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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으로 느끼는 빙수의 맛
[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빙수
2017년 07월 28일 (금) 송영애(전주대학교 연구교수) APSUN@sjbnews.com
   
 
   
 

-얼음은 권력이다
옛 속담에 ‘삼복 기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고 하였다. 삼복더위에 지쳐서 가벼운 밥알 하나의 무게조차도 힘겹다는 의미다. 지금이 딱 삼복 기간이다. 깊은 생각 없이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로 ‘할리우드의 제왕’으로 불리던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과 18인치 개미허리를 가졌다는 비비언 리(Vivien Leigh) 주연의 영화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명대사 “Tomorrow's sun rises tomorrow.(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도 떠오르겠지만 이렇게 더운(?) 영화가 아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The Grand Heist, 2012)로 제목은 같지만 시원한 영화다. 다둥이 아빠 차태현과 오지호, 민효린, 성동일, 고창석이 주연이다. 주인공 이미지대로 코믹 액션 영화다.
컴퓨터그래픽이지만 3만 정의 쩡하게 차가운 얼음이 스크린에서 냉기를 품어낸다. 영화 속 음식도 대패로 밀어 만든 빙수다. 2012년 8월 8일, 삼복더위 기간에 개봉하여 큰 시원함을 주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얼음이 저장된 빙고 안이다.
덕무(차태현)는 얼음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우의정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은 뛰어나지만, 세상에서 한발 쳐져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의 서자다. 작은 책방을 열고 잡서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낸다.
얼음 독점권을 빼앗기 위한 좌의정의 술책으로 누명을 쓴 덕무의 아버지는 귀양을 간다. 서빙고 얼음을 깐깐하게 관리해오던 동수(오지호)도 좌의정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끝내 파면된다. 덕무는 동수를 찾아가 좌의정 집안에 복수 할 계획을 세운다. 계획명은 “발본색원(拔本塞源)” 뿌리까지 완전히 뽑겠다는 의지다. 이 일을 함께 도모할 어설픈 기술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면서 코믹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먼저 서빙고 얼음을 통째로 터는데….
조선 시대 ‘얼음’은 ‘금’보다도 귀했으며, 빙고를 관리한다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좌의정 집안은 제멋대로 얼음을 관리하며 힘을 과시한다. 한여름에도 얼음을 내놓고 생활하고, 유기그릇에 빙수까지 만들어 먹는다. 술자리에는 봉황 모양의 얼음 조각까지 등장한다.
세손의 직위식 날, 수라간에 얼음 팔천 장과 저잣거리에 얼음 만장을 내주라는 어명에도 뒤돌아서 서서는
“수라간에 들어가는 것은 내주고, 저잣거리 것은 풀지 마.”라고 답한다.
임금 위에 얼음이 있었다.

-길거리로 나온 얼음의 의미
얼음이 언다고 무조건 채빙하는 것은 아니다. 얼음의 두께가 다섯 치(寸) 이상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얼음을 깨고 떠서 빙고까지 운반하는 사람을 장빙군(藏氷軍)이라 불렀다. 세종실록에는 눈바람이 몹시 찬 겨울철에 일하는 장빙군에서 하사품으로 술을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술의 양도 2백 병, 3백 병이다. 성종실록에는 500명의 장빙군을 뽑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들이 동상에 걸리는 추위와 싸우며 얼음을 채빙하는 일이 얼마만큼 힘든 일인지를 알려주는 말이 있다. 바로 ‘누빙(淚氷)’이다. 누빙은 여름철에 쓰는 얼음을 말하는데, 백성들의 눈물이 얼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얼음은 서빙고(西氷庫)와 동빙고(東氷庫)에 채워졌다. 서빙고의 위치는 지금의 용산구 반포대교 부근이다. 동빙고는 성동구 옥수동 쪽이다. 둘 다 한강과 닿아있는 지역이다. 1396년에 설치되었다가 1896년에 폐지되었다.
동빙고와 서빙고에 저장해둔 얼음은 3월 초부터 10월까지 내주었다. 동빙고 얼음은 종묘사직 등의 제사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서빙고 얼음은 종친과 고위 관료들에게 주었다. 또 활인서(活人署)의 환자, 의금부(義禁府)의 죄수들에까지 주었다는 기록을 보면, 무더운 한여름에 더위에 지친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 임금의 마음이 엿보인다.
요즘은 행정안전부로부터 ‘폭염 경보’ 문자가 자주 온다. 지자체마다 폭염 대책으로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살수차를 동원하여 뜨거운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전주시와 익산시 길가에 얼음 덩어리가 등장했다. 어른이건 아이건 손으로 만지며 더위를 식힌다. ‘도로 쿨 서비스’다. 얼음 한 조각이 더위를 완전히 식혀줄 수는 없지만, 그 의미만큼은 생각할수록 시원하다.

