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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흩어지는 불꽃, 도미에처럼 깨어있고 나아가라
그림 인문학을 엿보다
2017년 05월 18일 (목) 박제원(전주 완산고등학교 사회교사) APSUN@sjbnews.com

   

채하: 선아야! 지금 학생들에게 기차를 연상하라면 무엇을 떠올릴까?


선아: 초고속열차인 KTX(Korea Train eXpress) 일 것 같은데요.


채하: 그렇겠지. 지금도 여러 기차등급이 있지만 우리 세대에게 추억의 기차는 단연코 비둘기호 열차였지. 지난 85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경춘선 기차를 타고 대성리, 강촌, 청평으로 MT를 갖던 기록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나. 지금은 추억의 노래가 되었지만 기타를 치며 함께 했던 “아침이슬, 상록수, 농민가, 해방가, 타는 목마름으로, 선봉에 서서” 등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선아: 노래 중에 어떤 것은 알지만 모르는 노래도 있어요. 그런데 기차 안에서 제창을 했다고요? 다른 승객들을 위해 공중도덕을 지키셔야죠!


채하: 지금은 기차 안에서 여럿은 관두고 단 한 사람이라도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면 ‘눈총 작렬’ 일 것이야. 하지만 그 당시에는 승객들이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어. 기차에서 불렀던 노래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청년학생들의 인간존엄성에 대한 희구였거든. 노래지만 인권과 지성, 노동을 억압하는 야만의 세상에 대한 슬픔과 분노의 서사시였거든.


선아: 혹시 선생님이 말씀하신 비둘기호 열차가 모든 간이역에 정차하는 삼등열차 같은데 뜬금없이 기차를 꺼내시는 이유가 뭐에요?


채하: 맞아. 비둘기호 열차를 삼등열차라고 하지. 지정된 자리도 없고 시설도 형편없었고 서서가는 사람은 좌석 요금보다 요금이 낮았단다. 가난한 사람들과 서민들은 입석표를 끊어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가던 기차지. 기차 이야기를 꺼낸 것은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의 그림인 <삼등열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란다.

선아: 지난번에 설명했던 귀스타브 쿠르베에 이어서 사실주의 회화 시리즈군요~


채하: 그림을 보면 가족이 삼등 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듯하다. 할머니와 엄마, 두 아이가 전면에 있고 그 뒤로 40∼5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뒤에 있다. 표정을 보면 삶에 지친 것인지 어둡고 우울하다. 오른쪽에 있는 아이는 너무 피곤한지 할머니에게 기대어 잠들어 있고, 왼쪽에 있는 엄마는 갓난아이에게 젓을 물리고 있다. 할머니의 눈은 거의 초점이 없어 보이지.


선아: 남자친구와 다툰 날에 그림을 보는 것은 피해야겠어요. 그림의 색조나 등장인물의 표정이 어두워서 그들의 고단함과 지친 일상이 저의 감정에 이입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도미에가 그림을 통해 드러내려는 것은 무엇이었어요? 이처럼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채하: 도미에는 19세기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부르주아지 계급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지만 가난한 이들을 자주 그렸던 드문 화가란다. 물론 상류층의 삶을 그렸지만 다른 측면으로 그렸지. 그의 그림에는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실존적 의지가 가득하다.


선아: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별이 횡횡하던 초기자본주의 시대에 매우 정의로운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 하류층과 상류층의 삶을 다르게 그렸다니요? 채하: 그는 정치 풍자화를 많이 그렸는데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비인간적인 삶을 과장되게 묘사함으로써 위선, 비겁함, 거드름을 폭로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마다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림으로써 인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희구하고 지배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간들을 조롱한 것이지.


선아: 권력을 조롱하고 인간다움을 희구한 도미에는 매력적인 작가군요. 그가 그린 풍자화를 말해줄 수 있나요?

   

채하: <가르강 튀아> 연작을 들어볼까. 도미에는 1830년 시사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 La Caricature』의 창간에 즈음하여, 이 잡지의 시사만화가로 화단에 데뷔했고 작가활동을 하게 되는데 1831년에 <가르강 튀아>라는 연작의 풍자화를 그리거든. 가르강 튀아는 프랑스 소설가인 라블레가 지은 <가르강 튀아와 팡그리웰>에서 ‘거인 왕’으로 등장한 인물이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목말라, 목말라’ 하며 울며 끼니마다 가축 수천마리를 먹어치우는 식탐을 자랑한다. 또한 세상사와 무관하게 낮잠을 자고 오로지 먹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지.

선아: 왕이지만 왕이라고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자였군요. 그러고 보니 지금 구속되어 수감 중인 박근혜 씨와 유사한 것 같아요.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오직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에는 고개를 돌리며 지배욕만 키웠잖아요.


