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 전북 교육개혁, 수능성적 중하위권으로 성공할 수 있겠나
[아침발걸음] 전북 교육개혁, 수능성적 중하위권으로 성공할 수 있겠나
  • 박제원(전주 완산고 교사)
  • 승인 2017.09.18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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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改革)은 나((己)를 고치고 내 살가죽((革)을 뜯어내는 고통스런 일이다. 가죽 옷을 바꾸는 것은 신분 상승을 의미한다. 어떤 시대나 사회든 다수의 고통이 심할수록 개혁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항상 성공하지는 못한다. 개혁은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을 각오하는 지난한 일이다.
개혁과 관련해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이며 신(新)나)라를 건국한 왕망(王莽)과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후한(後漢)을 건국한 유수, 광무제(光武帝)의 정책은 시사점이 크다. 왕망은 전한 말에 횡횡하던 외척세력을 모두 숙청하고 즉위하면서 초기에는 적지 않은 개혁을 단행한다. 정치적으로 유교적 봉건주의를 복원하고, 전국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켜 자영농민의 삶을 개선해서 빈민화를 막고자 했으며, 사회적으로 노비를 폐지하고 매매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의 개혁정책은 실패했다. 이상적 제도를 복원하려 했지만 준비가 미흡했으며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책은 지배층인 호족들과의 갈등만 키웠고 오히려 농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즉 현실적 상황을 고려치 않았고 지지 세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독선과 독단으로 지나친 통제위주의 정책을 강제한 까닭이다.
후한의 시조 광무제는 왕망과 달랐다. 그는 개혁이 현실적으로 상대와의 갈등을 조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을 알았다. 공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줄였지만 후(候)로 봉해 일정한 기득권을 유지토록 했다. 그렇게 한 까닭은 기득권층에 굴복하거나 타협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개혁과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는 농촌에서 성장하였고 농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고통 받는 농민의 삶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하려면 지배층과의 마찰을 줄이면서 세금과 부역을 제도화해야 했으며, 관료적 체계를 세워 탐관오리를 가차 없이 처벌했다. 즉 백성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해서도 시비비비(是是非非)를 가려서 엄격하게 처리했다. 주목할 점은 갈등이 첨예한 개혁과제는 장기적 과제로 삼아 지식인들을 우대하고 학문을 장려함으로써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전북교육의 학력저하는 심각하다. 그 동안 지역의 유력한 여러 언론매체들은 학력저하의 심각한 위기상황을 보도하였고 전북교육청이 대책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북이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기초학력 미만학생’ 비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현실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전북교육청은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여론의 지적에 대해서도 “전북학생의 수능성적은 항상 중상위권을 유지한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되풀이한다. 교육정책의 적극적인 당사자로서 아주 무책임한 처사이다.
전북의 수능학력은 낮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2016학년도 수능성적으로 본 전북학생의 상위등급비율은 중하위권이며 하위등급비율은 중상위권이다. 즉 국어, 영어, 수학성적이 타 시도에 비해 1∼2등급인 학생의 숫자는 적고, 7∼9등급인 학생의 숫자는 많다. 특히 이과수학은 가장 낮아 1∼2등급은 14위로 꼴찌에서 3번째이지만, 3∼9등급은 꼴찌인 1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교육청이 계속 수능학력을 왜곡하고 중상위권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전북교육청이 선도하는 혁신학교나 미래학력 정책은 가치 있고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개선할 점도 많지만 경쟁과 입시일변도의 현실을 개선하고 사회변화와 맞물리는 교육적 방향을 찾기 위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전북교육청이 지금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 학부모의 관심인 수능학력이 저하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더구나 참 학력이든 뭐든 새로운 교육정책들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를 그만두고라도 교사들조차 잘 모른다. 그런 까닭에 수능성적이나 기초학력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균형 있는 학력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왕망의 개혁은 실패했지만 광무제. 유수의 개혁이 성공한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다. 두 지도자의 개혁적 이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광무제는 독선과 독단을 버리고 개혁추진과정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제후들과 협치(協治)하면서도 백성들과 소통(疏通)하려고 했고, 피부에 와 닿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고통과 적폐를 먼저 해결하려고 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개혁을 지속할 인재 발굴과 역량강화에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좌파 지식인인 발터 벤야민이 파울 클레가 그린 <새로운 천사>에서 천사를 ‘역사적 천사’라고 지칭한 것은 현재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현실을 오직 참사와 파국으로 만들어버린 권력적이지만 무능한 좌파를 경계하고자 한 것이다. 즉 진정한 좌파는 장밋빛 미래로 대중을 조작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역사주의자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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