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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엽의 진료실 일기] 권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2017년 09월 07일 (목) 김재엽 전주 우리들병원 원장 APSUN@sjbnews.com
   
 
   
 

나이가 들면서 가장 실감하는 일은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것이다. 몇 가지 한 일도 없는데 벌써 하루해가 지고 또 일주일이 지난다. 예전에는 하루에 할 일들을 수첩에 빽빽이 적어 표시해 두곤 했다. 그리고 잠들 때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만큼 숨을 몰아쉬면서도 ‘아직 해야 할 일을 반도 못했구나. 그러나 넌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곤 했다.
가끔은 일중독으로 몸의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해버리고 한 방울 눈물과 야릇한 희열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감동과는 다른 면에서 나는 항상 시간에 쫒기며 살았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 몸에게 예의를 갖출 겨를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만사가 귀찮아졌다. 아직도 머릿속으로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되뇌지만 몸은 꿈쩍을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모든 일에 권태로워졌다.
어떤 일에 시들해져 생기는 게으름을 뜻하는 ‘권태(倦態)’라는 말을 놀랍게도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어휘다. 『지루함의 철학』이란 책에서 저자 스벤젠은 “바쁠수록 현대인은 오히려 더 많은 권태에 노출된다”고 주장한다. 『근대의 증상으로서 지루함』을 쓴 김종갑 교수 역시 이와 비슷한 견해를 내보인다. 한 예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넷은 정말 ‘정보의 바다’라 부를 만하다. 국내 뉴스는 물론 세계 각국의 뉴스, 오늘 탄핵 심판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애인 만드는 법, 드라마 예고편, 주식 동향 등 실시간으로 수많은 헤드라인이 명멸한다.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헤드라인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나, 인과, 논리, 유사성이 전혀 없다. 다만 이렇게 인터넷 기사가 탈의미화되는 방식과 시민들이 점점 탈인격화되는 방식에서는 놀란 만한 유사성이 발견되는데, 한마디로 과잉 자극은 지루함만 더욱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권태와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는 게으름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행동의 부재’이고, 따분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자극이 부재’하는 상황이다. 반대로 지루함은 너무 많은 일과 행동의 틈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몸이 지루함(권태)을 느낀다면 그것은 곧 몸이 피로하다는 뜻이다.
몸에 있는 신경도 권태를 느낄 때가 있다. 우리 몸을 바늘로 한번 찌르면 따끔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자주 자극을 주면 먹먹해지고 감각이 없어진다. 이것을 신경말단의 피로 현상이라 하는데 정신적으로 말하면 권태와 같다. 내 전공인 척추와 관련해 예를 든다면 MRI 상에서는 분명 여러 군데에 척추 디스크가 있는 환자지만 정작 환자 본인은 가장 정도가 심한 한 군데에서만 증상을 느끼는 일이 많다. 이렇듯 우리 몸도 자극이 많으면 금방 권태를 느끼게 된다. 권태의 문제점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자꾸 재미에 탐닉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을 비롯해 디지털의 노예가 되는 이유도 권태에서 찾을 수 있다.
신경학적으로 볼 때 재미는 쾌락중추를 자극하여 쾌락이 주는 도파민 호르몬에 취하는 상태인데 우리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도파민을 공급하는 행위이고, 피곤할 때 멍하니 게임을 하거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며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뇌에서 분출하는 도파민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몸이 피곤하여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태는 이런 도파민 자극 과잉 상태로 볼 수 있다. 피곤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보지만 쾌락 중추가 요구하는 도파민을 공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깊은 권태는 지독한 창조의 힘”이라고도 한다. 정신적 권태와 몸의 권태는 불가분의 관계라 따로 떼어내서 설명할 수 없지만 몸의 권태에 국한하면 권태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쉬면서 명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일의 양을 줄이고 질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몸에게 예의를 기울인다. 내가 잘 느끼지 못 할 뿐 몸은 항상 우리에게 속삭인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예전처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놀다가도 다시 밤새워 일에 몰두 할 수 없는 40대 중반의 ‘나’를 발견하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삶의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요즘 나는 저녁마다 동네를 걸으며 운동을 한다. 며칠 전 길에서 올려다보는 달이 참 예쁘게 보였다. 샛노란 속살이 다 드러낸 둥근 달이 구름에 가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내친김에 그동안 뜸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안부를 나눴다. ‘권태’의 순작용인지 달빛에 한껏 달아오른 바람이 마법을 걸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날 밤 나는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제는 조금씩 슬픔에서 벗어나고 있어. 시간과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시간을 소소한 일들로 쪼개어 썼다면, 이제는 마음으로 보듬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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