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 문화-생활 알아가며 전북 매력에도 흠뻑 빠졌죠
그 나라 문화-생활 알아가며 전북 매력에도 흠뻑 빠졌죠
  • 글=권순재·사진=오세림 기자
  • 승인 2016.03.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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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지구촌 한가족] ■중국인 정시화 씨의 한국 사회 이야기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정시화(여·23·딩시화)씨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지 올해로 3년째다.

전북대에 재학 중인 정씨는 학내 마당발로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중국 유학생인 그녀는 “처음에는 친구들이 없어 외로울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다”며 운을 땠다.

정 씨는 2013년 11월 한국에 왔다. 한국으로의 유학은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아온 어머니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정 씨의 어머니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화장품 회사를 다니던 중 한국행을 택했다.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움이 컸다.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입국도 다른 유학생과 달리 서둘렀다. 대학교 입학 6개월을 앞둔 시점으로 늦가을 찬바람이 불던 때였다. 처음 한국행 티켓을 끊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넘쳤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가요, 드라마, 패션 등 한국 문화를 섭렵했을 정도다. 어머니는 물론 한국 문화를 직접 느끼고 하고 싶던 경영 공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장밋빛 인생을 꿈꾼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조각났다.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해 매일을 기숙사에서 보내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어 외로운 순간이었다. 정 씨에게 그해 겨울은 유별나게 춥고 힘든 계절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응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학업을 포기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만큼 낯선 이국땅에서의 정착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춥고 힘든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서 어려움도 차츰 녹아들었다. 2014년 3월 전북대 언어교육원을 다니면서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익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수업을 마쳐도 읽고 쓰고 듣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언어교육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멘토링의 도움도 컸다. 멘토링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친구를 사귀면서 사람들을 알아갔다. 지금은 다들 취업해 바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서로의 집을 오가며 즐거운 나날이었다.

정 씨는 “한국에 와서 언어를 배우는 데 바빴다. 말을 못 할 때는 혼자 다닐 수 도 없어 기숙사에만 있어야 했다. 지금은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중국말을 안하다보니 기억에서 가물가물할 정도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올해로 대학교 3학년이 된 정 씨는 학내 홍보대사를 포함해 멘토링, 필링코리아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 홍보대사는 지역을 넘어 중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전북대를 포함해 전북의 이모저모를 알리겠다는 당찬 포부다. 한국 문화가 퍼지면서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전북에 대한 인식은 낮기 때문이다. SNS와 인터넷을 통해 중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곳의 소식을 나르고 있다.

홍보대사 외에도 멘토링과 필링코리아를 통해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을 유학생 후배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처음 한국에서 겪은 어려움을 남들은 덜했으면 해서다. 그밖에도 동아리,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등 크고 작은 학내 행사도 빠트리지 않고 참석한다. 적극적인 자세가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겪으면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학생 가운데 정씨와 달리 애초의 뜻을 잊은 학생들이 더러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정 씨는 “유학생 중에는 더러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학생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같은 나라 출신끼리 어울리는 것은 배움에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유학을 택한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나 생활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순재 기자

 

'정치 경제 문화 교통' 중심지 "중국 심양 "

정시화씨가 나고 자란 심양은 중국 랴오닝성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심양은 길림, 흑룡강, 랴오닝성 등 동북3성 가운데 지방 최대의 도시로 정치와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다. 단지 평균 기온이 각각 23.8도, -12.7도로 한국보다 더 덥고 추운 수준이다.

심양은 20세기 초 중국 철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당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지역이다. 금나라 때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만주시대의 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어 한국을 포함해 각국의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청심양고궁’이라 불리는 후금의 옛 궁궐이다. 과거 무크덴, 봉천이라 불렸던 심양은 만주족 청나라의 첫 수도였다.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자금성이 정궁이 되고 심양의 고궁은 별궁이 됐지만 선조의 기원이 있는 심양의 고궁을 매우 중시했다. 현재는 베이징의 자금성과 함께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정 씨가 기억하는 심양의 먹거리는 바로 꼬치다. 중국의 많은 먹거리 가운데 가격이 저렴해 인기 메뉴다. 장어, 오징어 입, 소고기 연골, 양고기, 채소류 등 각종 재류를 주문과 동시에 바로 구워내 달고 짭조름한 맛으로 어필한다.

한국과 심양은 지난 2001년부터 성남시과 국제자매도시를 맺어 한국주간 등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 /권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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