채하: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거시적으로 역사는 전진하지만 미시적으로는 권력자의 실정이 반복되는 점에서 운명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삶은 그리 나아졌는가에 의문을 주기도 하지. 그림을 볼까?
그림 속에는 흉측하게 생긴 거인이 앉아있다. 거인은 루이 필리프 1세를 상징하는데 살찐 대식가로 그려져 금화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국왕이 앉아있는 의자 아래의 사람들은 정치인들인데 국왕이 배설한 쓰레기를 놓고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있으며 들고 있는 종이는 정치인들이 받은 훈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측의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은 금화를 바구니에 담기 위해 줄을 선 서민들을 상징한다.


선아: 도미에가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무엇이었어요?


채하: 루이 필리프 1세의 엄청난 세금 인상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그는 프랑스 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경제적 부를 대기업, 은행가, 대지주 같은 지배계층에 유리하도록 만들었고 프랑스 경제를 불황으로 추락시켰다. 하지만 그와 상류층을 위해서 가난한 서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착취하려고 했는데 도미에는 그림으로써 저항한 것이지.


선아: 7월 혁명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역사적 진보였다면 배신이자 반동이었군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달라고 투표했던 국민의 정치의지를 무시하고 사욕과 정권의 안위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1987년 서울대생이었던 박종철에 대한 고문치사에서도 보듯이 여러 독재자들은 그들의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살인하고 고문하며 구속시켰던 기억으로 보면 도미에는 무사했나요? 아마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채하: 무사할 리가 없지. 도미에의 정치적 캐리커처들은 왕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그는 1832년 체포되어 생트펠라지 감옥에 6개월간 수감되었다. 물론 주간지도 1834년 검열로 폐간되었다.


선아: 이제야 역사를 진전시킨 멋진 화가를 알았지만 오노레 도미에를 꼭 기억할 것이에요.


채하: 삼등열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까? <삼등열차>에는 1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서로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앞의 가족을 보면 할머니와 엄마, 아이의 시선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뒤쪽의 사람들도 있지만 시선을 마주치거나 대화하는 모습은 없다. 같은 좌석에 있지만 서로 굳은 표정으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선아: 왜 응시하거나 대화하지 않죠. 처음 만나 모르는 사이라면 그럴 수 있어도 가족이라면 서로 대화하는 상황을 그릴 수도 있잖아요?


채하: 좋은 가족 내지 소망하는 가족의 모습이 정겹고 훈훈한 느낌이라면 그림 속의 가족은 그렇다고 할 수 없지. 보통 가족 간에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외면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지.


선아: 그러니까요. 생각해보니 현대인의 삶에서 가족이라는 느낌이 많이 지워진 것 같아요.


채하: 근대초기의 산업혁명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무척 고단하게 만들었다. 토지에서 이탈한 넘쳐나는 노동력 때문에 저임금 상태로 장시간 일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까닭에 민중의 삶은 고단했단다. 매일의 삶은 고된 노동의 연장이었기에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피로는 늘 따라다녔고, 그 상황에서 타인의 삶에 관심이나 애정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를 능동적으로 살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시선조차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따뜻한 공감대를 가질 여유가 없었겠지.


선아: 이처럼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죠?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도 방치한 것인가요?


채하: 그 보다 더 나쁜 것도 한단다. 계급사회에서 대부분의 지배층은 오히려 이런 현실을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그들은 피지배층이 서로 대화하고, 모여서 연대하고 그들에게 저항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지. 국가가 철저하게 개인들을 개별화시키고 원자화된 개인을 직접적으로 통치할 경우에 체제 순응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국가만이 아니란다. 학교나 기업 등의 조직에서 저열하거나 탐욕적인 리더도 이런 방식을 즐겨 쓴단다. 정치용어로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이라고 한다. 기득권자들이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자들을 쪼개고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지배를 공고히 하는 전략이란다.


선아: 저도 정치학 시간에 배웠습니다. 헌대사회에서도 대중을 개별화시켜 분리하여 지배하려는 지배세력의 시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지역주의, 레드콤플렉스, 진보나르시시즘, 종교적 도그마주의” 등에서 보듯이 다만 그 형태가 세련된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채하: 이런 점에서 도미에는 존경받을만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평생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난했지만 계급적 지위를 배신하지 않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도미에가 죽을 때까지 그의 삶을 이해하거나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선아: 도미에에 대한 강의는 더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어요. 화가의 삶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있을 때에 작품에 대한 공감과 감동이 생기는데 그의 작품은 그의 삶이었어요. 더구나 지금도 우리사회의 한편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현실인데 저는 이 그림을 통해 잠시 잊고 살았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실천의지를 끄집어낼 수 있었어요. /박제원(전주 완산고등학교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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