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부끄러운 아빠되지 않겠다는 각오가 청과시장 주름 잡는 거상으로
다신 부끄러운 아빠되지 않겠다는 각오가 청과시장 주름 잡는 거상으로
  • 정경재 기자
  • 승인 2015.12.30 17: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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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청과마트 류재일 사장] 17년 전 아이 교복 값을 갚겠다는 ''
17년 전, 봄이다. 늦은 시각 한 남성이 교복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중학생 또래로 보이는 사내아이도 함께였다. 남루한 차림의 남성은 아이의 교복을 골랐다. 아이는 마음에 드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점원이 포장을 하려고 하자 남성은 머뭇거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꼭 돈을 마련해 오겠다. 아이가 내일 학교에 들어가는데 먼저 교복을 입게 해달라”고 청했다. 잠시 고민하던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맑은 눈망울과 남성의 간곡함이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 남성의 주머니에는 단돈 3만원이 있었다. 그게 그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다음날 남성은 청과시장으로 향했다. 바나나 몇 송이를 산 뒤, 시내 이곳저곳을 돌며 팔았다. 변변한 오토바이 하나도 없었기에 매일 수 킬로를 걸었다. 아이 교복 값을 반드시 갚겠다는 마음 하나였다.

며칠 뒤, 교복 가게에 남성이 다시 찾아왔다. 약속했던 교복 값을 주인에게 지불했다. 주인이 “괜찮다”고 말하자, 남성은 “너무 감사했다. 꼭 받아 달라”며 돈을 올렸다.

이후로도 남성은 계속 청과시장에서 바나나를 떼다 팔았다. 처음에는 몇 송이 사지 못했지만 차츰 양 손 가득 바나나가 들렸다. 더 이상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바나나를 팔았다. 어느새 그는 대단지 아파트 앞에 판매대를 세울 정도가 됐다.

시간이 더 지나 목 좋은 곳에 작은 가게를 얻었고 지금은 청과시장을 주름 잡는 거상이 됐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인생을 산 남자는 류재일(57·남원시 향교동)씨다.



△ 한 가장에 닥친 아픔

류씨가 한참 어려웠을 때.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니까 딱 IMF가 터졌을 때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한 순간에 몰락하고 숱한 점포가 쓰러진 그 시기다. 류씨도 그 중 하나였다. 남원에서 손꼽히는 농산물 유통업체를 경영하다 도산했다. 매일 수 천만원의 현금이 입금되던 통장에 빚 8억원이 찍혔다. 매일 채권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죄송합니다. 빨리 갚겠습니다”고 비는 게 일과였다. 별 생각을 다했다. 도망칠까. 포기할까. 그만둘까. 마음 속에 체념이 가득했다. 하루하루를 괴로움 속에 살았다. 잠자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샘솟았다. 어느 날 가장 사랑하는 첫째 아들이 그에게 말했다 “아빠. 나 학교가야 하는데 교복이 없어” 그는 지갑을 꺼냈다. 안에는 꼭 3만원이 있었다. 그게 그가 가진 전부였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식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삶이 서글펐다. 가장의 짐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각. 새벽 일찍 류씨는 청과시장으로 향했다. 지갑에 고이 접어 둔 3만원을 들고서다. 택시도 버스도 탈 수 없었다.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돈이었다. 청과시장에서 그는 바나나 몇 송이를 샀다. 일찍 발품을 판 덕에 좋은 바나나를 얻었다. 지갑에는 이제 천원이 남았다. 시장에서 나온 그는 아파트 이곳저곳을 돌며 바나나를 팔았다. 새벽부터 구해 온 신선한 바나나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무릎이 시리고 발등이 아팠지만 매일 이 일을 반복했다. 아버지기에. 가장이기에.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고된 일과를 씻었다. 땀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그를 보고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너무 힘든 일하지마. 내가 얼른 커서 아빠 도와줄게.” 그는 이날 많은 눈물을 흘렸다. 힘들어서,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서였다.



△ 배신하지 않은 노력

지난 17년은 그가 가장 열심히 산 시간이었다. 잠을 세 시간 넘게 잔 날이 거의 없다. 바나나를 내다판 돈을 모으고 모아 작은 테이블을 하나 샀다. 이제 아파트 계단을 돌지 않고 바나나를 팔 수 있게 됐다. ‘바나나가 신선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렸다. 예전에 돌던 아파트 주민들까지 판매대를 찾았다. 꼭두새벽 가장 일찍 청과시장을 찾은 노력의 결과였다. 수 년 동안 땀 흘려 일한 결과, 작은 가게를 하나 얻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유통업체 사장으로 있을 때보다 그 때가 더 기뻤다. 그는 가게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바나나마트’라고.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바나나를 발품 팔던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가장 힘들었던 때를 잊어버리면 다시 나약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작은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상호가 특이하다고 말했다. 그 때마다 그는 방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제가 바나나를 매우 많이 좋아합니다.”

   
 
   
 


△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가장

지금 그는 남원에서 손꼽히는 대형마트를 운영 중이다. 발품팔이에서 노점상, 과일가게 주인을 거쳐 이곳까지 왔다. 빚도 대부분 갚았다. 그에게 지난 한 해는 매우 특별했다. 지겹던 ‘신용 불량자’ 딱지를 기어이 뗐다. 17년 동안 그를 따라다니던 빚 독촉도 중단됐다. 이제는 어엿한 마트 사장님이 됐다. 웃는 날도 많아졌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이제 자랑스러운 가정이 됐다는 기쁨이다. 게을러질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누구보다 일찍 청과시장을 찾는다. 잠을 세 시간만 자는 습관도 그대로다. 가게에 붙인 상호처럼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 아이 교복 값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그 때의 마음을 여태껏 되새기고 있다. 다시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겠다는 각오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그에게 물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가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했던 노력이 억지가 되는 것 같다.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즐겁게 일했고 하나씩 일궈가는 게 보람됐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항상 즐거웠다. 힘들었다고 생각했다면 여기까지 절대 오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를 힘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 모든 순간이 내가 걸어 온 발걸음이고 누구보다 즐겁게 그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과정에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었을 뿐이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나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길을 걷겠다”



△ 취재 후기

그의 마트에서 나오는 길.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계산대에 놓인 글귀였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이 모퉁이만 돌면 희망이란 녀석이 기다릴지 모른다.’ 일본 정신병리학자인 사이토 시게타의 말이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한 그에게 잘 어울리는 문구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마트 앞에 놓인 사과 상자였다. 거기에도 문구가 걸려 있었다. “신선한 사과입니다. 마음껏 드세요.” 잘 쓴 글씨는 아니었지만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사과를 뒀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 새빨갛게 핀 그 사과가 그의 미소만큼이나 환하게 거리를 비췄다.

/정경재 기자 yellowhof@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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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2015-12-31 09:55:15
와...눈물이 울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