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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봉사하는 행정으로 신뢰 얻을 것”
[새전북이 만난 사람] 취임 5개월 맞은 첫 여성 구청장 박선이 덕진구청장
2017년 06월 13일 (화) 권동혁 기자 APSUN@sjbnews.com

“일반적으로 ‘리더라면 큰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작은 것을 챙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여성스럽다.’, ‘조잔하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가 결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성보다 여성이 디테일에 강하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작가 허영순은 자신이 쓴 책 ‘강한 여자가 아름답다’에서 여성의 감춰진 능력과 힘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능력을 깎아 내리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우먼파워의 입지를 강조했다. 사실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도 그런 이유를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주시에서 처음으로 여성 구청장이 된 박선이(59) 덕진구청장의 얘기다.
160cm 정도 돼 보이는 키에 우리나라 나이로 60줄에 들어선 그는 젊었을 때 “미인이다. 다소곳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연약해 보이는 여성이다.
이런 외모의 그가 어떻게 최초의 구청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12일 그 이야기보따리를 푼 박 구청장을 만났다.

◇걸어서 왕복 5시간 등하굣길 깡촌서 키운 공무원의 꿈

경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야인으로 살기 원했던 아버지와 그를 조용히 내조하는 어머니 사이 1남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향은 전북 남원군 대산면. 초등학교를 가려면 걸어서 20리는 걸어야 할 정도로 ‘깡촌’이다. 그런 시골에서도 ‘공부를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엄했지만 어머니는 온유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유교적 가풍 속에 때 묻지 않게 자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집에서 30리 길. 걸어서 2시간 30분 정도를 가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왕복 5시간이다. “공부할 시간이 어딨어요. 걷다가 지칠 정돈데. 그래서 걸으면서 책을 봤어요. 지금도 그 습관 때문에 그런지 잘 풀리지 않는 업무가 있으면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문서를 볼 때가 있어요. 물론 그 때 많이 걸어서 그런지 지금도 몸매는 빠지지 않네요.” 그는 소싯적 이야기를 몸매 자랑이 담긴 웃음과 함께 이렇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학교도 멀고 하니 조용히 집에서 지내다가 시집가라.” 당시 시골의 교육 사정이 그랬다. 고등학교 문턱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첫째인 언니도 이런 이유로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다. “배우고 싶어서 아부지(아버지) 몰래 원서를 냈어요. 합격 통지서를 내밀면서 ‘공부 안하면 이 세상에서 할 것이 없어요. 보내주세요.’라고 한 뒤에야 학교를 갈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공무원 시험을 봤다. 1977년 스물 살 나이다. 국가직과 지방직 두 곳에 응시했고 모두 합격했다. 국가직은 농수산부 소관의 고창농업통계사무소가 첫 근무지었다. 사령장 받고 고창으로 떠나는데 버스 창밖 어머니 모습을 보고,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옛날 중학교 다닐 때 너무 힘들어 한 달 간 자취 생활 할 때도 어머니 생각에 많이 울었던 것처럼. “아버지가 ‘너무 멀고 여자 몸으로 혼자 사는 것도 힘들 것 같으니 남원에서 생활하라’고 하셔서 그 말씀을 따랐지요.” 한 달 차이로 지방공무원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았기에 가능했다. 그가 나고 자란 대산면사무소가 9급 공무원 박선이의 첫 발령지였다.

◇“6시 땡치면 퇴근하는거 어디었어?” 농민과 함께 한 공직 사회의 첫발

공무원은 ‘철밥통’이라 9시에 출근해서 6시 땡치면 퇴근하는 줄 알았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농민이 일하러 나가는 시간에 똑같이 출근해 근무하고, 주민이 집에 돌아가야 퇴근했다.
“아침부터 나가서 ‘주민 여러분, 퇴비 증산하러 퇴비 뵈러 갑시다’고 마이크 잡고 방송부터 했어요. 낮에는 논밭 돌아다니며 ‘병해충 방제는 이렇게 해라. 일반 벼 말고 신품종이 좋으니 이걸 써라’면서 별 일을 다했어요.” 당시 일반행정직 여성 공무원은 남원군 전체를 합쳐 서 너 명이 전부. 대부분 커피 타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초본 떼는 민원실 업무가 일반적이었다. 유독 박 청장만 민원실에 배정되지 않았다. “‘돈도 없고 뒷배경도 없어서 나는 민원실에 못가 이 고생을 하는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어릴 때 생각이었지요. 지금은 그 때 닦은 기초가 있어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논으로 밭으로, 때론 각종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며 동분서주하던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면사무소에서 3년쯤 근무했을 때다. 인근 대산지서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을 만났다. 이름은 하태춘, 계급은 순경보다 한 단계 높은 경장이었다. 하 경장은 훗날 경찰이 꽃이라 불리는 총경, 즉 서장 자리에 오른다. 둘 사이는 업무적으로 왕래하는 일이 잦았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궁합도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네 살 차이. 젊은 나이에 지서 차석 자리에 있기에 처음엔 유부남인 줄 알고 말도 편하게 했단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었어요. 시골에서만 자란 사람이 보기에 외무도 말쑥하고 말투도 세련돼 보였어요. 다방에서 손 한번 잡으려 해도 ‘덥석’하는 게 아니라 테이블 밑으로 뭔가를 건네주면서 슬며시 만지더라구요. 남편이 저에게 필이 꽂혔다나 뭐라나.”
하 경장은 “그 집 고구마가 맛있다”는 이유를 들며 면사무소 아가씨 박 서기보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란 걸 그 땐 몰랐어요. 우리 집에 와서 가풍을 본거예요. 거기서 마음을 정한 것 같더라구요. 제 아버지도 경찰 출신이라 사윗감으로 마음에 들어 했고 모든 게 결정났지요.” 만난지 1년이 안 돼 미래를 약속했다.

