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 묻혔던 로마 데카폴리스, 제라쉬
모래에 묻혔던 로마 데카폴리스, 제라쉬
  •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 승인 2015.04.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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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김판용 시인의 요르단 이야기(6)]중동의 꽃, 요르단
▲ 로마가 남김 유적 제라쉬 광장



다시 암만으로 가는 길이다. 와디람에서 올라탄 국도1호선은 아직도 폭설이 남긴 상처들로 얼룩졌다. 차들이 길 옆으로 빠져 있거나, 접촉사고로 멈춰선 차들이 많다. 그럼에도 눈이 얼마나 귀한지 연신 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댄다. 군데군데 경찰들이 와서 정리를 하고 있지만 사막에서의 눈은 재앙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암만으로 들어 왔다.

사막의 밤은 계절을 불문하고 추운데 겨울은 더 그렇다. 그런데 난방이 부실하다. 고급 주택인 이조형 소장 집도 자체 난방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바닥이 대리석이라서 더 춥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가져온 난방용 매트를 침대에 깔고, 히터를 틀었으나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추워서 책을 보다가 또 여행의 단상을 정리했다. 로마의 영향인지 요르단 기옥들은 잠을 잘 때는 창문 빗장을 내린다. 그래서 아침이 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묘하다. 습관적으로 아침을 안다.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제라쉬로 가기로 했다. 암만에서 제라쉬로 가려면 북쪽으로 50Km를 왕의대로(King's Highway)를 달려야 한다. 왕의대로는 로마에서 시리아 다마스쿠스까지 이어지는 대상 행로로 여행자들은 주로 이 도로를 통해 요르단 곳곳을 다닌다. 암만에서 아카바까지 국도1호선은 생기기 전 요르단의 남북을 잇는 대표적 간선도로였다. 해발 1000m의 암만에서 600m 높이의 제라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이곳은 사막이 아니다. 농사도 짓고, 들녘엔 파란 풀들이 자란다. 산에 소나무들도 있다. 이 길만 지나면 사막의 나라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로마의 힘이 강대했던 때 이곳 아랍까지 지배했었다. 제라쉬는 로마제국의 위성도시인 데카폴리스(Decapolis) 열 개 중에 하나이다. 이 도시가 들어선 것은 BC 332년 알랙산더대왕에 의해서라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인 그는 점령한 지역마다 도시를 세우고, 도서관과 학교 등을 세웠다. 그 덕에 로마가 지배했던 지역은 문화가 융성했던 것이다. 제라쉬는 로마의 동방 진출 거점지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다.

동방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제라쉬는 천개의 기둥의 도시로도 불린다. 실제 제라쉬에 들어서면 웅장한 기둥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3세기에 프톨레미 황제 때 가장 왕성했다고 하는데 로마에서 아랍, 그리고 멀리는 중국까지 이어지는 사막 대상인 카라반(Carvan)의 경유지로 인구가 2만 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동서양의 중개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큰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노란 겨자꽃밭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여행객



그러나 이슬람의 침입과 726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후 이 도시는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1806년 로마의 역사와 유적을 연구하던 독일의 유적 탐험가인 시츠(Seetz)에 의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유적들이 모두 모래에 묻혀 있어서 로마의 데카폴리스 중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25%정도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라쉬는 계속 발굴되는 진행형 유적도시인 것이다.

제라쉬의 원래 이름은 ‘가르쇼’였는데 로마가 지배하면서 게라사(Gerasa)라고 불렸다. 성서에는 이방인들을 게라사인이라고 부르는데, 게라사는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이라는 뜻인 것 같다. 아랍어로 황금의 강이라는 뜻인 제라쉬라고 불리게 된 것은 아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계단식 밭이 나온다. 유채꽃과 무꽃이 한창이다. 그리고 바로 언 덕 위로 거대한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문은 129년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도시 제라쉬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하드리안 아치’라고도 부른다. 문의 상단부에는 ‘이 나라의 국부이시고 위대한 성직자이신 하드리안 황제를 기념하여 그의 행복과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이 문을 지나면 바로 전차 경기장인 히포드룸(hippodrome) 나온다. 길이 245m, 넓이 52m로 로마시대 조성된 전차경기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것이다. 15000명 정도를 수용하는 이 경기장에서 매일 두 차례씩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최근 들어 관광객들을 위해 공연형태로 당시의 경기를 재현하고 있다. 텅 빈 경기장에 상념들이 스친다. 갑자기 말을 타고 달리며,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운명의 싸움노예들이 문을 열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사람끼리 싸우는 광경이라는데, 로마인들은 노예들을 궁지에 몰아놓고 그들만의 오락을 즐긴 것이다. 전차 경기장에서 내려오자 옆으로 상점이었던 건물들이 즐비하다. 아마 경기를 하면서 먹고 마셨던 음식들과 각종 기념품들을 팔았으리라.

남문에서 가이드 로건을 만났다. 이제 그를 따라 설명을 들으면서 2,000년 전 로마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드리안 아치처럼 생긴 남문의 이름은 ‘필라델피아 게이트’이다. 로마시대에 암만이 필라델피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암만으로 향한 문이라는 뜻이다. 이 문을 지나가면 광장이 나온다. 포룸(Forum)이다. 모양이 계란을 닮았다 하여 계란 광장(Oval Plaza)라고 부른다. 이 광장은 원래 160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지금은 76개만 남아있다. 110년에 건설된 포룸은 제라쉬의 정치와 문화, 신앙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북문까지 열주대로인 카르도(Cardo)가 이어진다. 무려 800개의 기둥으로 이어진 카르도의 바닥엔 박석이 깔려있다. 당시의 마차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다. 길옆으로는 하수시스템이 남아있는데 지금도 일부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제라쉬 입구에서 모래로 글김을 그리는 청년


서쪽에 언덕 위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다. 제우스 신전이 있었던 곳은 원래 토속신앙의 성지였는데 로마가 지배하면서 그곳에 제우스 신전을 세웠다. 신전 쪽으로 향한다. 오르는 길에 처음 보는 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로건이 그 나무가 후추나무라고 알려줬다. 아랍의 향신료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후추이다. 나뭇잎을 따서 코에 대니 후추냄새가 싸하다.

신전은 무너지고 거대한 돌기둥만이 남았다. 건축양식은 헬레니즘 이전의 것이라고 하는데 지진으로 무너져 높이 15m 정도의 기둥들만 하늘로 솟아 아스라하다. 그리스나 로마의 도시 중심에는 이렇듯 제우스 신전을 세웠다. 12신 중 최고신 제우스에게 바쳐진 신전이 항상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로마에 의해 세워진 도시인 제라쉬의 중심에 제우스의 신전이 들어선 것은 너무 당연했을 것이다. 신전 기둥 사이에 잠시 머문다. 위로 올려보니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하늘이 참 맑다. 이곳에서 고대의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번성했던 로마의 데카폴리스, 그러나 오랜 세월 역사 속에 숨었던 도시가 지금 모래 속에 몸을 털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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