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엽의 진료실 일기] 귀찮음은 신의 선물이다

 

아침에는 아이를 학교에 차로 데려다 준다. 아이를 내려주고 나서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 야, 녀석이 신발주머니를 두고 내린 것을 보았다. 일단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미안하다’는 말 뿐이다. 나더러 다시 가서 주고 오라는 소리다. ‘9시 진료인데..지금 9시 5분 전인데, 자기가 가져다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하지만 이내 시동은 다시 걸렸다.
교실 앞에서 서성이다가 녀석을 보았는데 ‘고놈 참 잘생겼네’ 했다. 선생님께 집중하고 있는 모습도 뿌듯하고 해서 따로 눈 마주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냥 복도 신발주머니 칸에 찔러 넣어주고 오려는데 황송하게도 선생님께서 직접 나오셨다.
처음 다시 시동을 걸 때는 약간 짜증이 올라왔었다. 그러나 정작 아이 신발주머니 들고 교정을 가로 질러, 아이 교실을 찾아 올라가는 동안은 오히려 설레고 뿌듯함 마저 느껴졌다. 마치 내가 진짜 아빠가 된 듯한 기분 말이다. 아이에게 먹을 것을 사주고, 옷을 입히고, 교육을 시키는 모든 생활비를 내가 벌고 있지만, 정작 아빠를 아빠답게 만드는 것은 그런 거창한 은혜가 아니다. 고작 신발주머니 다시 가져다주는 이런 사소한 귀찮음이 아빠의 존재감을 부여한다는 게 내게는 무척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가끔 먹는 것도 귀찮다고 캡슐 한 알에 영양분이 다 들어있어 한 알만 먹으면 생명 활동에 지장이 없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어느 어르신은 병원에서 주는 영양제를 무슨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입맛이 없으니 영양제로 대신 한다고 하신다.
회진을 돌 때마다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누구는 입맛이 좋아서 밥을 먹습니까? 그래도 우리 몸은 꼭꼭 씹어서 삼키면 알아서 다 소화시키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금 맞는 영양제 수액은 따듯한 밥 2~3 숟갈도 안 됩니다. 제발 씹어 드세요”

실재로 몸에는 위-장- 반사가 있어 위에 음식물이 들어오면 그 신호를 인식하고 장(소장?대장) 이 운동하기 시작한다. 과식하고 영양과다도 문제지만 너무 안 먹어 생기는 영양실조도 문제다. 그래서 입이 짧은 어르신들은 나이 들어 허리가 몹시 굽거나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요즘은 고기위주의 식단이나, 인스턴트형 음식의 편식 등으로 특히나 총 칼로리는 높은데 비티민을 비롯해 미량 필수 무기물질과 식이섬유 등은 아주 부족한 상대적 영양결핍이라는 용어도 있다.
‘씹는다’는 것은 신경자극을 통해 감각 기관을 조절하고 장기 활동을 촉진하게 도와주며 뇌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고, 치아와 잇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의 구강기에서 후기(씹는 행위)에 문제가 생기면 성인이 되어서 불안하거나 조급하고 지나친 비관주의를 보인다는 이론이 아니더라고, ‘씹는 행위'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상사도 씹고, 대통령도 씹는 것 아니겠는가.
‘씹는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음식을 섭취할 때, 그 질감과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중 식욕은 ‘씹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식욕은 절대 영양제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칼로리를 맞추어 고단위 영양제로는 씹는 행위가 주는 행복을 대신할 수 없다. 또한 위-장-반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씹어서 삼킨 음식이 있어야 장이나 간, 담낭, 췌장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폐와 심장을 포함한 순환까지 운동을 계속하여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씹는 행위’는 영양 수액을 맞는 것보다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귀찮음이 먹는 행복이 된다. 그리고 행복은 그 자체로 ‘건강’의 파수꾼이 되기도 하고 ‘건강’의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밥 먹고 바로 눕고 싶은 귀찮음을 이겨내고 30분 이상 걸으면 건강에 좋다. 귀찮은 아이 학교 심부름을 하는 것이 아빠를 실감하게 하는 것처럼, 오늘 아내가 차려주는 일상적인 밥에 귀찮지만 ‘고마워’라고 말하면 아내는 더 맛있는 음식으로 내 장운동을 증진시켜 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되뇌어 보면 ‘귀찮아서’라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것들 중에서 대부분은 몸 건강에 도움이 되거나 정신적 행복을 가져다주거나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다. 아니면 최소한 실수라도 줄여준다.
우리 몸 또한 마찬가지다. 귀찮아서 숨을 쉬지 않거나 심장이 귀찮아서 뛰는 것을 멈추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뇌(연수)와 심장 자율신경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신호를 보내, 생리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것을 보면 어쩌면 ‘귀찮음’은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귀찮음'을 스스로 어떻게 조절하는 것이 건강의 관건이다. 어쩌면 인생 전체에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귀찮음을 이겨내자. ‘고통’과 ‘괴로움’은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주 우리병원 원장