◇전주시로 옮기며 중책 수행…여성·복지 등의 분야에 전문성 높여

면사무소를 떠나 도농 복합지역으로 분리된 남원시청에서 근무하게 됐다. 면사무소 근무할 때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주변인들이 경쟁이 치열한 시청으로 이끌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여성정책과 정도의 부녀계에서 업무 영역을 넓혔다. 승진을 거듭하다 남편이 간부인 경위로 승진하면서 전주로 이사 하게 됐다. 1988년의 일이다. 당시 새로운 택지를 개발하던 효자동이 전주에서의 첫 근무지였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 동네에서만 8년을 근무했다. 자리를 시청으로 옮겨 하나씩 중책을 맡았다. 김완주 전 도지사가 시장이던 시절이다. ‘신나는 문화교육도시’가 시정 방침이었다. 자치단체에서 처음으로 교육지원조례를 만들었고, 교육지원사업 업무를 맡았다. 교육계의 반발이 심했다. 일선 지자체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터였다. 영어캠프와 영어마을을 운영하고 교육환경개선사업을 일선 학교를 대상으로 추진했다. 교육청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협력 약속을 받아냈다.
지금 송하진 도지사가 시장이던 시절에는 여성가족과와 생활복지과 등을 거치며 복지 분야로 전문성을 높였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때론 사비를 털어 쌀이며 이불 같은 것을 사서 주기도 했고, 그들이 행복해 하는 걸 보며 공직자로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흔히 악성 민원이라 불리는 해결 불가능한 민원인과 직접 만나 문제를 풀었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 오히려 플러스가 된 셈이다.
“남자들은 오히려 거부감을 많이 갖더라구요. 만나보니 여자인데 말도 잘 들어주고 이런저런 설명도 하면서 이해를 부탁하면 어느새 웃는 얼굴로 변해있더군요.”
사회적경제지원단장 시절엔 선미촌 문화재생 사업,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 전주 첫 마중길 조성사업, 아중호수 생태공원 조성, 팔복 새뜰마을 조성 등 전주형 도시재생 사업 추진으로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는 데 큰 공을 들이는 등 여성으로서의 화합과 소통 능력을 크게 발휘했다.
전주시에서 공직자로서 꽃을 피우고 있던 시기. 지서 차석 자리에 있었던 남편은 어느새 총경 자리에 올랐고 퇴직 후를 생각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남편의 남원시장 출마 결심이었다.
남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당선 가능성 등에 대한 사전 조사를 했다. “출마하라”는 권유가 많았다. 어느 날 남편은 서재에 앉아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다. 출마를 앞두고 필요한 자서전이었다. “나는 당신이 시장을 넘어선 성공한 서장으로 남길 바래요. 정치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수 있고, 오히려 이미지만 크게 실추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편 하태춘 총경은 출마의 꿈을 접었고, 지금은 전주기전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본인에 대해서도 출마를 고민해보라는 요청도 있다. 대답은 “NO!” 남편과 함께 사회봉사를 하는 게 퇴직 후 그의 미래 구상이다. 그래서 심리상담사 자격도 취득했다. 이익을 쫒기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재능기부를 하며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이다.

◇“전주·완주 통합 지금도 아쉬움 남아” 남은 인생도 봉사하는 삶으로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다시 추진하고 싶은 것은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이다. 2013년 양 시·군의 통합 추진 업무를 담당했던 그로서는 역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거의 다 됐다고 생각했어요. 중간에 이해관계에 얽인 정치인만 개입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통합 전주시는 전북의 성장을 주도하는 심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겁니다. 중앙정부의 많은 지원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성사되지 않아 지금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박 청장의 좌우명이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맡은 바 업무에 항상 최선을 다했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지난 1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성 구청장이란 호칭을 얻었다. ‘여장부’란 애칭이 따라다닌 덕진구청장 박선이의 시대가 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부담도 상당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약한 자여 그대이름은 여자라고 하지요. 여성은 약할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강해요. 그리고 엄마는 초인적인 힘이 있어요. 저는 아줌마고 엄마입니다. 남성이 챙기지 못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 시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행정을 하겠습니다.” /권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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