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작품이 많은 영화계에서 여자배우들이 맡게 되는 많은 역할들은 대체로 주변부에서 머물거나 대상화된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가 잦다. 예나지금이나 여자 배우를 주체적인 주인공 캐릭터로 내세워 주목받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에도 남자배우 중심의 영화들이 대부분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연기나 캐릭터로 주목받은 여자배우들의 활약은 어느 해보다 빛났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영화에 한정한다면 여자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으로서 주목받은 대표적인 작품은 단연 <아가씨>이며 <아가씨>로 새롭게 발돋움한 배우 김태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주에 소개할 영화 <문영>은 김태리에 쏟아진 관심과 인기에 힘입어 만날 수 있게 된 그녀의 첫 번째 주연작 이다. 매일 술에 빠져 사는 아버지와 살고 있는 열여덟 살 고교생 문영(김태리)은 핸디캠을 들고 거리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찍는 것이 유일한 일상이다. 우연히 어느 골목에서 술에 취해 남자친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는 스물여덟 살 희수(정현)의 모습에 눈길이 간 나머지 몰래 촬영을 한다. 싸우던 희수는 촬영하던 문영을 쫓아가 촬영한 영상을 dvd에 담아 자신의 집으로 가져올 것을 요구한다. 다음 날 문영은 희수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고 희수는 문영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로 발전해간다. 어느 날 문영은 희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매일 캠코더를 들고 사람들을 촬영하는 이유를 털어놓는다. 두 명의 여자가 우연한 계기로 만나 관계가 깊어지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문영>은 작년에 개봉했던 <연애담>과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제목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연애담>이 두 여자의 연애에 관한 실례를 면밀하게 묘사한 로맨스 드라마라면 <문영>은 로맨스 드라마 직전에 도착하는 캐릭터 중심영화다.

<문영>에서 문영은 캠코더로 찍은 작은 화면으로만 세상을 보려한다. 정작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강한 경계심이 서려있다. 작은 액정화면의 크기만큼 사람을 믿고 대하는 문영에게 희수의 존재는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면에서 <문영>은 관계의 성숙과 진전을 내포하고 있는 점에서 성장영화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문영>을 추동하는 힘은 단연 배우 김태리다. 작품 에서 김태리의 지분은 인기에 힘입어 개봉하게 된 것 만큼이나 독보적이다. 갓 영화에 출연한 신인이 주인공을 맡아 거의 아무런 대사 없이 한 시간 동안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영>에서 문영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김태리는 본인의 존재만으로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시선처리 만으로도 김태리는 캐릭터가 지닌 신비감을 잘 드러낸다. 더불어 걸음걸이, 특히 달리기를 하는 문영의 모습은 소통없이 혼자 살아온 문영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운동감을 선사한다. CF로 데뷔하기도 전인 2013년에 처음 찍은 영화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문영>은 배우 김태리의 원초적 매력을 풍경처럼 펼쳐냈다.

<문영>은 본래 43분의 단편으로 특별전을 통해 상영되었으나 정식 개봉과 함께 재편집작업을 거쳐 64분으로 늘어난 작품이다. 본래 중단편의 호흡을 가진 작품이 장편에 가까운 길이로 늘어나면서 마무리에 이르면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멈춘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작품의 호흡과는 별개로 두 명의 배우들이 호연을 펼치는 장면들을 좀 더 볼 수 있다는 점, 특별상영이 아닌 정식 개봉작으로서 극장관람이 가능해진 부분을 고려한다면 <문영>의 장편버전은 관객들에겐 아쉬움보다 반가움이 앞서는 작품이다. 김태리 배우의 원초적인 매력이 잘 담겨있는 영화 <문영>은 1월 12일에 개봉되어 상영 중이다.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영화관 운영매니저 <문영> (2015) 감독 : 김소연 ∥ 출연: 김태리, 정현 ∥ 64분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개봉일시 : 1월 12일 목요일 ■ 상영장소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전주영화제작소 4층) ■ 관 람 료 : 일반 5,000원, 할인 4,000원(후원회원, 만 65세이상, 장애인, 청소년, 국가유공자 등) ■ 문 의 :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063-231-3377 (내선 1번) / http://theque.jif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