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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문학을 엿보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2017년 07월 20일 (목) 박 제 원(전주 완산고등학교 사회교사) APSUN@sjbnews.com
   
 
   
 

채하: 1874년 한 무리의 젊은 화가들이 파리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었는데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실망했다. 미술평론가들은 출품된 그림을 비웃기까지 했다.
선아: 작가들이 유명하지 않은 작가였던 모양이었군요.
채하: 그렇다고 봐야지. 그 당시에는 관람객이나 평론가들 누구라도 그들이 미술사에서 ‘인상파’란 거대한 족적을 남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선아: 그때 작품전을 같이 했던 작가들이 누구였어요?
채하: 지금은 뛰어난 화가로 기억하는 모네, 르느와르, 드가, 피사로 등이다.
선아: 대단한 작가들 아닌가요? 그런데 그때에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 까닭이 있었나요?
채하: 물론이다. 우리는 어떤 자연적이거나 사회적인 현상을 대할 적에 특정한 관점을 갖고 대하듯이 예술도 마찬가지다. 관객이나 평론가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그림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정상적인 작품과는 달랐으며 아무렇게나 물감을 찍어 바른듯한 이미지는 아이들 장난처럼 여겨졌다. 특히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는 최악의 조롱거리였지.
선아: 그랬군요. 그 화가들을 인상파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대중이나 평론가의 비평에 대해 얼굴을 찡그리고 눈살을 찌푸려서인가요?채하: 전시회를 보러 온 신문기자 때문이지. 루이 르루아란 기자인데 다음날 잡지에 작품평을 썼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한 순간의 인상만을 그리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로 날로 먹은 장인 정신의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조롱한 것이 출품한 화가들을 인상파라 부르게 된 계기란다. 아마 그 기자가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가를 알았을 것이고 새로운 논평을 썼을 것이다.
선아: 제목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요?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채하: 멋지기는 하지만 가슴 시리고 시리다 못해 저미는 표현이다. 선아도 알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 표현은 봉하마을 내에 조성된 故 노무현 대통령님 묘역에 새겨진 문구이기도 하지. 묘역이 조성될 당시인 2009년에 등장했고 그 다음 해인 2010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님 1주가 추도식에서 이해찬 국회의원이 추도사에서 해당 문구를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지.
선아: 전시회에서 가장 비난받던 작품이 모네의 <인상, 해돋이>라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채하: 그 당시의 주류적 시각으로 보면 모네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살롱(Salon;미술전)에서는 르네상스에서 추구했던 원근법을 이용한 공간감을 캔버스에 구성하는 그림만을 인정했었다. 즉 자연이나 인물을 이상화된 구도에 담아 관념적으로 표현한 그림만이 작품이었는데 모네는 그러한 화풍을 따르지 않았지.
선아: 그러고 보니 샘이 저에게 논술을 가르쳐줄 때 “서론 – 본론 - 결론의 글쓰기를 하지 마라!” 고 일갈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에 많은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서론 – 본론 - 결론의 글쓰기’를 강조했는데 선생님만이 유일하게 <프로크로테우스의 침대>를 인용하면서 음식의 종류에 따라 식사도구를 다르게 해야 하듯이 <자료 제시형 논술>에서는 ‘논제와 본론중심 글쓰기’를 하라고 말씀하셨죠. 결과적으로 선생님이 항상 옳았지만요.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채하: 하하 잊고 있었는데... 그런 기억이 있었지. 여러 교사들과 학생들이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결국 선생님의 의견을 따랐었지. 그건 그렇고, 모네의 <인상, 해돋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모네의 집은 프랑스 서북부의 항구도시인 르아브르에 있었다. 집안에서 창문 밖을 보면 항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새벽 창문 밖을 바라보던 모네는 어둠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인상을 그린 것이 <인상, 해돋이>이다. 자세하게 그림을 보면 항구에 정박된 배나 바다의 풍경에 대해 정확한 윤곽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붉은 아침 햇살에 물든 바다의 첫인상을 마치 물감을 아무렇게나 흩어 놓은 것처럼 그려 놓았다. 항구에 정박된 배들은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흐릿하지만 강렬한 태양은 그 안개를 뚫고 떠오르고 있다. 안개는 불그스름한 빛을 내어 사방에 퍼져나간다. 바다와 하늘은 하나의 풍경같이 합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경계를 색채로 구분 짓고 있다. 붉은 빛이 도는 하늘과 푸른빛 바다는 서로 겹치지만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바다를 건너는 나룻배가 보인다. 항구의 배처럼 흐릿하게 표현된 나룻배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인상을 전하려고 했던 모네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나룻배는 그림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인데도 검은색으로 채색되지 않았는데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매우 혁신적인 실험이었다. 모네에게 자연은 종래의 화가들이 나타낸 것처럼 어둡고 고정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지극히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비쳤다. 빛의 변화에 따라 같은 풍경이라도 시시각각으로 양상을 달리한다고 보았기에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선아: 모네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적 인식의 가변성, 즉 사실적으로 대상을 그리지만 빛의 방향과 양에 따라 순간순간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사실은 화가의 눈에 비친 주관적 인상으로 드러난다.” 이 말이죠?
채하: 맞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지금 일어나는 일을 말하는데 각자의 상황에 따라 감각적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연적 인과개념을 거부했다고 해야 하나...
선아: 인과적 필연성을 거부했다는 뜻이 무슨 말인가요?
채하: 그것에 대해 이해하려면 회의주의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회의주의는 지식의 확실성이나 확실성에 대한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상이다. 보통 지식은 정당화된 참된 지식인데 어떠한 믿음이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지식이 참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정당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그 믿음을 지지하는 적절하고 타당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는데 회의주의자들은 이 정당화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특정한 분야에 대한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봐야지. 부연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지식(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거나 설사 지식을 얻을 수 있어도 경험적으로 상대적인 지식만을 얻는다고 보고 있다.
선아: 정리하면 지식 그 자체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인간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능력의 한계로 세계에 대한 믿음이나 상대적 지식만을 갖는다는 것이죠? 어렴풋하게나마 인과적 필연성을 거부했다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어요. 인과적 필연성은 지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채하: 직관적 자연주의자 또는 감각주의자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지식상자를 적용하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사실 흄의 철학을 배제하고 현대철학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완전히 부정하고 직관에 대한 호소와 경험을 신뢰하며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철학에 적용하는 등 현대철학의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선아: 모네의 그림과 밀접하게 관련된 그의 입장을 알고 싶어요. 7월 초에 약속했던 자장면을 사드렸으니 이제는 강의를 들을 자격이 충분하고 또한 7월이 가기 전에 다시 자장면을 사드리기로 했으니 수강신청예약도 이미 마쳤다고 봐야죠~~

