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의 기적을 보인 홍해에 잠기다
출애굽의 기적을 보인 홍해에 잠기다
  • 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 승인 2015.03.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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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김판용 시인의 요르단이야기(3)]중동의 꽃, 요르단
▲ 고속도로를 지나는 양떼들. 이 양들이 사막의 단백질 원이다


요르단에서의 둘째 날 아카바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를 생각하니 까마득한 옛날 같이 느껴진다. 늘 그날이 그날인 일상 속에서 살지만, 또 여행의 낯선 경험은 시간을 이리 멀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익숙한 삶으로부터 벗어나면 물리적인 시간에도 이렇듯 색깔이 더해진다. 하루가 여삼추(如三秋)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긴 시간이 찰나(刹那)처럼 여기지는 것은 물리적 시간에 주체의 삶이 더해진 까닭이다.

▲ 이번 여행에 초대해준 이종형 소장과 노인숙 선생 부부



아카바는 홍해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간밤에 우리 일행이 묵었던 켐빈스키(Kempinski) 호텔이 있는 지역은 휴양지이지만 바로 옆에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인 아카바항이 위치해 있다. 원래 아카바 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땅이었다. 바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국가 발전에 취약점인지 역사에서 깨우친 요르단 정부는 1965년 남부 유전지대를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넘겨주고 대신 아카바만을 받았다. 국토를 맞교환한 것이다. 석유가 나지 않아 이웃나라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요르단 사람들은 유전지대를 주고 아카바를 얻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카바와 암만을 잇는 국도 1호선 위를 쉴 사이 없이 컨테이너와 유조차량들이 지난다. 요르단 경제의 동맥이 바로 아카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홍해의 물은 짙푸르다. 주변이 사막이라 오염수가 들어올 수 없으니 맑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름이 홍해(Red sae)일까? 홍해 수중으로 들어가면 밑이 온통 붉은 산호라고 한다. 그러니까 홍해라는 이름은 산호 때문에 붉게 보여서 붙여진 것이다. 주변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잠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산소통과 잠수복 등 장비를 대여하고 있다.

홍해는 인도양의 아덴만에서 아카바와 이집트의 수에즈까지 길게 뻗어 있는 긴 바다. 그 길이가 2,100KM나 된다. 인접 국가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수간,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등으로 많다. 아카바만과 수에즈만으로 갈라져 전체적으로 Y형을 이루는데 수에즈 쪽은 운하를 통해 지중해와 연결된다. 이집트 경제를 떠받히고 있는 수에즈운하는 홍해가 길게 안으로 들어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들이 접한 만큼 문제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요르단 국왕은 몇 년 전 이 홍해에서 독특한 포퍼먼스를 했다고 한다. 아카바를 제2의 두바이처럼 만들고 싶은 요르단으로서는 불안한 주변 정세가 항상 문제였다. 그래서 평화의 바다를 꿈꾸며 바다에 탱크를 수장시키는 의식을 치른 것이다. 실제 2001년 요르단은 아카바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면제해준다. 또 16%의 판매세 감면과 일부 법인세 인하 혜택까지 주고 있다고 한다. 관광과제조업 분야에서는 외국의 기업이나 개인에게 100% 지분 소유도 인정하고 있다.

홍해는 성서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출애굽기 14장 16절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고 적혀 있다. 이집트를 벗어나는 것을 출애굽이라고 하는데 그때 바다가 갈라지는 이적을 보인 곳이 홍해이고, 이 이적을 행한 사람이 모세이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람세스 2세 때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로 토목사업에 혹사를 당했다고 한다. 이때 모세가 민족 해방 지도자로 나타나 형인 아론의 협력을 얻어 출애굽을 시도했다. 그러자 이를 저지하려 이집트군이 추격해 홍해에 이르게 된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기적으로 바다가 열렸음을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8시에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호텔식 뷔페인데 다양한 모양과 형태의 치즈들이 눈에 들어 왔다. 이조형 소장의 말로는 치즈가 발달했다고 한다. 이 치즈들은 사막의 양목장에서 짜낸 양유(羊乳)로 만든 것들이다. 척박한 사막에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가 아마 치즈 만드는 법을 알아낸 것일 게다. 실제로 사막을 지나면서 양떼들을 많이 보게 된다. 도대체 아무 것도 없는 땅에서 양들은 무엇을 먹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양들이 마른 풀들을 뜯고 있다. 마른 풀이 사막의 모래 색깔과 비슷해서 우리 눈에 안 띈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가로 내려갔다. 이곳은 사해와 함께 휴양시설이 있는 곳이다. 호텔 주변으로 수영장도 있고, 파라솔도 있다. 해변을 따라 호텔들이 들어서서 사막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오아시스나 다름이 없다. 사막 사람들에게 바다는 특별하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막에 내린 폭설만큼이나 바다도 다르게 느껴진다.

모세가 물을 갈라지게 했다는 신비로운 바다에 손을 적신다. 2월의 바다는 아직 시리다. 이적을 보였다는 바다는 지금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로 파고가 높다. 또 이슬람 안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가 대립해 골이 깊게 파여 있다. 편안할 수 없는 바다가 된 것이다. 타종교와 갈등은 이해할 수 있으나 같은 이슬람끼리 충돌은 정말 납득되지 않는다. 저명한 이슬람 학자 필립 히티는 ‘이슬람 사회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인 칼리프의 지위는 이슬람교가 직면해야 했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문제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 아카바의홍해,건너편이 이스라엘이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는 아들이 없었다. 그리고 뚜렷한 후계자도 정하지 않고 타계했다. 마호메트 사후 칼리프의 후계 구도는 피로 얼룩져 왔다. 그리고 그 파벌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오늘날 극명하게 대립하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도 여기서 출발한다. ‘수니’라는 말은 코란과 함께 마호메트의 말과 행동을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라고 한다. 즉 원리주의자인 것이다. 수니파 중에서도 극단적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이 소위 IS이다. 이에 반해 ‘시아’는 알리와 후손들을 따르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융통성이 있어서 마호메트뿐 아니라 그 이후 칼리프들을 같이 신봉한다.

이슬람 사람들은 많게는 하루 다섯 번을 무스크로 달려가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때 기도문이 ‘앗쌀라아무 알라이쿰’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안식과 평화를, 그것이 예언자의 가르침이기에’라는 뜻이다. 이를 충실히 지킨다면 지금처럼 파벌로 서로 얽힐 이유가 없다. 결국 아는 것보다 실천이 더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잘 살려면 남의 생각도 존중해야 한다. 갈등은 자기만 옳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때문이다.

와디람 사막으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꾸린다. 육지로 향하는 오른쪽은 마른 사막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왼쪽 홍해는 쪽빛으로 출렁인다. 그 수면을 잘게 흔들며 건너온 바람이 내 볼을 부비고 간다. 상쾌하다. 사람들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저 바다가 출렁이며 손을 흔든다. 잘 가라고……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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