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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묶인 끈, 나는 연
2017년 09월 07일 (목) 김영 김제예총 회장 APSUN@sjbnews.com

김제 지평선 축제에 간다. 벽골제 제방에서 까마득히 솟아오르는 연을 우러러 보러 간다. 여기저기서 각양각색의 연을 날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줄 하나에 수십 개의 연을 매달고 가을 하늘 깊숙한 곳까지 날아가는 연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바람을 다스렸구나!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농한기가 되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방패연을 만들곤 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떠오고, 아버지는 뒤꼍의 대나무를 베어왔다. 아버지의 ‘때깨칼’ 끝에서는 대나무 속살이 말려 나왔다.연살을 만드는 것이다. 속살을 여읜 껍데기는 푸르게 낭창거렸다. 칼날을 따라 둥글게 깎여 나오던, 저 혼자 돌돌 말려 꽃이 되던 대나무 속살을 갖고 놀기도 했다. 나는 방패연에 장식할 종이를 오리거나 그림을 그렸다. 연살을 붙일 밥풀을 이기기도 하고 연 꼬리를 만들기도 했다.
창호지의 정중앙을 도려낸다. 방구멍이다. 짓이긴 밥풀로 연살을 창호지에 붙인다. 꽁숫구멍도 뚫는다. 불을 끈 성냥개비 끝의 빨간 불심지로 연살 양 옆에 구멍을 낸다. 이 때 창호지가 성냥개비의 불을 적당히(!) 먹어야 한다. 불을 먹이는 손끝이 바르르 떨렸던 걸 기억한다.
방패연의 머릿살에 맨 목줄과 꽁수구멍에 맨 꽁숫줄을 함께 묶는다. 이때는 오빠가 제일 바빴다. 바람세기에 따라 목줄 길이를 조절해야하기 때문에 바람의 낯꽃을 살피러 여러 차례 문밖을 들랑거렸다. 그리고는 연실이 감긴 얼레에 연을 묶는다. 중심이 텅 비어 가볍디가벼운 연은 이제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다 마쳤다.
연실도 준비한다. 깨진 사금파리를 곱게 갈아서 아교 통에 밀가루와 함께 끓여서 연실에 먹인다. 연실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금파리 가루가 톱날과 같은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연을 날리다 서로 줄이 엉키면 줄 하나를 끊기도 해야 하고, 일부러 상대방의 연과 엉키게 날려서 싸움을 걸기도 한다. 물론 상대방의 연실을 먼저 끊는 사람이 이긴다.

만드는 과정에 제법 재미있게 참여했으면서도 내 손으로는 한 번도 연을 날린 적이 없다. 그냥 그러기 싫었다. 맘껏 날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날지 않을 권리도 없이, 조종당하는 연이 괜히 안쓰러웠다. 추운 하늘을 날아야 하는 연이 불쌍하기도 했다. 어쩌다 줄 끊어진 연이 뒷걸음질로 멀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아득히 멀어지는 연을 따라 들판을 내달렸다. ‘훨훨 날아라, 멀리멀리 벗어나라’ 응원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연은 얼마 날지 못하고 시궁창에 거꾸로 쳐 박히거나,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다. 처참하고 너덜너덜한 기분은 봄이 돋을 때까지 생생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았다. 하고 싶은 일은 접어둔 채, 직장과 집안일에 매인 날이 지속되었다. 그때 나는 창공을 훨훨 날 수 있을 만큼 젊음이 창창했다. 그러나 삶이 번번이 나를 속였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빠듯한 가계, 그리고 생활인으로서의 의무에 융통성 없는 채무자처럼 잡혀 있었다. 날아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등산도 그만두고, 여행도 그만두었다. 건조한 표정으로 의무를 수행하는 기계가 되어 갔다.
그러다 하늘이 드높던 어느 날, 아이들이 조롱조롱 매달리던 가을 날, 생각 하나가 번쩍! 나를 후려쳤다. 아무 동력도 없는 ‘종이때기’ 연이 어떻게 날 수 있겠는가? 묶인 끈이 있어서 날아볼 꿈도 꾸는 거지.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다면 어찌 여행을 떠날 수 있겠는가? 지금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없다면 어떻게 내가 자유를 꿈꾸겠는가? 지금 나를 구속하는 것들이 없다면 어떻게 나의 방종을 다스릴 것인가? 되새 떼가 날아드는 가을 하늘에 쨍! 하고 금이 가는 찰나였다.
제19회 김제지평선 축제가 오는 9월 20일이면 시작된다. 올해도 까마득히 솟아오르는 연을 우러러보며 나는 벽골제 제방에 오래 서 있을 듯하다.

약력

전북 김제출생.
현, 김제예총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작품집 :

『다시 길눈 뜨다』 『나비 편지』 『쥐코밥상』 『잘가요 어리광』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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