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이렇게 제가 아플까요? 어느 병원에 가도 수술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전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누구나 불필요한 고통을 참을 필요는 없다. 치료약이나 수술 방법 등이 있는 질병도, 만약 편견이나 무지하거나 아예 병원에 오지 못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내 관점에서 보면 불필요한 고통이다. 참기 싫은 몸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는 굳이 고생을 사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 말고도 살다보면 '이렇게 성실하게 악착같이 일 하는데도 내 생활은 인생은 왜 달라지지 않을까' 에서부터 '왜 나만 이렇게….' 하는 것처럼 이유도 알지 못하고 당하는 '고통'이 훨씬 더 많은 까닭이다. 질병은 차라라 이유를 알고 있는 고통이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빨리 없애자는 의미이다. 물론 '사랑의 아픔' 같이 기꺼이 오랫동안 감내하는 고통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 환자가 병원에 온 것은 최소한 그 고통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이기 때문이고, 의사인 내가 '잘 모르겠다' 고 말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곧잘 한다. 물론 그 대답 뒤에 "다만…… 이런 저런 가설이 있고, 내 치료 경험이 이럴 때 이렇게 해보면 좋아졌던 환자분들이 많았으니……"하며 "다만~" 또는 "그래도~"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문장을 덧붙이지만 말이다.?
새내기 의사 때는 정말 용감했다. 위와 똑같은 상황에서 예전에는 "신경성 같군요. 민감하신 것 같아요. 사진 다 괜찮은데 본인이 못 참는 것 같아요. 좀 참아보세요. 신경 좀 쓰지 말구요" 라고?내가 다 아는 것처럼 환자들에게 훈계형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보고 있는 x-ray 나 MRI 사진과 그것을 판독하는 내 지식이 정답이고 환자의 증상(고통) 은 오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햇병아리 의사도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니 오히려 환자의 증상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즈음에 지역사회에서 척추 수술하는 의사로서 제법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자꾸 환자를 보면 볼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자신이 더 없어진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정말로 내 면전에서 "다른 척추외과 의사선생님들에 비해서 당신이 형편없다' 고 말하면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 어떤 분은 "네가 이제 유명해져서 다른 병원에서도 치료가 잘 안되었던 어려운 환자들이 ?더 오기 때문일 것이다' 고 위로를 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환자는 의사가 준비된 만큼 온다' 는 근거없는 신념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시간나는 대로 강의및 학회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나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았나보다. 말초신경학회에서 한 교수님이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 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제는 경험도 많이 쌓여서 남들이 인정하는 수준급이 되었는데, 막상 자신감은 막 수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따라가지 못한다"도 웃으며 발표하셨다.?
?이 효과는 1999년 코넬 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같은 학부 대학원생이었던 저스틴 크루거가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오히려 과대평가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도 자신의 실수나 곤경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면 내가 의사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알게 될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초짜 때보다 오히려 자신감은 떨어진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그것을 극복하고 노력하여 그보다 더 지식과 지혜가 늘어가서 전문가가 되면 어중간하게 알 때보다 자신감은 다시 회복을 하지만, 그래도 용감했던 초심자 때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 인 것같다. 젊을 때는 모든 것을 다 알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점점 더 어려워지다가 이순(耳順)쯤 되면 다시 '인생이 이런 거구나' 하고 좀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어쩌면 나도 위 그래프 곡선 중 자신감이 가장 밑에 있는 지점에 도달하여 자꾸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또한 환자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전부를 아는 것처럼 여기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필요 없는 시술이나 수술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에서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무지(無知)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갖게 한다" 고 말했다고 인용하면서 정부의 섣부른 '탈 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을 읽었다. 사회에서도 무식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통하는 이유는 이런 효과 때문 인가보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이런 사람이 통하는 사회는 지식과 문화가 저급이라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에서 선택하는 모든 정책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의 검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한 사람의 신념에 의해 지지되는지 반추해보고 싶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 수준에 놓여 있는지 성찰해 볼 때이다.
/전주 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