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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고 갈래?
[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라면
2017년 04월 13일 (목) 송영애 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APSUN@sjbnews.com

   

라면 먹고 갈래?
좀 놀아본 언니들의 빠지지 않는 멘트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음식, 바로 라면

라면은 사랑입니다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봄날은 간다>(One Fine Spring Day, 2001)는 요즘 TV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영애의 주연 작품이다. 영화는 따뜻한 봄을 남녀의 사랑에 빗대어 만남과 헤어짐까지의 내용을 담았다.
봄이라는 계절은 추운 겨우내 기다리는 마음과는 달리 언제 왔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간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짧은 느낌마저 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을 때 마음껏 봄을 즐겨야 하는데 한창 봄일 때는 모르고 있다가 계절이 바뀐다. 그때야 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봄이 가야 다른 계절도 오고, 그러다 보면 또 봄이 온다. 봄은 꼭 다시 오게 되어 있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할 때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때야 ‘그게 사랑이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사랑, 한 번도 안 해 본 것처럼 사랑을 기다린다. 사랑할 때는 또 바보처럼 모른다. 사랑하는 우리는 모두 바보다.
< 봄날은 간다> 영화 속에는 뜨거운 사랑도 봄날의 따스함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알려주는 두 주인공이 있다. 방송국 PD이면서 라디오 DJ 역할까지 소화하는 은수(이영애)와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다. 둘은 추운 겨울에 업무적으로 만나게 된다. 상우는 개울가의 시냇물 소리, 대숲 바람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고, 은수는 이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려준다. 함께 소리를 찾아다니는 날이 잦아질수록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귀에 늘 들리는 소리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 자연의 소리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늦게 녹음을 마친 상우는 은수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은수는 “태워다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차 문을 닫는다. 그러다가 금세 무엇이 아쉬운 듯 다시 차 문을 열며 상우에게 빠르게 말한다.
“라면 먹을래요?”
상우는 집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어색하게 앉는다.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은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상우는 라면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라면에 소주 먹으면 맛있는데….”
피식하고 웃는 은수는 라면을 끓이다가 툭하고 말을 던진다.
“자고 갈래요?”
그들은 사랑하는 연인 둘만이 아는 수줍듯 행복해하는 표정에 어색한 듯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은수와 상우가 나눈 대화 중 “라면 먹을래요?”는 지금까지도 “자고 갈래요?”와 같은 의미다. 좋아하는 이성과 함께 있고 싶은 속마음을 대신하는 말로 당시에는 아주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우리는 언제 라면 먹어?”, “라면 언제 끓여줄 거야?”도 같은 말이다. 라면 먹고 가라는 말에 “나는 라면 안 좋아해.”, “나, 지금 배불러.”라고 말하면 ‘너와 함께 있기 싫다.’는 의미다. 이제 ‘라면’은 연인들 사이에서만큼은 은밀한 신호가 되었다.
‘라면’ 안에 숨은 의미도 모르고, 정말 라면만 먹고 가는 남자친구는 눈치가 없어 헤어질 핑계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자 친구는 속으로 짜증을 내듯 말할 것이다.
‘여기가 분식집도 아니고, 라면값은 해야지.’
“라면 먹고 갈래?”는 많은 드라마나 광고에서 좀 놀아본 센 언니들의 단골 대사다. 같은 이름의 영화도 있으며, 노래도 여러 곡이다. 이 중에서도 빈센트앤 로즈의 노래 가사가 인상적이다.
“계란도 하나 쏙 풀어줄게 / 몇 개 안 남았지만 / 너구리, 신라면, 삼양라면 / 제일은 너와 함께라면 / 라면 먹고 가 / 핸드폰 충전기도 준비했어.”
라면 한 그릇 함께 먹기 위해서는 핸드폰 충전기까지 준비해야하는 시대다.

내가 라면으로 보여?
은수와 상우는 ‘떡라면’, ‘김치라면’까지 끓여 먹으며 한층 친해지더니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러하듯 사소한 일로 감정싸움이 일어난다. 그것 또한 ‘라면’으로….
“나 어디 좀 갔다가 올께.”
“어디 가?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조심해.”
양은 냄비 안에서 함께 넘치듯 펄펄 끓어오를 때는 언제고 금세 식었다. 냉랭한 연인 관계가 되었다. 아무리 잘 끓여진 라면일지라도 제때 먹지 않아 식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라면은 다시 데워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퉁퉁 불어버린 면도 보기가 민망하다. 어쩔 수 없지만 버려야 한다.
“우리 헤어지자.”
“내가 잘할게.”
“헤어져.”
“너, 나를 사랑하기는 하니? 사랑이 변하냐…. 그래 헤어지자….”
그들의 짧은 사랑은 벌써 식었다. 감정도 버릴 때가 되었다. 기껏 1,000원도 안 되는 라면으로 사랑하고 싸우다가 결국 헤어졌다.