채하: 하하하^^ 그렇지 ㅋㅋ. 흄은 지식이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등의 정신활동을 ‘지각’이라고 불렀는데 지각을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했다. 인상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구하고 혐오하고 등등 의지할 때 갖는 생생한 경험’이며 관념은 ‘기억의 대상’을 의미한다. 가령 모네가 집에서 해돋이를 보았을 경우에 느낀 햇살에 비친 주변 풍경에 대한 감각을 인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장면을 회상했을 때에 붉은 아침 햇살에 물든 바다나 바다에 떠 있는 배에 대한 기억은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아: 모네는 흄의 지식상자로 보면 해가 떠오를 때의 바다풍경에 대한 인상과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군요.
채하: 맞다. 그러면 모네는 <인상, 해돋이>를 한 번에 그렸을까? 아니다. 그는 여러 번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관찰했고 그 인상을 기억해 표현했다. 이처럼 모네가 해돋이 장면을 여러 번 관찰한 것은 인상과 관념의 차이와 사실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인상은 관념보다 분명하고 자세하며 관념은 인상의 복사물로 인상만큼 생생하기 않기 때문이다. 즉 사실성을 추구했기에 관찰한 대상의 명료함이 점점 지워짐에 따라 실제로 가졌던 인상들과의 차이를 줄이려면 반복적 관찰이 불가피했다.
선아: 의문이 있는데요. 인상에 의해서 관념이 생긴다고 하셨잖아요. 즉 모네는 해돋이와 그 주변의 상황을 관찰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된 것이잖아요. 즉 인상이 관념에 선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인상 없이도 관념이 있을 수 있지 않나요? 가령 우리는 ‘황금산’ 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황금산을 본 적은 없잖아요. 그러면 모네는 황금산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황금 산을 그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채하: 아니야,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야. 다만 <인상, 해돋이>처럼 풍경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을 것이야. 모네가 황금을 관찰하고 산을 관찰할 경우에 그것들에 대한 인상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뒤로 관념이 생기겠지. 그처럼 서로 다른 두 관념을 혼합하여 황금산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다만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변화에 따른 대상의 순간적 사실성을 드러내려는 점에서 그런 종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을 것이야. 다만 모네가 눈이 멀었다면 시각인상을 갖지 못했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그 같은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아: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빛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에 대한 인상을 그렸다면 그 대상은 자연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림은 사실(fact)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나요?
채하: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선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기본적으로는 시간상, 공간상 실재하는 것으로 발견되는 존재, 또는 사건’을 의미하잖아요. 실제적, 경험적, 개체적인 것으로 환상, 허구, 가능성, 필연성, 당위성 등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왔고요. 그런데 그들이 그린 것이 정말 실재한다고 할 수 있나요?
채하: 사실은 객관적 실재란다. 그들이 그린 대상은 자연적 실재이지. 하지만 그 표현은 자연적 실재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주관적 인상을 그린 것이지. 따라서 <인상, 해돋이>에 드러난 풍경이 정말로 실재하는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을 그렸음에도 객관적이지 않는 점에서 몇 주 전에 강의한 ‘귀스타브 쿠르베’나 ‘오노레 도미에’의 사실주의적 작품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지. 그들은 사실적 대상을 최대한 실재적 사실로 그렸었지.

