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못찾은 독립유공 '훈포장'
주인 못찾은 독립유공 '훈포장'
  • 최정규 기자
  • 승인 2017.08.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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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2주년 맞아] 전북지역 수여자 총 945명 중 317명은 전달 못해

고 김원주(1921년~?)선생은 1941년 2월, 지금은 김제시가 된 김제군 광양광업소에 근무하던 중 일본의 내선일체사상을 비난하고 독립을 위해 초석이 될 것을 결심했다. 김 선생은 한국문학을 연구해 이를 매개로 동료 직원을 상대로 민족의식 고취에 나섰다. 하지만 그해 9월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김 선생은 출소 후에도 해방을 위해 헌신하다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1995년 그의 공훈을 기려 애족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사망일자도 모를뿐더러 후손이 있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고 김춘배(1912~1933년)선생은 1929년 8월 전주고등보통학교(현 전주고등학교) 재학 중 일제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휴교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징역 9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31년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하고 같은해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반전뉴스’를 발간해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을 비판했다.

김 선생은 1931년 7월 말 전주 다가정(현 다가동) 전주청년동맹 본정반 책임자였으며 전주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사상 고취에 나섰다. 같은해 8월부터 1932년 2월에는 ‘가두청년’을 발행해 공산주의사상을 확산시켜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각종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옥중 사망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국가보훈처는 2006년 김 선생에게 애국장을 수여했다. 그렇지만 그에게 지급된 훈포장은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에게 수여된 훈포장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13일 전북동부보훈지청에 따르면 도내 훈포장 수여자는 총 945명이다.

모두 국가보훈처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독립운동가들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의병활동 후원 및 임시정부 참여 및 광복군, 국내·외 항일운동, 3·1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올해는 4명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훈포장을 추가로 수여 받았다.

이 가운데 훈포장 317개는 주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녹슬어가고 있다. 이들의 후손들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지청은 후손을 찾아내기 위해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과 협조를 통해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역추적 해오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제적부상 본적, 주소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거나 제적부 소실, 해외 활동자 등 사유로 후손이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사망해 후손이 없거나 사망 일자를 모르는 점도 문제다. 이런 경우 신원을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보훈지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훈 전북동부보훈지청 담당자는 “제적부가 소실되거나 본적·주소 등이 현 주소와 다른 경우가 많아 수훈자 후손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독립유공자로서의 예우와 명예, 선양을 위하고 후손들의 생활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후손 찾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동부보훈지청은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훈장을 전수하지 못한 독립유공자 명단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조 중에 훈장 미전수 명단에 포함돼 있을 경우, 제적부 등 후손임을 확인할 수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여 확인을 받은 후에 훈장 등을 전수받을 수 있다. /최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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