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기대 범죄로 버틴 가족의 추악한 민낯
권력에 기대 범죄로 버틴 가족의 추악한 민낯
  •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영화관 운영매니저
  • 승인 2016.04.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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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영화이야기] ■클랜


세계 각국의 현대사를 들춰보면 독재정권에 시달렸던 역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까운 나라 필리핀에서는 21년간 철권통치를 하며 독재의 끝을 보여준 페르난디드 마르코스, 루마니아에서는 전국민을 상대로 도청과 사찰을 일삼는 등의 갖가지 만행을 저지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머나먼 땅 남미의 칠레에서는 자국민들을 학살한 최악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 정권을 겪어야 했다. 이와 같은 독재의 시대는 각국의 영화감독들이 작품으로 만들며 다시 조망하곤 한다. 독재자 자체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부터 극화한 인물영화, 혹은 시대의 자장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지금 소개하려는 영화 <클랜>도 이에 해당한다.



<클랜>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여러 통치자들이 연달아 재임하며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했던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영화는 독재자나 정권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푸치오 부부 가족의 실제 삶을 다룬다. 집안의 가장 아르키메데스 푸치오는 독재정권의 비호아래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이름의 단체로 활동하며 납치와 살인을 통해 이익을 취하며 가족을 꾸려나간다. 지역 명문 럭비팀의 촉망받는 선수인 맏아들 알렉스는 아버지 아르키메데스의 뜻에 따라 납치 대상을 유인하며 계획을 돕는다. 특히 알렉스는 남다른 실력과 명성을 지녔기에 타인의 의심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아내인 에피파냐는 그런 부자의 행동을 묵인한 채 받아들이며 다른 가족들 역시 이런 끔찍한 행동들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거나 외면한다. 범죄위에 마련된 이들 가족의 삶은 민주화 운동출신의 대통령 라울 알폰신이 집권한 이후 급격한 위기를 맞게 된다.



서술된 이야기대로라면 영화는 한 가족의 파국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클랜>은 가족의 파국에서 응당 느껴질 법한 비극의 쓰라림이나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라고 항변하는 가장 아르키메데스에겐 부성보다는 아집과 독선이 가득해보인다. 아르키메데스를 두둔하는 아내도, 계획을 도왔으나 후에는 아버지의 계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맏아들 알렉스도, 그밖에 다른 구성원들도 가족이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단 각자의 삶과 계획이 무너질까 걱정한다. 독재정권의 덕을 보며 기반을 쌓아올린 푸치오 가정엔 어디에도 범죄를 뉘우치고 반성할만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클랜>은 비극의 절절함이 담긴 드라마가 아니라 범죄 스릴러에 가까루며 나아가 지독한 블랙 코미디의 뉘앙스까지 덧칠된 작품이다.



영화 <클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심각하거나 폭력적인 순간, 파국이 정점으로 치닫는 장면을 종종 분위기가 들떠있는 아이러니한 상황극처럼 찍었다는 점이다. 소재나 이야기 측면에서 한없이 무겁고 진중한 것처럼 흘러갈 것만 같은 영화임에도 결코 일방적인 분위기로만 끌고 가지 않는 덕분에 <클랜>은 영화적인 재미와 주제의 균형을 영리하게 유지한다. 아버지 아르키메데스역을 맡은 길예르모 프란셀로의 연기 역시 영화에 힘을 불어넣은 핵심동력이다. 길예르모 프란셀로는 독재정권의 비호하에 납치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의 냉정한 표정에서 부터 맏아들 알렉스를 마치 부하처럼 대하며 지시를 내리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선보이며 시대가 낳은 괴이한 가장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기한다.



연출을 맡은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은 <크레인 월드>(1999)로 첫 장편을 연출하자마자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상, 로테르담 영화제 타이거상 및 국제비평가상을 비롯해 남미 주요영화제 본상을 휩쓸며 지금까지도 주목을 받는 아르헨티나 명감독이다. 이후에도 만드는 작품마다 남미 주요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되거나 수상을 이어갔다.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의 작품은 주로 자국의 과거 혹은 현재의 정치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파고든다. 최근 작품 중엔 부에노스 아이레스 슬럼가의 빈민들을 돕는 두 신부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룬 <화이트 엘리펀트>(2012)가 대표적이며, <사자굴>(2008)나 <카란초>(2010)와 같은 작품은 그러한 현실에 살아가는 이들의 악착스러운 면모에 관한 묘사를 가미하기도 했다.



<클랜>은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의 최신작으로 앞서 언급했던 이전작들의 특징을 두루 갖춘 작품이다. 작년에 열린 제72회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크레인 월드>이후로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섹션에 초청되어 첫 상영을 앞두고 있다. 특별히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는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이 직접 방한하여 마스터 클래스 및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예정이다. 영화제 상영이 마무리된 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5월 12일(목) 정식 개봉될 예정이다.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영화관 운영매니저



<클랜> (1961)

감독 : 파블로 트라페로 ∥ 주연: 길예르모 프란셀라, 피터 란자니 ∥ 108분 ∥ 범죄/스릴러 ∥ 15세 관람가

■ 개봉일시 : 5월 12일 목요일

■ 상영장소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전주영화제작소 4층)

■ 관 람 료 : 일반 5,000원, 할인 4,000원(후원회원, 만 65세이상, 장애인, 청소년, 국가유공자 등)

■ 문 의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063-231-3377 (내선 1번) / http://theque.jif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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