선아: 그렇다면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왜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죠. 사실주의 화가들도 르네상스적 원근법이나 이상적 구도를 따르지 않는 점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적 사실을 매개로 하지만 사실을 드러내는데 집착하지 않았잖아요.
채하: 흄의 지식상자를 다시 적용해보면 인상파 화가들은 세계관에서 합리적 이성의 근간을 이루는 객관적 인과성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선아: 쉽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채하: 보통 인간은 사물이나 사건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지. 가령 당구공으로 다른 당구공을 맞히면 맞은 당구공은 움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즉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지. 물론 이러한 믿음은 사고적 추론의 결과이고. 유사하게 오늘 태양이 떠올랐으니까 내일도 태양이 당연하게 떠오를 것이라고 믿기도 하지.
선아: 당연한 것 아닌가요? 당구공으로 당구공을 맞히면 당구공은 움직이잖아요. 객관적인 사실 같은데 뭐가 문제라는 것이에요?
채하: 꼭 그럴까? 이 당구공이 저 당구공에 맞으면 저 당구공이 반드시 움직이리라고 확신하기 위해서는 이 당구공과 저 당구공이 갖는 필연적 결합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를 설명해주마. 두 공이 실제로 부딪치기까지는 둘 사이의 인과성을 관찰하지 못한다. 즉 하나의 당구공을 다른 당구공을 향해 치면서 이 당구공이 저 당구공을 반드시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에 대한 인상은 갖지 못한다. 즉 두 공의 충돌을 직접 관찰할 수 없으므로 인상을 갖지 못하며 그에 따른 관념도 형성할 수 없는데 저 당구공이 반드시 움직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선아: 그러니까 자연적 실재가 있지만 그들이 관찰한 것은 빛의 방향과 양에 의해서 갖게 된 제한된 실재로 자연적 실재를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결국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그 자신을 비롯해 누구라도 자연적 실재에 정확한 인상이나 관념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니까 객관적 실재를 그대로 그릴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객관적 실재에 대한 인상을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인가요?
채하: 맞다. 그래서 인상파 그림들은 사실적이지만 사실주의적 작품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선아: 만약 흄의 견해와는 다르게 세계의 대상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상이나 관념이 인과적 필연성이 있다면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조롱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채하: 그렇게 볼 수 있지.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봐야지. 다시 흄의 이야기를 해볼까? 근본적으로 인과성은 과거의 규칙적 관계가 미래에도 당연하게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기에 자연의 양상이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것을 물리적 외부대상인 ‘자연에 대한 일양성(Uniformity)’이라고 한다. 아까도 예를 들었지만 내일도 태양이 떠오른다는 믿음도 자연의 일양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아: 자연의 일양성이란 무엇인가요?
채하: 자연의 일양성은 물리적 외부대상들이 당연하게 존재하고 그것들이 일관성 있게 운동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연의 과정이 항상 같은 모양으로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아: 자연은 일양적이지 않나요? 어제의 자연적 과정과 오늘의 자연적 과정은 동일하잖아요?
채하: 하하하 ^^ 아까도 말했지만 자연의 과정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추론일 뿐이다. 누구든지 내일의 과정을 오늘 경험할 수 없잖아. 즉 인상을 갖지 못할 것이고 인상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믿음이지 지식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니? 내일도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은 내일까지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원인 등 자연의 과정이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장담할 수 있니? 가령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지만 오늘이 내일로 바뀌는 시점에서 천체의 운동을 비정상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외부적 힘이 작용한다면 내일도 태양이 떠오른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 유사하다고 추측할 수는 있어도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니?
선아: 가령 모네가 같은 장소와 시간을 배경으로 <인상, 해돋이 2>라는 작품을 그렸어도 그것은 <인상, 해돋이>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모네는 사실을 그렸지만 사실을 그대로 그릴 수 없었고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고 여겼을 것이고요. 다만 객관적으로 사실을 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고요.
채하: 하하하 그렇겠지. 선아의 비판적 사고능력이 무척 향상되었구나. 대단하군! 하지만 모네도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릴 수 없음에도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시도는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야. 왜 그런 줄 아니? 흄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즉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흐름이라고 여겼을 것이니까...그런 점에서 <인상, 해돋이>의 색채가 마치 물감을 아무렇게나 흩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모네가 날것의 본능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의도적인 행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선아: 정말 회의적인데요... 확실한 지식이 있긴 있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 같은 저의 태도를 부정적이라고 여기지는 않아요. 회의(懷疑, skepticism)는 소극적인 태도이지만 절대적 진리를 분별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식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복 돋우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 아닐까요? 가령 모네의 그림이 빛의 방향과 양에 따라 사물의 본질이 달라지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탐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과학의 진보를 가져온 역사적 사건으로 재조명되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채하 아니, 제원 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과거도 그랬지만 진짜 미래 학력을 보여주는 ‘비판적 사고’에 한걸음 더 다가선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멋진 강의 부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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