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코쿠에서 마지막 날이다. 의미 있는 방점을 찍고 싶었다. 전주한옥마을과 비슷한 우치코(內子)를 떠올렸다. 에히메현 마츠야마에서 우치코까지는 40㎞. 특급 열차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한다. 다카마츠 공항까지 돌아갈 시간을 어림잡아도 충분하다. 우치코행 열차에 올랐다. 언제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발길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우치코라는 한자가 재미 있다. 우리 발음으로 읽으면 ‘내자(內子)’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에히메가 사랑스런 소녀, 우치코가 아내이니 결국 에히메현 우치코는 ‘아름다운 아내’가 되는 셈이다. 여성스런 이름답게 우치코는 대갓집 며느리처럼 정숙하고 정갈하다. 시골역을 연상케하는 우치역을 빠져 나오면 곧바로 마을이 시작된다.

우치코는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 목랍과 종이로 번창했던 곳이다. 목랍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양초 원료다. 에도시대 1600년대 초반 시작된 목랍 사업은 1700년대 정점에 달했다. 한때 에히메현 목랍은 일본의 45%를 차지하기도 했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본 전역은 물론 해외까지 수출됐다. 1900년에는 파리 만국박람회까지 진출했다. 혼하가(本芳我)는 목랍으로 돈을 번 대표적 상인이다. 우치코에서 가장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혼하가 주택은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목랍과 함께 전통 종이 화지(和紙)는 우치코 번성의 주된 자산이다. 우치코는 상인들의 도시다. 목랍과 종이를 통해 번 돈으로 번성했다. 오늘날 우리가 볼수 있는 전통 건축물과 거리는 그 돈으로 이뤄졌다.

경제적인 여유는 문화 생활로 이어졌다. 현청 소재지 마츠야마에서도 40㎞ 떨어진 외딴 시골에 가부키 극장이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문화와 여가생활을 누릴만큼 경제적 수준에 올랐다는 반증이다. 가부키 극장인 우치코좌(內子座)는 그러한 산물이다. 우치코좌는 1916년 다이쇼 천황 즉위를 기념해 문을 열었다. 내년이면 100살을 채운다. 우치코좌는 한때 헐릴 위기에 놓였다 주민들 반대로 살아났다. 1975년 시작된 우치코 역사적 환경보존운동은 우치코좌를 부활시켰다. 당시 20만엔의 성금으로 우치코좌를 복원해 1985년 문을 열었다. 시민들 힘으로 사라질 뻔 했던 가부키 극장을 살린 것이다. 일종의 내셔날트러스트 운동이다. 우치코좌에서는 가부키 공연, 만담 공연, 인형극 그리고 영화도 상영한다. 요즘은 졸업식을 비롯해 마을의 주요 행사도 이곳에서 치른다. 우치코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자 사랑방이다. 온갖 상업시설로 넘쳐나는 전주한옥마을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주민들이 앞장서 옛 것을 지키고 가꾸는 우치코와 비교할 때 전주한옥마을은 주인이 있는지 의문이다. 매매를 거듭하며 집값만 잔뜩 올려 놓고, 거리는 온통 먹거리 장터로 전락한 전주한옥마을에서 전통은 애매한 단어다. 사람 구경하다 돌아가는 게 고작이라는 푸념만 흥건하다. 이에 비해 주민들이 가꾸는 우치코 전통마을은 인상적이다. 우치코 역에서부터 시작되는 600m 거리에는 70칸의 전통 건축물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양조장부터 혼하가 주택, 오무라 주택, 목랍자료관, 상업과 생활박물관, 우치코 극장, 공방, 교회까지 영화 세트장처럼 펼쳐 있다. 일본 정부는 이곳을 중요전통건축조형물보존지구로 지정했다. 전주한옥마을보다 규모는 작지만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우치코와 한옥마을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정도다. 박제화된 세트장이 아니라 온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연간 700만명 이상 다녀간다는 전주한옥마을의 현재는 안타깝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경쟁력을 상실할 게 분명하다. 우치코처럼 옛 모습을 잃지 않고, 번잡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여유가 사라진 전주한옥마을은 위기다. 한옥마을을 점령한 정체 불명의 먹거리 노점과 좌판들로 정체성은 실종된지 오래다. 문화예술인들이 호흡해야 할 공간은 음식점과 커피숍이 점령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어떻게’해야 하는지 답은 없다. 일본 현지인들도 우치코를 즐겨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에도와 메이지 시대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문난 관광지이지만 우치코에는 그 흔한 노점상과 좌판이 없다. 오래된 건물에서 간단한 기념품과 차, 먹거리를 판다. 주민들이 재배한 야채와 과일, 잡곡을 파는 무인 상점은 독특하다. 그것마저도 처마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 곳곳에 개방된 공방에서는 장인들과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교감한다. 관광객들은 우치코에서 과거와 대화하며 만족해 한다. 반면 한옥마을에서 활동하던 문화예술인들은 상업화 격랑에 휩쓸려 하나 둘 발길을 돌렸다. 전통이란 허울만 남긴 채 속살은 빠져나간 셈이다. 껍데기만 남은 한옥마을이란 자괴감이 깊다. 우치코를 떠나면서 전통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으로써 한옥마을의 지향점을 생각해 봤다. 일본이란 나라, 우리가 얕잡아 볼 나라는 아니다.


△일본의 자전거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