-빙수의 맛은 뇌에서 결정한다
“요리의 맛은 물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얼음은 물이 얼어서 굳어진 물질이다. 얼음을 주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빙수밖에 없다. 얼음덩이를 잘게 갈아서 단팥, 찹쌀떡, 견과류, 과일 등을 올리면 팥빙수고 과일빙수다. 맛은 모두 단맛이다.
맛은 혀의 윗면과 옆면, 연구개, 뺨 안쪽 벽에 있는 약 1만 개의 미뢰(味蕾, Taste Bud)에서 느낀다. 미뢰를 통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20세기 들어와 발견한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다. 미뢰 한 개에는 미각 세포 50~150개가 모여 있어, 맛을 감지하는 정도는 다를지라도 정확하게 느낄 수는 있다. 단맛을 짠맛으로, 쓴맛을 단맛으로 느끼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느낀 맛은 전두엽의 한 부분인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에 전달되어 감정으로 결정 내려진다. ‘즐거운 단맛이고, 불쾌한 쓴맛이다.’라고 맛에 따라 감정 코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이처럼 판단 내리는 것은 미뢰가 아니라 뇌에서 담당한다.
따라서 같은 맛을 보고 뇌에서 판단 내려지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를 두고 혹자는 “맛은 각자의 인생이다.”라고 하였다.
빙수는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찬 음식이다. 정확한 맛을 찾기 위해 미뢰가 활성화되기 힘들다. 빙수는 맛이 아니라, 온도에서 주는 감정으로 혀보다도 뇌에 더 큰 의존을 하게 된다. 빙수를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보다, 더운 날 차가운 얼음을 보고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더 크다.
빙수가 나오는 영화들도 모두 주연 배우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어가고 있다.
< 안경>(Glasses, 2007).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바닷가의 조그만 민박집에 타에코가 머물게 된다. 이곳에는 매해 여름이면 빙수를 만들기 위해 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의 빙수는 소박하다. 먼저 그릇에 잘 삶아진 팥을 크게 한 국자 담고, 얼음을 갈아서 소복하게 쌓는다. 시럽을 한 숟가락 올리면 끝이다. 밋밋해 보이지만 전형적인 일본 빙수다. 맛있는 빙수 맛에 빠진 타에코가 할머니에게 빙수 만드는 방법을 배운다. 할머니는 팥을 삶으며 “중요한 건,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전한다. 팥 삶는 방법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말해준 것 같다.
바다의 뚜껑(There Is No Lid on the Sea, 2015)에서는 주인공 마리가 귀향해서 작은 빙수 가게를 연다. 마리는 마음을 담은 소담스런 빙수 한 그릇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준다고 믿고 있다. 바쁘게 생활하는 우리를 두고 “사랑 없이 돈만 좇아서 문제.”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 남극의 쉐프>(The Chef Of South Polar, 2009)에서는 후지산보다 높은 해발 3,810m, 평균기온 -54℃의 극한지 남극 돔 후지 기지에서 일하는 8명의 관측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매일 하는 일들이 같아서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다.
나른한 오후에 빨간색 딸기 시럽으로 야구 경기장을 그린다. 대원들은 숟가락을 들고 엎드려서 꽁꽁 언 시럽을 긁어먹는다. 야구가 더 재밌어진다.
빙수는 맛이 아니라, 감정이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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