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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유재란 7주갑 잊혀진 전쟁인가
2017년 09월 14일 (목) 새전북신문 APSUN@sjbnews.com

시간이 더 흐르면 관련 기록과 자료 사라질 듯
만인의총과 남원성전투 재조명하는 행사 열려

 

지금으로부터 7주갑, 즉 420년 전, 조선의 강토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60년을 한 주기로 치는 갑(甲)이 일곱 번이나 반복된 7주갑(周甲)을 맞았다. 하지만 정유재란은 여전히 ‘잊혀진 전쟁’ 같다. 누군가가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더 흐르면 관련 기록과 자료가 사라질 것 같다. 당시의 전적지 중 상당수는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에 관심이 없다. 정유재란은 “명을 칠 테니 길을 내라(征明假道)” 했던 왜적의 임진년 1차 침공에 이은 2차 침략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백성들은 귀를 잘리고 코를 베였다. 왜적의 잔인무도함에 민초들은 치를 떨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남원의 유명한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의 도조로 추앙받는 등 일본의 도자기 공업을 발전시킨 바, 이때 끌려간 도공 중에 남원 출신이 많았다.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격인 사스마야끼의 14대 주인인 심수관의 조상 역시 남원 출신이다.
정유재란기념사업회가 26일 남원 만인의총과 어현동 사랑의 광장에서 남원성전투 재현 및 풍등 날리기 행사를 개최한다.
임진왜란에 이어 왜군이 재차 침략한 정유재란으로 인해 조선은 다시 한번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조선에서는 정유재란에서 일본의 침략 목표 지역을 전라도와 충청도라고 여겨, 왜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최전방의 보루로서 남원성을 지목했다.
남원성은 조선의 조정에서는 물론 명나라에서까지 중요성을 강조할 정도였다. 남원은 지리적으로 경상도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전라도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충청도와 경기도의 외번(外藩)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원성전투는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성을 지키다가 무너졌다. 많은 조선군이 전사한 전투였을 뿐 아니라 명군의 피해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에 가장 컸다. 이전투의 패배로 인해 호남과 충청 지방의 일부는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고, 서울까지 민심이 동요하기에 이르렀다.
정유재란 420주년을 맞아 남원성전투에서 산화한 만인의사의 명복을 빌고, 남원성전투 재현 등을 통해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계승, 남원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행사에 다름 아니다. 특히 만인의사 순의제향에서 4대 종단이 합동 추모제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 늦기 전, 전적지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는 데 정부는 물론 광자치단체들의 적극적 관심을 갖기 바란다. 이 땅에서 이같은 전쟁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후손들이 기억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갈 수 있도록 모두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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