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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대신 감으로 치는 북…"북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새전북이 만난 사람] ■국내 첫 시각장애인 판소리 고법 보유자-조경곤 고수
2016년 09월 01일 (목) 이종근 기자 jk7409@sjbnews.com
   
  ▲ 허애선(사진 왼쪽) 명창의 흥보가에 맞춰 장단을 마추고 있는 조경곤 고수  
 



“저는 비록 두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온 마음을 다해 울리는 북소리를 들어주십시요. 장애인들에게 노력만 한다면 어떤 불가능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자극이 됐으면 합니다”

전라북도 김제출신 판소리 고법(鼓法) 보유자 조경곤(49) 고수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2013년 ‘판소리 고수’ 부문에 인천시지정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그는 당시 최연소이자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고수 분야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돼 화제가 됐다.

조경곤 고수는 “시각장애인은 명고수가 될 수 없다”는 국악계의 통념을 깼다. 지난 2003년과 2004년 순천 팔마고수 전국경연대회 명고부에서 연거푸 입상했으며,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법 명고부에서도 입상해 국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의 북장단은 명창의 소리와 맛깔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소리판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만의 독특하고 명쾌한 추임새는 청중의 흥을 돋우며, 곧장 소리판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끌림이 있다. 소리꾼에게는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소리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연주로 흐름을 주도하기도 한다.

고수(鼓手)는 소리꾼의 소리가 뒤처지면 북장단을 조금 더 빨리, 소리가 빨라진다 싶을 때는 약간 느리게 쳐주면서 소리꾼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이렇듯 정확한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고수는 소리꾼의 입모양을 보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판소리는 같은 소리라 하더라도 소리꾼에 따라, 또는 소리꾼의 감정에 따라 호흡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기에 고수는 손동작과 입모양을 보고 장단을 맞춰야 한다.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고수는 없다”고 합니다. 또 ‘1고수 2명창’이라는 말도 있지요. 그만큼 고수가 되는 일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볼 수 없다는 건 고수로서 치명적이죠. 판소리는 악보가 없기 때문에 보통 고수들은 명창들의 입을 보고 장단을 맞추지만 저는 볼수 없으므로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그는 눈 대신 감각으로 북을 친다.

그는 판소리를 몹시 좋아했던 이웃 큰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소리명창들의 판소리 가락을 들으며 자랐다. 부모 몰래 소리명창들을 찾아가거나 용돈을 모아 학원을 다니면서 <심청가> <춘항가> 등을 배웠다. 그러나 나중에 큰아버지가 알고는 “국악은 배고프니까 하지 마라”고 말려 명창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는 운동을 유난히 좋아하던 신체 건강한 학생이었다. 특히 합기도 격투기를 즐겼던 그는 고교 시절 격투기 시합을 하다 망막을 크게 다쳤다. 10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서서히 시력을 잃었고 결국 20대 후반 완전 실명했다.

   


3년간 세상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방황을 했다. 그러다 단돈 1만5,000원을 들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어릴 적 접었던 판소리 고수의 길을 걷기 위해 국내 고법 1인자들을 찾아다녔지만 고개를 흔들어댔다. 시각장애인은 고수가 되기 힘들다는 판단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다 2002년 판소리 명창의 집에 놀러갔다 운명처럼 스승 이은태씨를 만났다. 3년 동안 찾아다니며 북을 배웠다. 지하철을 타다가 선로에 떨어져 죽을 고비도 숫하게 넘겼다.

“북소리를 듣고 옛날의 꿈이 되살아났어요. 그전에도 문화재급 선생들에게 찾아갔는데 ‘너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안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은태 선생님은 ‘너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희망을 주시며 손수 손을 잡아주며 북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는 평소에는 95년 결혼한 장애인 자원봉사자 출신의 아내 최정란(40)씨의 도움을 받아 무게 18㎏짜리 북과 녹음기를 둘러메고 집에서 1km 떨어진 인근 약수터에 올라가 연습한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북채와 북의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 하루 10시간이 넘는 연습을 손에 피가 나도록 했다. 결국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시각장애인에게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고수분야 인간문화재로 등극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라는 편견 아래서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몇 %의 혜택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노력했고, 몇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당당히 인간문화재로 인정받게 됐다. 그는 누군가의 희망교과서가 된 셈이다.

“묵묵히 저의 손을 잡아주는 아내와 아들 성원, 딸 성민이에게 아빠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교를 구분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자칫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 같으나 도리어 장애인차별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문화를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향인 전북에서 내년쯤 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현대판 ‘국악카페’를 개설, 운영해 후학양성과 재능기부 계획도 밝혔다.


   

조경곤 고수는 김제 출신의 판소리 명고이다. 판소리를 즐겼던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소리 가락을 익숙하게 들으며 자랐다. 인근의 국악 학원을 찾아가 최난수(1931~2013)에게 민요와 단가, 이일주(1936~)에게 〈춘향가〉, 이성근(1936~)에게 〈심청가〉와 고법을 직접 배우기도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국악에 입문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운동을 하다 부상으로 망막을 다쳐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 20대에 결국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됐다. 다시 판소리에 뜻을 두게 된 그는 26세(1992)에 김청만(1946~을 찾아가 고법을 익혔고, 36세에 스승 이은태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고법을 더욱 본격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이후 장덕화(1942~)에게 장구 반주를, 정철호(1923~)와 정화영(1943~)에게 판소리 고법을 배웠다.

그는 장애를 딛고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명고부, 순천 전국팔마고수경연대회, 목포 전국국악경연대회 명고부 등에서 입상하면서 기량을 인정받았고, 2013년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보유자로 인정됐다./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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