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한국, 본적은 미국 과자
고향은 한국, 본적은 미국 과자
  •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17.10.19 1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공동경비구역 - 초코파이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
<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2000).
1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대스타인 이영애, 이병헌, 송강호, 김태우, 신하균이 주연이다. 박상연의 소설 「DMZ」(1996)를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00년 6월 13일은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날이다. 영화는 같은 해 9월 9일에 개봉하여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2015년에 재개봉하여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한 번 보고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많은 명장면에 명대사를 남겼다. 영화를 본 후에는 입으로 계속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하는 철학자’로 불리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다.
<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병사 총격사건의 진실을 풀어가는 추리극 형식을 띤 영화다. 그 안에서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과 분단의 아픈 현실을 그렸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북한 초소병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 이후 북한은 남한의 기습테러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로 각각 엇갈린 주장을 하게 된다.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남성식 일병(김태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보초를 설 때마다 군사 분계선이 있는 널문다리(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측 초소로 간다. 북측 초소에는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이 있다.
서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었지만 아무 일도 아닌 듯 담배를 나눠 피운다. 여자 친구 자랑을 하고, 김광석 노래도 함께 부른다. 얼핏 보면 같은 부대의 대원들 같다.


어느 날 오경필 중사는 이수혁 병장이 가지고 간 초코파이를 뜯으며 감탄하듯 말한다.
“고조, 우리 공화국에선 왜 이런 걸 못 만드나 몰라.”
초코파이를 통째로 입에 밀어 넣는다.
이수혁 병장은 오경필 중사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듯 부른다.
“형? 형? 아니 뭐 딴 건 아니고, 안 내려갈래? 초코파이, 배 찢어지게 먹을 수 있잖아.”
오경필 중사는 먹던 초코파이를 손바닥에 뱉으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너, 이수혁이 내 딱 한 번만 얘기할 테니 잘 들어두라. 내 꿈은 말이야. 언제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들 수 있을 기야. 알갔어? 기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 초코파이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
웃으면서 뱉었던 초코파이를 입에 다시 털어 넣는다.
그렇다. 누구나 초코파이의 맛을 알게 되면 뱉었어도 다시 먹고, 흘린 부스러기도 주워 먹을 수밖에 없다. 쫀득한 마시멜로, 달콤한 초콜릿, 부드러운 비스킷의 맛이 합쳐진 얕잡아 볼 수 없는 39g의 맛이다.
초코파이 이야기를 하자면 요즘 말 많은 개성공단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의 간식이 초코파이였다. 2004년 개성공단 입주 초기에는 근로자 모두에게 1인당 2개씩의 초코파이를 제공하였다. 문제는 근로자 대부분은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간 데 있었다. 암암리에 암시장으로까지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 북한 최고의 10대 인기상품이 되었다.
북한산, 중국산 초코파이도 있지만, 한국산 초코파이의 맛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초코파이가 북한 주민들을 새로운 맛의 세계로 인도하며 평양에서 거의 전설적인 지위에 올랐다.”는 보도를 했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120달러인데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초코파이는 무려 10달러였다. 먹지 않고 가져간 초코파이가 한 달 월급보다 몇 배나 되는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측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국산 초코파이는 사상 교양에 방해가 된다고 하였다. 이후 조치는 “북한 근로자에게 초코파이는 주지 말라.”했다. 냉정하다. 초코파이는 과자가 아니라, 정(情)인데 말이다.

-우리를 닮은 과자
1917년 미국 테네시 주의 채타누가 베이커리(Chatanooga Bakeries)에서 비스킷을 마시멜로로 붙이고 초콜릿을 씌운 문파이(Moon Pie)가 탄생한다. 모양이 동그란 보름달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맛이 강한 문파이는 우유나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어 인기였다.
1973년에 한국식품공업협회 주관으로 국내 식품기술자들이 제과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선진국을 방문하였다. 동양제과(현 오리온) 소속 연구원이 미국의 카페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보다가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바로 연구개발에 들어간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1974년 4월에 오늘날과 같은 초코파이를 출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초코파이의 모양과 미국의 문파이 모양은 똑같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맛도 비슷하다. 그러나 식감은 다르다. 문파이는 바삭하고, 초코파이는 촉촉하다. 초코파이가 태어나 성장한 곳은 한국이 분명하지만, 본적은 미국인 셈이다.
지금은 문파이 이름보다는 초코파이가 더 유명하다. 초코파이가 전 세계에서 잘 팔리고 있어서다. 한 해 약 20억 개가 팔리며, 누적 판매액도 4조 원이 넘은 지 오래다. 지금은 국내 매출액보다 해외 매출액이 더 크다.
초코파이는 43년 동안 꾸준하게 인기 있는 과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맛이 같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소비자의 변화하는 입맛에 맞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변화해왔다. 처음보다 덜 달고 한층 부드러워졌다. 50원이었던 가격은 400원으로 올랐다. 2015년에는 35g에서 39g으로 증량하였다. 겉을 싸고 있는 초콜릿의 양도 13% 늘렸다.
1989년부터는 새로운 컨셉트로 마케팅을 펼쳤다. 바로 ‘情’이다. 1995년에는 이름도 ‘초코파이 情’으로 바꾸었다. 情은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한국인들은 모두 공감하는 정서로 알려져 있다. 그 정서에 남한과 북한의 구분 따위는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 한입 물어보니 잘린 단면이 재밌다. 하얀 마시멜로를 사이에 두고 똑같은 두 개의 파이가 나누어져 있다. 달달한 초콜릿으로 쌓여 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