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공동체를 이뤄 살아간다. 때론 이웃과, 때론 자연과 동행하기도 한다. 한 배를 탄 운명체와 같다는 의미다. 하지만 갈수록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지역 이기주의, 무분별한 개발 탓이다. 한편으론 공동체 기능을 회복하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그런 동행의 길, 상생의 길을 함께 걸어봤다.<편집자주>
#해온이 덕에 온마을에 웃음꽃 폈어요~#
#젊은 귀촌부부와 촌로들의 특별한 인연#
#때론 가족처럼 때론 친구처럼 동거동락#
“해온이네 가족이 이사오면서 늙은이들만 살던 마을에도 웃음꽃이 활짝 폈죠.”
도시에서 온 세 살배기 해온이를 꼬옥 껴안은 배정옥(63·순창 관북리) 어르신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배씨의 따뜻한 품에 안긴 해온이 또한 연신 귀여운 짓이다. 여느 친 손주, 친 할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둘 사이 특별한 인연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전주에 살던 해온이네 가족이 순창으로 이사하면서다. 동갑내기 맞벌이 부부이자 해온이를 낳은 김진호(공무원), 김로연(방송작가)씨가 귀촌을 결심한 직후다.
“평소 각박한 도시보단 좀 더 여유롭고 정감 있는 삶을 꿈 꿔 왔는데 때마침 남편의 첫 직장이 순창에 잡혀 별다른 고민없이 이삿짐을 쌌죠.” 아내 로연씨 얘기다.
그렇다고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쇼핑센터도, 문화시설도, 의료시설도 변변할 게 없는 순창에서 삶이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주에 직장을 둔 로연씨 출퇴근 문제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갓 태어난 해온이를 어디에 맡길지가 큰 고민 거리였다. 순창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순창에 이삿짐을 풀자마자 이웃 어르신들이 팔 걷고 도와줬다고 한다.
마치 타향살이에 지친 아들 딸 내외가 귀향한 것처럼 반겼다는 얘기다. 젊은 부부, 특히 갓난 아이는 보기조차 힘들었던 까닭이다. 이웃들 소개로 만난 배정옥 어르신 또한 아이 돌보미를 자청했다.
해온이네 가족과 어르신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잘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게 좀 서먹 서먹했죠. 하지만 해온이를 친 손주처럼 정성을 다해 돌봐주시는 어르신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느끼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해온이 엄마 아빠의 얘기다.
사실 어르신은 이미 열 댓명의 아이를 길러냈다고 한다. 보육시설이 마땅치 않아 해온이네처럼 머릴 싸맨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 어르신에게는 소정의 보육비가 건네졌다. 그렇다고 아이 돌보미가 단순한 용돈벌이는 아니었다.
“너도나도 떠나는 시골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이렇게 예쁘고 귀한 아이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게 늙이들에게 오히려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죠.” 해온이를 품에 꼬옥 껴안은 배정옥 어르신의 얘기다.
그런 어르신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장성한 아들 딸은 출가시켰다고 한다. 해온이네처럼 직장을 찾아 먼 곳에서 타향살이 한다는 얘기다. 어르신은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때론 손주 같고 때론 말동무 같아 하루 하루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해온이 엄마 아빠 또한 그런 어르신을 친 부모처럼 여겼다. 먼 곳에 사는 어르신 아들 딸 내외와 스스럼 없이 전화 통화를 할 정도가 됐다. 매일 아침 저녁 아이를 맡기고 찾아오면서 어르신 안부도 살필 수 있어서다.
더욱이 해온이는 온마을 귀염둥이가 됐다. “아장 아장 걷는 모습만 봐도 꽉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잖아~.”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해온이 재롱잔치에 웃음꽃이 만발한 동네 어르신들 얘기다.
해온이는 온누리에 비치는 햇살이란 뜻을 지녔다고 한다. 해온이네 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서로의 햇살이 되고 있다.
/정성학 기자 csh@sjb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