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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발견] 문화와 예술이 답이다
2017년 09월 26일 (화) 박지훈 군산시립합창단 상임 지휘자·작곡가 APSUN@sjbnews.com
   
 
   
 

어떤 이들은 경제가 살아나고 주머니가 두둑해야만 문화와 예술을 누릴 여유가 생긴다고 이야기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특히 우리 민족에게 어울리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조들은 환경이 어려울 수록 노래와 춤을 즐겨 왔으며 가난할 수록 더욱 아름다운 예술을 추구하려고 애써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어떠한 예술인들은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며 살아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경제적인 환경이 갖춰줘야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물질만능주의적인 이 시대 속에서 어쩌면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를 쉽사리 가격을 정하고 그것들을 평가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정말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에게 잘 맞는 문화 또는 예술을 마치 유행과 가격을 쫓아 기성복을 쇼핑하는 구매자의 시점으로 변해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문화에 대한 가치를 그저 ‘잘한다, 유명하다, 비싸다’로 이미 평가내리는 것이 아닐까. 물론 예술적 가치가 이러한 기준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문화와 예술의 가치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요즘 우리들의 개그코드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다. 90년대 초 이전과 그 이후의 우리나라의 개그코드는 매우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심에는 ‘썰렁하다’라는 짧은 문장이 큰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이전에는 한국인들의 웃음은 간단하고 원초적인 웃음의 소재에도 매우 관대했었다. 심형래가 넘어지고 부딪히고 바보 흉내만 내도 모두 배꼽을 잡고 웃기가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기초적인 유머에는 아무도 웃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아재개그라고 하며 웃음 자체를 비하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상대의 유머를 평가하는데 너무 익숙하고 핀잔을 잘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웃겨버리는 그런 아이러니한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 비해 문화와 경제적인 면에서 앞서있는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왜냐면 그들은 어떠한 사람의 유머나 개그적인 대사 한마디를 매우 소중하게 들어주고 재밌어 하려고 애쓰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하지 않아도 될 유머를 상대와의 관계를 풀어주려 애를쓰는 서비스로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미국의 코미디를 보면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아직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유독 미국의 코미디 영화는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워 스릴러물이나 액션영화만 주로 상영하고 있다. 필자가 왜 이러한 개그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써내린 데는 이유가 있다. 문화와 예술도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공연물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고 돈으로 가치를 매길수 없는 열정들이 작은 공연물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관객들은 그러한 것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겉 모습, 유명세, 티켓의 가격등만을 보고 평가한다. 인터넷에 지배당한 모든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다. 내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야기해보려도 하지 않는다. 내 눈 앞에 당장 보여지지 않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거대한 산의 웅장함만을 즐기려 하지 않았고 그 안에 숨겨진 많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즐겼기에 웅장한 산의 멋짐을 진정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완벽함을 위한 피나는 노력과 과정들 그리고 인내가 없다면 걸작품들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선조들은 내면의 가치와 그러한 과거의 과정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서로에게 더욱 관대하고 존중하며 예를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회가 매우 각박해져 간다고 말들을 한다. 예의가 없다고 말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처럼 관심과 배려가 있는가.. 아주 유명하지도 않고 실력도 없는 연주자를 찾아가 그의 노력과 열정만을 보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박수를 쳐줄 여유가 있는가? 나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수 있다. 그러면 서로의 내면을 느낄 수 있고 더욱 존중할 수 있으며 더이상 이 땅에 비참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현상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가 답이다. 아니!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답이다.

/군산시립합창단 상임 지휘자·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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