   

눈물 나는 맛
<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남녀의 사랑은 금세 끓고, 퍼지고, 식고, 버려야 하는 라면이었다면, 한 끼를 거뜬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라면 한 그릇으로 가족 간의 사랑을 찾아가는 영화도 있다. <파송송 계란탁>(Son, My Enemy, Pasongsong Gyerantak, 2005)이다.
대규(임창정)의 직업은 불법 음반을 만드는 일이다. 밤에는 여자들과 술 마시고 놀면서 하루하루를 의미 없게 보내는 노총각이다. 어릴 적 꿈은 가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불법 음반을 만들고 있는 처지에 회의감에 빠져 지내고 있다.
어느 날 9살 꼬마 인권(이인성)이 대규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다. 인권은 대규를 보자마자 아빠라고 부르며 따른다. 결혼도 하지 않은 노총각에게 갑자기 애가 생긴 것이다. 대규는 아들이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어린 인권은 아빠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답한다. 서로 ‘아빠가 맞다, 아니다.’로 한동안 싸우다가 인권이 먼저 한 가지 약속만 지켜주면 떠나겠다고 제안을 한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걸어가는 국토종단이다. 그것도 한여름에…. 대규는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인권의 말을 따른다. 철부지 아빠와 철이 든 어린 아들의 여행이 시작된다.
인권은 국토종단에 성공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제안한 것이다. 마음속에 간직한 소원은 아빠와 여행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인권은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얼굴도 모르는 아빠가 보고 싶어 무작정 대규를 찾아온 것인데 인권은 아프다. 소아암이다.

이들이 국토종단을 하는 동안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벌어지는 일들 모두가 웃음이고 눈물이고 감동이다. 돈도 없고, 잠자리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매일 저녁은 라면이다. 기차역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슈퍼에서 라면을 살 때마다 계란과 파까지 더해서 사고 싶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대규는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 공연을 한다. 이런 날에는 계란과 파가 들어간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인권은 신이 나서 라면을 끓이며 노래를 부른다.
‘물이 끓지도 않는데 집어넣는 사람이 있지 / 물론 먹을 수는 있지(면이 불지) / 물이 팔팔 끓으면 라면을 넣지 / 스프를 먼저 넣기도 하지(이상하지) / 라면이 끓는 사이 파와 계란을 준비하지 / 안 넣어도 상관없지(맛이 없지) / 파송송 썰어 넣고, 뚜껑 닫고 기다려 / 계란탁 깨서 넣고, 뚜껑 닫고 기다려 / 파송송~계란탁~ 파송송~계란탁~’
인권이 끓인 라면을 대규는 맛있게 먹는다.
“너무너무 맛있다.”
그러나 이 라면도 마지막이다. 임진각이 보이며 힘든 국토종단이 끝나가는 날이다.
“아빠가 많이 미웠지?”
“응. 아빠 만나기 전까지는…. 맨날 미워했어. 그런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
“미안하다.”
“아니에요. 나 때문에 직장도 잃고, 돈도 없을 텐데…. 이렇게 힘들게 하고 정말 미안해요.”
임진각이 바로 앞인데, 땅끝마을에서 빌었던 소원을 이룬 인권은 아빠 대규의 등에서 눈을 감는다. 대규 역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 봄날은 간다>에서 연인 관계였던 은수와 상우는 슬프지도 않은 이별로 끝났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마시며 입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시원하다.’고 말하는 해장라면 맛이다. 술도 깨고, 쓰린 속을 달래기에는 라면 국물만한 게 없다.
< 파송송 계란탁>의 아빠 대규와 아들 인권을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파와 계란을 넣은 라면 앞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더니 안경에 김이 서려 눈물 맺힌 눈을 가려준다. 라면 국물이 너무 매워 눈물이 난다는 어설픈 핑계도 필요하다. 한 그릇의 라면을 다 먹고도 부족한 듯 젓가락을 놓지 못한다. 헤어짐이 아쉽다. 아쉽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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