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연재소설 `동행' <8> 겨울아이

기사 작성: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 2017.12.11 19:02

나의 생일을 난 모른다. 단지 그녀가 추인했듯이 겨울 아이로만 알고 있을 뿐.
겨울에 태어난 그녀는 생일까지도 나와 동기화하고 싶었을까?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밤이다. 그녀의 배려 속에 무난한 겨울을 나고 있지만 바깥의 추위 앞에선 털로 뒤덮힌 나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추운 날엔 산책도 반갑지 않다.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를 위한 표정관리였다고나 할까. 사실 그녀는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나와 몽이 형의 산책을 책임진다. 이렇게 추운 날에 산책은 어느새 훈련이 된다.
추위하면 그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가 질색하는 것들 중에 추위는 분명히 상위에 랭크될 것이다. 매 겨울마다 반복되는, 거의 경련에 가까운 호들갑은 내 눈에 테러에 가깝다.
심한 이 떨림으로 인해 해독이 불가능한 언어, 사지는 사시나무 떨 듯 하면서도 패션은 버리지 않는 묘연함, 나의 코보다 조금 더 높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녀의 코가 얼음의 한 조각처럼 되어가는 상황을 펼쳐보면서 얻은 소회다.
눈보라가 잦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긴 겨울밤을 가까스로 보냈다. 그녀의 ‘와’하는 탄성이 없었으면 나의 겨울밤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그보다 더한 발광의 함박눈에 늘어졌던 몸을 털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맘껏 뛰어 다니며 강아지와 눈의 궁합을 과시해야겠다. 내 맘을 벌써 알아차렸는지 그녀는 중무장을 시작한다. 커피 집 누나의 입바른 소리...선생님은 베니가 잘 어울려요!...에 불과했음 직 한데도 그놈의 베니를 챙겨 쓰는 걸 잊지 않는 그녀.
“보리야! 몽이야! 어서 나가자. 눈과 함께 맘껏 뛰어 놀아야지!”
우리의 절대적 산책코스인 산성천과 궤를 함께 하는 둘레길을 걷는다. 누구의 발자국도 허락되지 않은 순백의 장이다. 훈련이 아닌 천상의 산보를 즐기고 있는 그녀와 나. 그리고 몽이 형. 그녀와 난 겨울에 태어났다.
왕성한 활동 뒤에 나의 식욕과 그녀의 카페인 금단현상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일상의 한 축이 된 까페에 들어선다. 까페 누나의 여지없이 반복되는 건조한 찬사.
“선생님은 베니가 참 잘 어울려요!”
“추운 날엔 이 것 만한 아이템이 없죠. 부스스한 아침 차림새에도 안성맞춤이고!”
“따뜻한 까페라떼 시럽 빼고, 맞죠?”
“네!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먹게 머핀도 하나 구워주세요!”
“머핀은 서비스예요..”
까페 누나의 멘트는 기계처럼 건조해도 마음만은 겨울날의 구원자인 보습제와 같구나.
호호 불며 마시는 커피는 그녀에게 성수라도 되는 듯하다. 이렇게 눈 내리는 날 산책길과 함께 하는 커피는 어쩌면 성수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몽이 형에게 정직하게 분배되는 달콤한 머핀. 행여나 더 큰 머핀 조각이 입속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듯 발버둥을 치며 그녀를 보채는 몽이 형의 순진함에 웃기지도 않지만. 어느 뜨거운 7월에 박스에 담겨 그녀에게 다가온 몽이 형이 숙명적으로 갖게 되었을 치열함을 이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와 혼연일체가 되었던 눈은 어느덧 잠잠해지고 대신 햇살이 기웃거린다. 이 또한 절묘한 조화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그녀는,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그녀.’
매년 그녀의 생일마다 들었을 달콤한 후렴구를 이번엔 내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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