면서 감회를 담아 시조도 한수 남겼다.



오신다 오신다 하니 오시면 진작 옵세

켜묵은 어두움을 더야 어찌 참으리까.

미륵님 등불 아니면 헤칠 수가 없어라.



미륵전을 두고 왼쪽 돌아 계단에 오른다. 옛날에는 자연스러운 언덕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경사진 산록을 헗어내고 대리석으로 쌓아서 높다랗게 축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금산사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자연미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송대(松臺)로 오르려는 것이다. 계단에 올라서자 우람한 백일홍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방문객을 반긴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 전각 하나가 나타난다. 건물 안에는 부처님이 안 계신다. 왜 그걸까? 의문은 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야 풀린다. 부처님이 계셔야 할 수미단 위에는 보료만이 놓여 있다. 그리고 바로 뒷벽이 뚫려 유리창 너머로 부도가 들어온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기에 구태여 부처님이 계셔야 할 이유가 없어서다. 그래서 전각 당호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송대(松臺)에는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다. 방등계단은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하는 곳이다. 계를 줄 때 중앙에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한다. 수계는 세분의 큰 스님이 계셔야 한다. 계를 전하는 전법대화상과 교무를 설명을 하는 교수대화상, 그리고 의식을 집전하는 갈마대화상 등 세분을 일컬어 삼사라고 부른다.

양산의 통도사에도 계단이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이다. 금강은 고귀함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금산사는 왜 방등계단일까? 불교에서 계율(戒)과 선정(定), 지혜(慧)를 삼학(三學)이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으뜸이 계이다. 방등계단은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로 민중불교 정신이 드러나 있다. 다르게 보는 견해도 있다. 방등계단이 곧 도솔천(兜率天)이라는 것이다. 미륵의 하생처 미륵전이 있기에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단은 앞서 말한 양산 통도사와 개성 불일사(佛日寺) 등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

금강계단 옆에는 보물 제25호인 오층석탑이 있다. 높이가 7.2m로서 소박하고 단순한 구조이다. 백제탑의 분위기가 짙게 풍긴다. 원래는 9층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오층 위에 노반이 있고, 그 위에 상륜부가 있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금산사를 창건하면서 이 석탑을 건립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으나 이는 맞지 않는다. 견훤이 금산사를 창건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1971년 탑 수리해체 과정에서 나타난 기록에는 고려 경종 6년인 981년에 완성됐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탑 조성 당시 복장했던 금동관음상을 비롯한 여러 소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지금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별이 빛나는 금산사 송대에 솟은 오층석탑


올라갔던 방향과 반대로 내려오면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은 주로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의 본전으로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본존불이다.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화엄전, 또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고 해서 비로전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대적광전은 1994년에 복원된 것이다. 1986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해 소실돼 버렸기 때문이다. 대적광전 안에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여섯 보살을 함께 모심으로써 한 자리에서 모든 부처님을 알현할 수 있다.

대적광전을 나오면 바로 앞에 육각다층석탑과 석련대가 보인다. 탑은 육각형으로 층수는 확실치 않으나, 현재 11층 분량의 옥개석과 3단의 기단이 남아 있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에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고, 위에 두 개의 점판암으로 된 판석이 놓여있는데, 아래 판석에는 복연이 그리고 위에는 앙연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봉천원구 대웅대광명전 앞에 있었는데 정유재란 이후 재건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고려시대 혜덕왕사가 중창하면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련대는 원래 이름이 석조연화대였다. 십각형으로 된 이 거대한 석조물은 하대가 꽃으로 정식돼 있고, 그 위에 꽃봉오리가 얹혀 있다. 이 특이한 석연대에 부처님이 계셨을 것이다. 이 정도의 대좌라면 불상의 규모도 엄청나지 않을까? 진표율사가 모셨다는 장육존상 같은 분이라면 이 정도가 대좌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륵전과 마주보고 있는 대장전(大藏殿)도 눈길을 끈다. 원래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짓고 그 앞에 정중목탑(庭中木塔)으로서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다시 가람을 중창하면서 본래 목탑이었던 것을 지금과 같은 전각의 형태로 변형하면서 대장전이 되었다. 19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 이렇듯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전각 꼭대기에는 복발과 보주 등이 아직 남아 지금도 신라 때의 목탑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몇 년 전 필자가 몸담았던 단체에서 밤샘독서를 한 적이 있다. 장소는 금산사였다. 그때 초청강사였던 김준태 시인이 ‘책만 책이 아니라 금산사는 그대로 수만 권의 책’이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극한 공력으로 조성된 석등이나 노주, 당간지주 등도 모두 국가가 지정한 보물들이다. 이런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이 바로 금산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리라.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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