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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발걸음] '가난한 도, 전북'의 민낯


기사 작성:  김기만 전 청와대 춘추관장 - 2015.06.14 18:27

지난 5월 31일 늦은 밤. 서울 대학로의 조그만 공연장 ‘아리랑 소극장’은 갑자기 침울해졌다. 1986년에 창단되어 만 30년째의 역사를 지닌 극단 ‘아리랑’의 전용극장인 ‘아리랑 소극장’이 누적 적자 등 운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닫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극장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배우와 스텝, 그리고 관객들은 공연장 폐쇄를 아쉬워하다가 끝내 눈가를 적시고 말았다. 이 극장은 전북 출신의 광대(배우)로 문화부장관까지 역임한 김명곤(63)씨가 창단한 아리랑 극단의 전용무대였다. 임대료 부담과 관객 감소, 극장 시설의 노후화 등에 따른 대관(貸館에) 부진 등이 누적 적자로 이어져 결국 문을 닫았다. 물론 극단 아리랑은 유지되고, 다른 곳에 전용극장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소의 재정 지원만 있어도 극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런 백기사를 얻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흔히 예향(藝鄕) 전북 출신을 빼고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돈에 관련되기만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북 출신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가난한 고향 전북 때문에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

지난 달 27일과 31일 전주 ‘삼성문화회관’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각각 열린 <전북도민과 함께 하는 행복나눔 음악회>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재경 전북도민회와 전북대학교가 공동 주최하고, 전북 지자체와 전북대 동문회가 후원한 이번 음악회는 대성공이었다. 두 차례 공연 모두 만석(滿席)이었고, 무엇보다 음악회 출연진과 공연 내용에 대한 청중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전주 시립교향악단과 전북대 음대 교수들, 국악의 허종열 김지숙 남상일 유태평양, 성악의 고성현 강혜정 등 전북이 배출한 걸출한 음악인들이 공연에 나서 예향 전북의 힘을 실감케 해주었다. 타지 출신으로는 사회를 본 황수경 아나운서와 찬조 출연해 준 가수 조영남 둘 뿐이었으니 전북 출신 문화예술 인적 자원의 풍성함을 잘 보여준 무대였다.

문제는 돈이다. 이번 음악회에는 대략 1억5천만원 안팎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비용은 십시일반(十匙一飯) 식으로 각계에서 협찬받았다. 이 음악회 재정관계자에 따르면 전북 출신 기업인, 서울의 일부 재벌그룹과 금융기관, 전북 각 지자체 등을 상대로 거의 석달을 매달려 겨우 1억5천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 관계자는 전북이 경제력에서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했다. 명색 도민의 축제라 할 음악회인데, 몇 천만원 선뜻 내놓는 기업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의 심정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렇다. ‘지역별 1인당 국민소득’에서 전북은 이미 강원, 충북에도 뒤지는 최하위이다. 삼성그룹부터 시작하는 우리나라 30대 기업그룹에 전북 출신 기업은 단 한 개도 없다. 이웃 전남은 그래도 세 개(금호 아시아나 18위, 부영 20위, 미래에셋 30위)나 들어있다. 전북 출신 기업으로 그래도 큰 편이라는 일진그룹이 50위, 하림그룹은 그보다 떨어지지만 인수를 확정한 팬오션을 포함할 경우 겨우 30위권으로 올라서게 된다. 어찌된 일인지 이 두 그룹조차 이번 음악회 지원을 외면했다. 언론사, 청와대, 국회, 정부기관장, 대학교수를 거치며 37년째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도 전북과 관련된 행사에서 기업협찬을 받아보려고 하면 가볼 만한 데가 몇 곳 없었다. 그나마 덩치가 좀 되는 기업은 지원에 인색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북이 현재의 권력과 멀다는 것 또한 전북 출신 기업들이 그나마 지원에 인색해진 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전북의 지자체들조차 ‘특정대학에 대한 지원의 형평성’ 운운하며 대부분 등을 돌렸다. 전북도와 고창군 완주군이 각각 기백만원의 협찬을 한 것이 전부이다. 전북대는 대학평가 순위 13위까지 수직 상승한 전북의 거점 대학이다. 전북의 대표대학이 주최하는 도민음악회 지원을 안하면서 형평 운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전북의 경제력은 광주전남의 2분의1, 광주전남은 대구의 2분의1, 또 대구는 부산의 2분의1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북은 부산의 8분의1인 셈이다. 필자와 언론사 동기인 TK(대구 경북) 출신인사는 이번 음악회 재정문제와 관련한 필자의 탄식을 듣더니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 그라나? 솔직히 대구경북 같으면 1억5천, 2억 정도는 그냥 한 그룹이 맡아 지원해 버리는거 아이가?”. 인물은 넘치는데, 돈은 없는 가난한 도 전북의 민낯을 보며 이걸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하는 걱정에 잠겨본 음악회였다. 제목은 ‘행복나눔 음악회’였지만 나에겐 ‘걱정태산 음악회’였다.

새전북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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